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09) 마이너스 10%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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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09) 마이너스 10%의 효과
  • 승인 2021.08.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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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올 2분기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은 22조74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7% 늘었다. 역대급 실적을 거둔 2분기보다 3분기 실적은 더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다. 반면 주가는 올해 초 9만원을 넘었던 것에 비해 현재 8만원 언저리에서 머무르고 있다. 실적이 이렇게 좋은데 주가는 왜 내렸을까?

주식회사는 궁극적으로 시가총액이 늘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다. 더 많은 돈을 투자 받으려면 회사가 발행한 1주의 가격이 높아져도 그 주식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시가총액이 늘고 회사의 가치가 높아진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보이지 않으면 투자가 줄어든다. 정점에 이른 현재는 가장 좋은 순간이지만 나빠지기 시작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정점을 앞둔 이 때 10%의 남은 에너지를 천천히 꺼내 쓰는 방법이 있다. 정점에 도달해서 내리막을 걷기보다 다음을 기다리게 만드는 희망과 꿈으로 그곳을 비워두는 셈이다. 9부 능선 즘에서 시간을 두고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정점을 점점 높여가는 전략적 여유다. 이렇게 남긴 10%는 지나온 90%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할 때가 많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라도 100%의 힘으로 지속하다가는 결국 지친다. 더 잘할 수 있다 해도 10%의 여지를 남겨두면 실망이 줄어들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90을 노력하고 70의 결과를 얻었다면 다음에는 다시 70부터 시작하면 된다. 100을 노력하고 포기하는 것보다 ‘안 되면 다음에 또 하지’라는 10%의 여유가 다시 도전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100%의 노력을 지속하다보면 상대는 거기에 익숙해진다. 나의 100%가 상대에겐 normal standard가 된다. 그러다 힘에 부쳐 90%만 되어도 실망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호의에는 쉽게 익숙해지고 실망에는 기다림이 없다.

좋은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100%의 최선에서 10%를 덜어내는 것이 좋다. 더 노력할 수 있는 10%, 다음이 기다려지는 10%가 남아있을 때 좋은 관계는 지속된다. 첫 개원 때의 100% 친절에 익숙해진 초창기 단골이 사소한 일로 삐져서 한의원에 발길을 끊는 경우, 사귀는 내내 모든 것을 다 바친 연애가 사소한 일로 이별이 되는 경우는 흔한 일들이다.

더 좋아질 것이 없는 최고의 순간(peak)은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지금 100%의 힘을 다 쏟을 수 있다 해도 10%는 아껴두자. 노력했지만 잘 안될 수도 있다는 의연한 마음, 목표한 바가 실패할 때를 대비한 플랜B, 조금 더 노력하면 다음에는 될 것 같은 희망이 10%를 구성하면 된다. 비어있으나 비어있지 않은 것, 보이지 않지만 채워져 있는 그 10%, 이 공간의 유무(有無)가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Space가 ‘여유’와 ‘우주’라는 중의적 단어라는 것이 이런 의미일까? 10%의 빈 공간(space)을 확보할 수 있는 자에게 새로운 우주(SPACE)가 열린다는 상상을 덧붙여 본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 같은 희망이 있어야 포기하지 않고, 만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 기대되는 사람에게 호감이 간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음’이 기대되는 존재가 사랑받는다. 투자가 이어지는 곳도 역시나 ‘다음 스텝’이 기대되는 회사다. 현재 100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사람들의 기대보다 조금 넘어서는 90정도만 보여주는 것도 기술이다. 기대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기술,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을 기다리게 하는 이 능력이 중요한 시대다.

삼성전자 1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128조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 중이다. 이는 약 30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인텔과 대만 TSMC의 4배를 웃도는 금액이다.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다음엔 어떤 사업을 펼칠지 보여주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일부러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삼성전자의 미래가 궁금하고 대중들이 다음 행보를 기다리게 되는 순간, 삼성전자의 주가도 올라가리라 예상해본다.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지만 다음엔 어떤 사업을 할 지 늘 기다려지는 테슬라와 카카오의 주가가 한껏 올라갔듯이 말이다.

세상은 100보다 90에 더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보여주지 않은 그 10%에 세상 사람들은 꿈과 기대를 담아 투자를 한다. 100일 때 90을 공개하고 110에 이를 수 있을 때 100을 공개하는 것, 그런 절제와 기다림이 새로운 우주를 만든다. 희망과 꿈의 공간 10%를 확보하는 힘, 마이너스10%가 미래를 바꾼다. 평생의 꿈, 금메달을 놓친 선수가 승자의 팔을 들어주는 순간이 감동적인 이유도 다음을 기약하는 마이너스 10% 때문이 아닐까.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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