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77> - 『治膳方』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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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77> - 『治膳方』① 
  • 승인 2021.09.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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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시골살림에 빠트릴 수 없는 먹거리 장만

  처서가 지나니 혹심했던 더위도 어느덧 저만치 물러가고 청량한 밤공기가 성큼 다가선다. 아직 실감이 나진 않으나 조만간 추석 차례 상에 올릴 薦新과 가을걷이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오랜만에 들린 단골책방에서 쓰다만 잡기장처럼 서가 한구석에 방치된 필사본 하나를 집어 뒤적이다 깜짝 반가운 내용을 발견하였다.

 ◇ 『치선방』

  진즉 앞뒤가 떨어져 나간 탓인지 살아남은 본문지면에 덧대어 표지를 만들어 붙이고 공을 들여 修補해 놓은 품이 상당히 소중하게 여긴 듯하다. 겉표지 서명은 『天機大要』로 되어 있고 덧바른 종이 아래에도 ‘天機’라 적혀 있다. 아마도 후인이 개장하면서 내용을 잘 몰랐던지 아니면 뒤쪽의 選擇편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인지 아무튼 원래 담아놓은 내용과는 무관한 다른 이름을 적었다.

  남아있는 본문 첫머리는 ‘治膳’으로 시작한다. 다음 편의 소제는 果實, 茶湯, 粉麪餠飴, 粥飯, 蔬菜, 魚肉 附煮泡, 造酪法, 造酥油法, 造醬, 造醋, 造麴, 釀酒 등 전통식문화와 각종 식음료, 반찬, 유가공품, 장류 제조 및 양조방에 관한 항목으로 이어져 약선이나 식치에 관심을 둔 독자들에게 한껏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준다.

  익숙한 조문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띠는 지라 차분하게 대조해 보니, 홍만선이 엮은 『산림경제』2권 치선편의 주요 골자에 해당하는 내용을 등초한 것이었다. 후반부에 실린 것 역시 같은 책  4권 선택과 잡방 가운데 일부를 채록해 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마분지로 덧댄 표지에는 乙巳年이라 적은 명문이 있으나 아무래도 흩어진 원고를 모아 粧冊한 시기로 보이는데, 대략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해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비해 본문은 지질이나 먹빛으로 보아 1~2갑자 이전에 옮겨 적은 것으로 보여, 등초 시기는 대략 1800년 전후로 추정할 수 있다.

  치선편 도입부는 다음과 같은 敍說로부터 시작한다. “밭을 가꾸고 실과를 심고 가축을 치고 물고기를 기르고 하는 것은 실로 시골 살림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며, 실과를 갈무리하고 남새(나물)를 햇볕에 말리고 생선이나 고기를 찌거나 익힌다든지 차를 달이고 술을 빚고 초를 빚으며, 장 담그는 일 같은 것은 저마다 방법이 있고 일용에 요긴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이에 반찬 만드는 법(治膳之方)을 적어서 제9편을 삼는다.”(민족문화추진회역)

  과실조에는 여러 가지 생과 收藏法이 적혀 있는데, 그 중 약재를 활용한 방법 몇 가지만 예로 들어 본다. 가을에 많이 쓰게 되는 잣[松子]은 방풍 두어 냥과 함께 두면 둘 다 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燈心을 잘게 베어 섞어서 갈무리하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묵은 밤은 하룻밤쯤 물에 담갔다가 불에 말리면 속껍질이 모두 겉껍질에 달라붙어서 햇것 같다고 했으니 응용해 봄직하다.

  해를 넘겨 배를 보관하는 기막힌 방법도 보인다. 흠집 없는 큰 배를 가려, 속이 비지 않은 큰 무를 골라 배 달린 가지를 꽂아두고 종이로 싸서 따뜻한데 두면 봄이 되어도 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저온보관시설이 없던 시절, 겨울을 넘겨 과일을 보관하는 법으로 고안되었던 것인데 튼실한 무의 진액을 빨아들여 겨울을 나게 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이 강구되었던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감귤도 무에 가지 채 꽂아두면 봄이 되어도 상하지 않는다 했다.

  상반된 物性과 氣味를 이용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예컨대, 금귤을 은이나 주석으로 만든 그릇 속에 두거나 참깨와 섞어 갈무리해 두면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 또 금귤을 녹두 속에 넣어두면 오래도록 변하지 않으니, 귤의 성질은 뜨겁고 녹두의 성질은 차기 때문에 오래 가는 것이라고 그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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