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10) 소소한 루틴(Routine)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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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10) 소소한 루틴(Routine)의 힘
  • 승인 2021.09.17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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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몇 년 전 나의 아침은 꽤 무겁고 무력했다. 특별한 계기나 원인도 없이 그런 아침을 8년 가까이 보냈었다. 요즘의 아침은 그때와 다르다. 작고 소소한 변화들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나만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고 모든 것이 조금씩 좋아졌다. 그렇게 쌓아갔던 루틴들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소개한다.

기상은 아침 6시다. 새벽1~2시에 자서 아침 8시에 일어나기도 버거웠던 습관을 과감히 바꾼 후 10시 즘 자서 6시에 일어난다. 6시 40분 즘 집에서 나와 직장까지 1시간 30분 정도 빠르게 걷는다. 10000보가 조금 넘는 9km정도의 길이다. 유튜브 영상을 집중해서 듣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경제에 취약했던 내게 2년 간의 유튜브 청취는 큰 도움이 되었다. 걷기 운동을 하며 듣는 경제, 세계사, 인문학적 프로그램에서 ‘인사이트’를 주는 내용이 들리면 메모해두었다가 출근 즉시 노트에 기록한다. 이렇게 2년 동안 2권의 경제노트를 만들었다.

매일 들르는 카페에서 시럽 1/2펌프를 곁들인 아이스 라떼를 들고 진료실에 도착하면 한약 1포와 커피를 마신다. 이때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아침 기분을 기록한다. 기분 점수와 함께 아침에 떠오른 걱정이나 기분, 다짐 등을 세 문장 정도로 기록한다. 기분이 쳐지거나 걱정이 있는 날엔 다이어리 앞면에 기록해둔 나만의 ‘응급 기분회복 문장’들을 보며 평정심을 찾는다.

8시 40분부터 20분은 실내 운동 시간이다. 경추부 근육들을 볼(ball) 마사지로 풀고, 전신 스트레칭, 푸시 업 50개까지 마치고 나면 9시가 된다. 9시부터는 유튜브의 명상채널을 들으며 10분간 명상을 한다. 잡념과 불필요한 감정들은 명상을 통해 갈무리된다. 명상을 하면서도 계속 떠오르는 생각이나 기분이 있다면 기록을 해서 머릿속에 맴돌지 않게 한다.

오전 회진이 끝난 후엔 감성 충전 시간이다. 가볍게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여행 유튜버들의 여행 영상을 통해 기분을 좋게 만든다. ‘빠니보틀, 곽튜브, 정원의 세계여행, 트립콤파니, 몽골사는JP, 희철리즘, 뜨랑낄로’ 등의 채널이 지난 2년간 나에게 힘이 되어준 여행채널이다.

오후 회진과 청구를 마치고나서는 의뢰받은 칼럼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내용을 요약한다. 이렇게 요약한 내용은 한글파일로 정리한 후 제본을 해서 책으로 만든다. 300페이지 가량의 책이 4권 째 만들어졌다. 퇴근을 앞두고서는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버피(Burpee) 및 다리 근력 운동을 한다. 매일해도 항상 힘들지만, 돈을 내고 긴 시간 투자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운동이 만족감은 더 크다. 퇴근길 역시 바로 지하철을 타지 않고 30분 정도 걷고 나서 타는 편이다. 운동을 즐겨하지 않던 내게 운동은 늘 숙제 같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다.

과거에 전혀 하지 않던 루틴들을 하나씩 실천해 가면서 변하는 나를 발견했다. 기분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매일 반복하는 사소한 습관들이 나의 인생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경험했다. 루틴을 다 하고 나면 소소하지만 성취감이 생긴다. 아침을 성취감으로 시작하는 것, 어제의 기분을 오늘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루틴의 가장 큰 효과다. 작은 성취감은 자존감을 높이고 다른 일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발전했다.

초안(草案) 초고(草藁)라는 단어가 있다. 처음의 의견이나 원고를 뜻하는 이 단어들의 ‘초’가 당연히 처음 초(初)인 줄 알았는데 풀초(草)라는 사실을 며칠 전에야 알았다. 풀처럼 흔들리고, 꺾이며, 쉽게 베어질 수 있는 것이라서 풀초(草)를 썼다고 한다. 자기만의 루틴들이 그렇다. 처음엔 낯설고 몸에 익숙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난 후엔 안 하는 것이 어색해진다.

나는 처음부터 높은 목표를 잡지 않고 ‘약간 힘들지만 내일도 하고 싶은 정도’의 강도로 시작했다. 유독 피곤한 날은 거르는 대신 조금 줄여서 했다. 체력이 여유 있는 날엔 조금 더 했다. 힘들다 싶으면 멈추되 다음날도 잊지 않고 했다. 루틴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그저 ‘매일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우리의 의지도 풀(草)처럼 꺾이고 흔들릴 수 있지만 처음엔 다 그렇다. 루틴의 종류가 바뀌어도 아무 상관없다. 나만의 루틴이 있고 그것을 매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수록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많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실패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실패를 잊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럴 때 내 마음의 평안(平安)과 안녕(安寧)을 위해 작은 습관들을 루틴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내가 그랬다. 작은 습관들을 매일 실천하면서 생기는 안정감과 성취감은 미래에 대한 이유 없는 불안을 낮춰주고 사소한 일에 예민해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었다. 내 정신이 방황하지 않고 오늘에 머무를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었다. 이 작은 루틴들을 다 하고나면 오늘도 어제처럼 평온하리라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여러분도 소소한 루틴으로 평온한 아침이 되기를, 그래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기를, 우리의 마음이 평화롭기를!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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