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화풍정 - 솥발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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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화풍정 - 솥발의 역할
  • 승인 2021.12.24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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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사람은 입에 무엇을 넣고 소화시켜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먹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 순위가 된다. 지금은 조금 더 복잡한 문제가 되었지만 고대에는 위정자의 능력을 가장 쉽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그 나라의 국민이 먹고 사는 데에 문제가 없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뜻에서였는지, 鼎이라고 불리는 무쇠솥은 고대로부터 왕가의 상징이 되었다. 鼎은 몸통이 둥글고 발이 세 개 있으며 양 옆에 귀라고 불리는 손잡이가 있는 모양이 대부분이다.

그런 만큼 당연히 주역에도 정(鼎)괘가 있다. 위에는 불이, 아래에는 바람이 있는 화풍정괘는 바람이 불어 활활 타오르는 불이 사람의 뱃속을 채우고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모양을 하고 있다.

정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鼎 元吉亨

彖曰 鼎象也 以木巽火亨飪也 聖人亨 以享上帝 而大亨 以養聖賢 巽而耳目聰明 柔進而上行 得中而應乎剛 是以元亨

 

인류의 문명은 물과 불로부터 출발했다. 마시고 사용하며 가축과 농작물을 기를 물과 음식을 조리하고 무기와 도구를 제련하며 보온과 짐승으로부터의 보호를 해줄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그 숫자를 늘렸다. 요리를 한 음식과 날 것 상태의 식재료는 소화 흡수율이 다르다. 당연히 익힌 음식이 위생적으로도 안전하다. 그러나 요리는 재료 뿐만 아니라 도구가 있어야 가능하다. 불에 굽는 것은 나무 꼬치로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끓이는 요리는 반드시 냄비 역할을 하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한국전쟁때 피난을 갔던 피난민들은 ‘솥을 짊어지고 가다가 밥을 해 먹었다’고 말했다. 그 고된 피난 생활에도 무거운 솥을 짊어지고 다닌 이유는 단 하나, 그게 없으면 밥을 해 먹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주역에서 말하는 솥도 마찬가지다. 백성을 먹이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며, 무쇠로 만든 큰 솥이라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귀한 것이다. 그러니 성인이 그것을 다루어야 하고, 거기서 나온 결과물로 하늘에 제사도 지내고 미래의 동량이 될 인재도 기른다.

 

初六 鼎顚趾 利出否 得妾 以其子 无咎

 

초육은 가장 아래에 있는 음효이다. 부드러운 것이 가장 아래에 있으면서 위로 무거운 것을 받치고 있다면 쓰러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쓰러진 김에 솥 안의 이물질들을 쏟아내고 깨끗이 씻을 수 있다면 도리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초육은 구사와 음양응을 이루지만 음이 양 자리에 있어 그 자리가 바르지 못하다. 그러니 첩이라는 말에 비유했다. 하지만 음양응을 이루니 자식을 둘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힘이 약해 솥을 엎어지게 했지만 그 덕에 나쁜 것을 치울 수 있으니 길하다고는 하지 못해도 허물은 없다.

 

九二 鼎有實 我仇有疾 不我能卽 吉

 

솥에 무언가가 가득 차 있으면 엎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상전에는 愼所之也라 하였다. 아래에 있는 초육이 약해서 흔들거리는 것은 조금만 건드려도 기울어져 내용물을 쏟아버릴 수가 있는 균형 안 맞는 솥과 같다. 그러니 구이가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한다. 구이는 음의 자리에 있는 양효라 입지가 불안정하다. 구이의 짝인 육오는 음효이기에 주변에 있는 양효인 구사나 상구가 육오를 넘볼 수가 있다. 그러나 구사는 초육과 이미 짝을 지었고 육오를 넘볼 상태가 아니며, 강한 상구는 구삼의 짝으로 음양응이 맞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양효들보다 원래 제 짝인 구이가 유리하다. 솥에 가득찬 것이 있는 것은 육오와 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고, 양효라 강한 구이가 마음대로 그것을 휘둘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九三 鼎耳革 其行塞 稚膏不食, 方雨 虧悔終吉

 

