[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집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의 시절과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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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집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의 시절과 삶에 대하여
  • 승인 2022.01.1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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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최근에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3년 전 분양 받을 때에 운이 좋았다고 축하해주던 동네 친구들과 이별의 차를 한잔 나누었다. 예전에 덕담을 나누던 때에 비해 날카로운 자리였다.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집값이 오른 사람과 오르기 전에 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조심스러워졌다. 2년 전만해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한가롭고 느긋하던 느낌이 사라진 채로 부동산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대체 집이 무엇이길래, 싶었다. 그리고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었다.

하재영 지음, 라이프앤페이지 출간
하재영 지음, 라이프앤페이지 출간

이 책은 작가가 어려서부터 살았던 집들에 관해 쓴 책이다. 살면서 기억에 남는 집들과 그 시절에 대한 글이다. 작가들은 늘상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작가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도구로 집을 선택하다니! 어릴 때 글의 제목이 곧 주제일 필요는 없다고, 소재와 주제가 엉뚱하게 연결될 때 그 글이 더 감동이 있다고 알려주시던 국어 선생님 말씀이 떠오르는 책이다. 내가 살았던 집이 소재이지만 그 집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따로 있다. 집을 통해서, 그 집안을 흐르던 분위기와, 재개발 예정 지역의 집을 구할 수밖에 없던 일과, 그 집의 낡은 창틀과 구조를 묘사하는 것을 통해서, 스스로 집을 가꾸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낸 집에 대해서, 그 집들을 통해서..... 작가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한다.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가 그 사람을 드러내는 훌륭한 도구라는 생각을 이 전엔 해 본적이 없었다. 신선한 발상이었다.

더구나 작가의 이 글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집들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가능빌라가 떠올랐다. 부모님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우리나라 남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이사를 하셨었다. 그 때 구할 수 있었던 최선의 집이 가능빌라였다. 가능빌라는 추웠고, 화장실에서 물이 역류했고, 창문은 덜컹거렸다. 시골에서 상경해서 공부를 잘했던 동생과, 적응하지 못해서 힘들었던 동생과, 묵묵히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부모님이 책을 읽으며 떠올라서 잠시 울었다. 오랫동안 그 시절을 잊고 있었는데, 작가가 재개발 예정 지역의 집을 묘사하는 창틀 모습이, 가능빌라의 창틀이었다. 그 시절을 거쳐 밝고 깨끗한 새 아파트로 이사 가던 때도 떠올랐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주었던 지인들도 다들 나와 비슷했다. 책 읽는 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지인은, 망설이며 이 책을 골랐지만 다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신이 살았던 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느라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고 했다. 누군가 어떤 집 얘기를 하면 듣는 이들도 아 나도 그런 집에 살았어 하고 또 다른 시절을 떠올렸겠지. 중국의 작가 위화가 예전에 했던 말이 있었다. 자신이 쓴 작품 한 개가 천명의 독자가 읽는다면 천개의 작품이 된다고. 이 책은 충분히, 천개의 작품이 되는 글이었다.

집이 나의 소유인지 아닌지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이 집에서 한 시절을 살고 있다. 물론 집 값 때문에 속상한 시절 자체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이 책을 읽은 후에 친구들과 차를 한 잔 마셨다면 좀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 같다.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세금이 왜 이리 복잡한지 얘기하는 것 말고도 내가 살았던 일층 집 앞 마당과 성당의 종소리가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아이들이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는 시절동안 일층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이야기 했었겠지. 그 시절을 함께 보낸 동네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헤어지는 발걸음이 더 가벼웠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삶에 이런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잊어버리고 있던 가능빌라를 떠올리는 일, 대세의 흐름(부동산의 자산으로서 가치) 말고도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나누도록 도와주는 일, 마음속 우물에 차고 시원한 물이 마르지 않고 찰랑거리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강솔 / 소나무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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