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깨달음의 의학,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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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깨달음의 의학, 한의학
  • 승인 2021.07.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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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정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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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암은성한의원 원장이자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사암한방의료봉사단 위원장이며, 서울 중랑구한의사회 수석부회장이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도서비평┃보통의 깨달음


학생이었을 때 ‘사암도인침술원리 40일 강좌’에서 경험했었던 일이다. 강의 첫날부터 선생님께서는 3박 4일을 재우지 않고 철야로 강의하셨다. 지금은 거의 없지만 당시에는 선생님 댁에서 사숙하며 도제식으로 한의학을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하루에 한 끼 정도, 배고픔만 면할 정도의 식사를 하면서 씻지도 않고 경기도 남양주 산속에 있었던 선생님 댁에 마련한 강의 장소에서 강좌를 들었다. 한두 명씩 배고픔과 수면 부족을 이기지 못하고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3박 4일 철야 강좌가 마치 3주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스티브 테일러 지음,
추미란 옮김, 판미동 출간

명상하고 있을 때 의심이 들었다. “밥은 꼭 세끼를 먹어야 하는가? 밤에 잠을 꼭 자야 하는가? 아침에 세수는 꼭 해야 하는가?” 등등 지금까지 내가 규범처럼 여기던 습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갑자기 더러움과 추함, 밝음과 어두움의 경계가 사라지는 영감을 얻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것이 깨달았다는 것인가? 신기하고도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이러한 경험이 좋아서 한의학을 더욱 깊이 공부하려고 애썼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깨달음에 관해 정리한 책이 있다. 스티브 테일러의 『보통의 깨달음』에서는 깨달음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깨달음의 종류, 증상, 진단, 특징, 예후 등등 깨달음을 마치 정신과 질환처럼 알기 쉽게 정리하였다. 일단 저자가 깨달은 사람인지 아닌지 평가할 수 없기에 책의 내용을 신뢰하기 힘들지만 깨달음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리는 한번 읽어 볼 만하다.

저자는 동양과 서양에서 깨달음에 대해 정리하였다. 동양의 종교에서 깨달음은 중요한 목표이다. 서양의 기독교나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에고(ego)를 버리지 않고 사람을 닮은 유일신을 만들었기 때문에 깨달음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고 한다. 기독교나 이슬람에서도 소수의 신비주의자는 신을 분리하지 않았고 신과 같이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이들 종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깨달음의 공통된 특징은 “합일, 내면의 텅 빔, 이타심과 자비심, 자신의 포기, 세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 깊은 행복 등등”이다.

깨달음의 종류로는 “자연스럽게 깨어나기, 단계적으로 깨어나기, 갑자기 깨어나기” 세 가지가 있다. 자연스럽게 깨어나는 것은 주로 예술가들이나 학자들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깨어나는 것은 불교에서 스님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윤리적 행동, 절제, 무욕, 봉사, 명상”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깨달음의 특징으로 지각적, 내면적, 관념적, 행동적 특징 이렇게 네 범주로 나누어 보았다. 지각적으로는 극도로 예민해지고 현재에 깨어있다는 것이다. 내면적으로는 고요해지고 행복함을 느끼며 자연과 분리감을 초월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관념적으로는 집단 소속에서 벗어나 넓은 시각에서 책임감 있는 삶을 살려고 한다. 행동적으로는 이타적이면서도 물질에서 벗어나 무위의 삶을 즐긴다는 특징이 있다.

저자는 깨달음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지적하고 있다. 깨달음은 비범한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평범한 마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깨달음이 삶의 끝이 되어서는 안 되고 새로운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물질만능주의, 인간중심주의, 분리주의를 초월하고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깨달음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설문 조사를 마련하여 깨달음 정도를 확인할 수도 있다.

깨달음에 대한 체계적인 해석으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깨달음의 길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저자의 의견대로라면 앞서 이야기한 ‘사암도인침술원리 40일 강좌’에서 경험한 것도 일종의 깨달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불현듯 강좌의 목표가 ‘비교 없는 생각, 상대주의 학습, 느낌 철학의 개발’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 ‘사암도인침술원리 40일 강좌’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강좌였다.

항상 깨어있는 마음으로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의학의 상대주의적 철학과 음양관을 이해할 수 있다. 자비심 있고 이타심을 행할 수 있는 한의사라면 환자를 감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분리주의를 타파하고 우리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 한의학의 정신은 위대하다.

그런데 난 왜 깨달으려고 하는 것일까?

 

정유옹 / 사암침법학회,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정유옹
서울 사암은성한의원 원장이자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사암한방의료봉사단 위원장이며, 서울 중랑구한의사회 수석부회장이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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