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것이 달라진다
상태바
[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것이 달라진다
  • 승인 2021.11.19 0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주희

서주희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브레인스포팅

“.....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늘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것들인데, 어느날 문뜩 바라보았을 때 온몸에 느껴지는 감정을 경험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나도 모르게 어딘가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아하’ 하는 것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아니면 환자 혹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무언가를 얘기할 때 한군데만 시선이 고정된 채 말하는 것을 알아차려본 적이 있으신지요?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것이 달라진다.’

이 모토가 바로 브레인스포팅의 핵심문구입니다.

데이비드 그랜드 지음,
서주희·고경숙 옮김, 학지사 출간

브레인스포팅은 EMDR 세라피스트였던 데이비드 그랜드 박사가 EMDR로 피겨스케이팅 선수와의 세션 도중 어느 한 지점에서 내담자의 시선이 완전히 고정되어 10분 정도 움직이지 않 은 후, 기존에 해결되지 않았던 트라우마가 완전히 해소되는 경험을 한 것을 바탕으로 이후 임상에서 꾸준히 발전해오며 지금의 모델이 만들어진 트라우마 치료법입니다. 그 피켜스케이팅 선수는 트리플 점프를 계속 실패했었는데, 그날의 세션 이후 완벽하게 성공하였고, EMDR로 처리했다고 생각했던 트라우마들이 다시 완전히 해결되는 기회였다고 했습니다.

브레인스포팅은 트라우마 기억은 사건발생 당시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캡슐화되어 있으므로, 이를 시선을 이용하면 뇌의 깊은 부분(Subcortical level)에 접근이 가능해져 더 깊고 빠른 처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세션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지냐면, 처음 치료자와 내담자가 다룰 테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건을 떠올려봅니다. 그럼 그게 얼마나 불편한지 숫자로 정하고 그것이 몸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아차려봅니다. 이후 몸의 감각을 찾아내면, 그 감각이 가장 잘 느껴지는 시선(주로 포인터를 이용해서 좌우, 상하를 맞춰가며, 몸의 감각이 가장 잘 느껴지는 시선점, 이 지점을 브레인스팟이라고 합니다)을 찾고, 그것을 계속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이때에 Bilateral music이라는 양측성 자극음을 미세한 강도로 듣게 되는데, 청각의 자극이 더해지며 더욱 효과적인 처리가 가능해집니다.

시선을 유지하면서 focused mindfulness(시선은 브레인스팟에 고정한 채, 몸의 여러가지 감각들이 변해가는 것을 내면으로 따라가는 것)을 지나면, 점점 활성화되었던 몸의 감각들이 줄어들며 변하고 이후에는 그 사건을 다시 떠올렸을 때 과각성이나 활성화되지 않고, 다른 관점과 의미로 그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브레인스포팅 세션 장면을 지켜보신다면, 뭐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기존의 말로 하는 심리치료법(Talk therapy)과는 완전히 다르지요.

사실 인간에게 시각이 차지하는 영역은 진화론적으로도, 신경학적으로도, 아주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무의식적인 찰나에 정향반응을 하는 것은 필수적이니깐요. 브레인스포팅은 경험적으로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뇌과학적 기전은 가설일 수 밖에 없습니다만, 현재까지는 Midbrain level에서 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EMDR 역시 샤피로 박사가 공원 산책하다가 우연히 좌우로 눈동자를 굴린 이후에 부정적 감정이 해소된 것을 바탕으로 경험적으로 발견이 된 것입니다.

브레인스포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불확정성의 원리(내담자의 프로세스는 치료자가 예측할 수 없다)와 치료자와 내담자 간의 이중동조(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성이 형성된 장 안에서 일어나는 신경학적 동조)입니다. 치료자의 아젠다를 다 내려놓고 텅 빈 상태에서 내담자 본유의 치유력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허심합도(虛心合道)를 생각나게 합니다. 또한 브레인스포팅을 통해 신경생리학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감정의 변화가 나타나며 사건에 대한 의미가 바뀌게 되는데, 이는 정을 옮김으로써 기분을 바꾼다는 이정변기(移精變氣)를 그대로 뜻하고 있습니다.

개발자인 David Grand박사는 브레인스폿(Brainspot)을 뇌의 경혈점(Acupoint of the brain)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상당히 동양적인 사고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브레인스포팅을 열린 모델로서 기존의 치료법들과 결합하여 얼마든지 통합적인 사용이 가능하게 하여, 현재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활발히 사용중이며, 사용범위도 재난현장에서의 안정화기법, EFT와 결합한 사용법, 아동청소년 대상 브레인스포팅, 통증에도 활용되는 바디스포팅, 수행불안이나 스포츠 징크스 등에 사용되는 익스펜션 모델 등 점점 더 개발되고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뭔가 달라진 느낌을 알아차리셨다면, 그대로 고개를 들고 자연스럽게 시선이 응시하는 곳을 바라봐보세요. 잠시 그곳에 머물면서 몸에서 뭐가 느껴지는지 알아차려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한의학과의 결합을 통한 무궁한 확장성에 벌써 가슴이 뛰지 않을까요.

 

서주희 /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