정괘에서 가장 알쏭달쏭한 효사 중의 하나인 구삼에는 솥의 귀가 나온다. 솥의 귀는 솥을 들 수 있는 양 옆의 손잡이를 말한다. 革에 대한 풀이로 많이들 ‘바뀌다’나 ‘고쳐지다’를 쓰는데 나는 말 그대로 그게 가죽이라고 생각한다. 육오의 효사에 耳 다음으로 金鉉이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때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상전에는 鼎耳革 失其義也라 했다. 그 의의를 잃었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솥에 손잡이가 있는 것은 달궈진 솥을 직접적으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장갑 같은 것을 이용한다 한들 속에 뜨거운 것이 들어있는 솥을 만졌다가는 크게 화상을 입고 속에 있는 것도 엎어버릴 수가 있다. 그래서 손잡이가 있는 것인데, 그 손잡이가 쇠가 아닌 다른 재질의 것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해보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 무쇠 솥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재질은 같은 무쇠밖에 없다. 가죽이 아무리 튼튼하다 한들 뜨거운 열기에 닿으면 견디지 못하고 삭아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솥은 불에서 내릴수조차 없다. 불을 꺼트린다 하더라도 솥을 옮길 수 있을때까지는 또 한참 기다려야 한다. 稚膏는 푹 고아낸 꿩고기 요리일 것인데, 膏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미 다 졸아붙은 것이라 불 조절이 안되면 타서 못먹게 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손잡이 때문에 솥을 옮기지도 못하고 잘못하면 긴 시간동안 애써서 만든 고를 못먹게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마침 비가 내린다. 비는 무쇠솥도 식혀주고 남은 불도 남김없이 꺼트려줄 것이다. 그렇게 식고 나면 손잡이가 없어도 솥을 들어서 옮길 수 있다. 虧悔라는 말은 내가 생각하기엔 고비를 겪고 난 후 이제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이런 고비를 겪고 나면 더 이상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다. 그렇게 해야 마침내 길할 수 있을 것이다.

 

九四 鼎折足覆公餗 其形渥 凶

 

초육이 솥을 엎었을 때와 구사의 상황은 다르다. 초육은 음식을 조리하기 전 불순물들이 들어 있던 솥을 엎었던 것이지만 구사는 구삼에 이르기까지 만들어둔 귀한 음식을 엎은 것이다. 물론 구사 입장에서야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무쇠로 만든 솥의 다리가 부러졌다는 것은 이미 음식을 만들기 전에 그 솥의 다리가 취약했을 가능성을 무시했거나 알아채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가 있다. 그러니 覆公 信如何也라 한 것이다. 들고 오다가 잘못해서 쏟은 것도 아니고 솥째로 엎어버렸으니 되돌릴 방법이 없다. 흉할 수 밖에 없다.

 

六五 鼎黃耳金鉉 利貞

 

솥의 손잡이를 금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면 대단한 부자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솥을 만든다고 하면 그건 요리용이 아니다. 앞서 말한대로 하늘에서 선택받은 덕이 있는 왕가만이 그 상징으로 솥을 가질 수 있었다. 음효가 다섯번째 자리에 있는데 이로울 수 있는 것은 이 음효가 솥 안을 실체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상전에는 鼎黃耳 中以爲實也라 하였다. 공간을 실제적인 것으로 채우는 것은 음에 속한다. 귀한 솥을 받아 그 안을 채우는 역할을 육오가 충실히 해준다면 이로울 수 있다.

 

上九 鼎玉鉉 大吉无不利

 

옥은 금보다 귀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귀한 물건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요리하기 위해 쓰는 물건은 아니다. 구사까지의 솥이 실제로 요리를 하기 위한 물건이었다면, 육오와 상구의 솥은 단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성현을 기르기 위한 물건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정도를 걷겠다는 다짐이며, 성현을 기르는 것은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을 갖춤과 더불어 그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길하고 이로울 수 밖에 없다. 또한 상구는 육오의 자리를 넘보지 않고 육오가 내실을 다질 수 있도록 돕는다. 단전의 柔進而上行 得中而應乎剛이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솥의 다리가 세 개인 것은 왜일까? 안정적인 것으로 따지자면 네 개인 편이 훨씬 안정적일 것이다. 그러나 만들때 드는 비용과 과정을 생각하면, 위치만 잘 잡아주면 세 개로도 충분한 다리를 굳이 귀한 무쇠를 더 들여 네 개로 만들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해지는 말대로 우왕이 鼎을 만들어낸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의미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다리가 세 개인 솥은 그 중 하나만 짧아져도 크게 기울어진다. 그 중 하나가 없다면 아예 세울 수조차 없다. 이 다리 세 개가 고르게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솥 안에 든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든 상관이 없다. 그건 그저 엎어져 땅에 쏟아지게 될 운명인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기억하고 되새기라는 뜻일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 하늘이 준 기회와 나를 도와준 사람들과 나의 노력의 방향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말이다.

대통령 선거가 이제 넉 달 앞으로 다가왔다. 양측 후보 진영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이슈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과연 어느 쪽 솥에서 밥을 같이 먹던 사람들이 웃게 될지 알 수 없다. 어느 쪽 솥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그 속에 든 것이 쏟아져나오는 것이 과연 흉한 일이 될지 길한 일이 될지는 마지막까지 지켜봐야 알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쪽에서 대권을 잡더라도 크게 실망하거나 관심을 거두지 말고 그 이후에 그 솥 안에 무엇이 담기는지를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5년이라는 시간동안 불에 달궈지면서 온갖 악취를 풍기는 그 무엇이 담길지도 모른다. 한 솥 가득 해놓은 밥이 극히 일부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쓰일 수도 있다. 시민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솥발이다. 그 사실을 스스로도, 그 지지를 얻으려는 사람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미 한번 스스로 부러질 것을 각오하며 솥을 엎어본 경험이 있는 솥발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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