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막힐 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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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막힐 鬱
  • 승인 2021.07.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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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30

두 체질

교과서란 흔히, 해당하는 분야에 대한 여러 연구자의 다양한 의견과 자료들이 섞여서 편집된 결과물이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신경정신과의 황의완 김지혁 두 분이 중심이 되어, 1987년 6월에 펴낸 『동의정신과학』에 수록한 서양 정신의학의 내용은, 아마도 일본책인 『現代の精神醫學』에서 대부분 가져온 듯하다. 임상과목으로 한방신경정신과학을 처음 배울 때는 『동의신경정신과학』과 『심신증』을 함께 쓰다가 본과 4학년 2학기에 이 책을 샀다. 그런 후에 지금까지 30년이 훨씬 넘도록 이 책은, 잦은 이사에도 내 서가에서 무겁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뿐 그걸 펼쳐볼 일은 별로 없었다.

이 책의 541쪽부터 불안신경증(anxiety neurosis)이 나온다. 542쪽에서 증상을 기술하고 있는 부분을 아래에 차례로 인용한다.

늘 걱정하고 만사에 불안하고 긴장되어 있고 겁 많고 회의적이며 마음이 앞서지만 우유부단하여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는 성격 즉 불안한 성격의 사람에게 흔히 불안신경증이 생긴다. 이런 불안한 성격의 사람은 민감하고 특히 남의 의견에 신경을 쓰며 실수나 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한다. 또 이런 불안한 성격의 사람은 꼼꼼하고 지나치게 양심적이고 야심도 많고 자기가 세운 높은 수준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현실이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불안해지고 열등하게 느낀다.

그리고 단락이 바뀌며 아래의 내용이 이어진다.

불안신경증의 환자는 항상 불안 긴장 걱정 초조감에 감싸여 있기 때문에 남 보기에 불안스럽고 갈팡질팡하고 남으로부터 극성스럽다든가 안달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들은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들떠 있어 잘 잊어버리고 항상 피로하며 잠들기가 힘들다. 잠이 들더라도 꿈이 많고 악몽에 쫓기고 아침에 깨면 개운하지 않다. 늘 지쳐 있으며 간혹 자다가 우울해지기도 하고 발작적으로 울기도 한다.

이 교과서의 내용대로라면 윗단락의 ‘이런 불안한 성격의 사람’이 아랫단락의 ‘불안신경증의 환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진행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학생들의 태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1997년 이후부터는 완고한 체질론자가 되어버린 나의 처지에서는 이 두 단락의 내용이 도저히, 동일한 인식의 흐름을 가진 개념으로 수용되지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위 두 단락의 개별적인 내용은 정반대의 두 체질이 보여주는 특성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단락으로 구별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이 내용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두 체질이 떠올랐다.

체질론을 공부하게 된 이후로는 어떤 분야의 책을 보던지 늘 이런 식이 되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막혀서 꼬이게 되면 더 이상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심신증

보통, 정신적인 원인으로 발생되는 신체질환을 심신증(心身症 psychosomatic disease)이라고 하는데, 사실 모든 질병은 심신증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무 이제마 공은 『동의수세보원』의 「사단론」에서 “인생의 관건이자 건강의 핵심”으로 애노희락(哀怒喜樂)을 제시했다. 『동의수세보원』은 체질의학의 원전이므로 이 사상(思想)은 체질의학이 지닌 기본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모친의 권유

이 환자를 처음 만난 것은 2020년 8월 3일이다. 미리 다녀간 어머니의 권유로 남편과 함께 체질을 감별 받으려고 왔다. 식후에 답답하고 가스가 올라오는 거 같으며 많이 먹는 것 같으면 잠이 온다고 했다. 입 주위와 턱 주변으로 피부트러블이 있었다. 처음 두 번은 수음체질(Ves.)로 보았으나 8월 22일에 세 번째 만났을 때는 금양체질(Pul.)로 감별하고 섭생표를 주었다. 체질침은 [ⅠqⅤqⅢ",+ⅠqⅥqⅢ",] 이 처방으로 시술했다.

2020년 10월 22일에 어머니와 함께 와서, 2일간 검은색 대변을 본 뒤에 다시 정상색의 대변을 본다고 하면서, 검은색 대변을 보기 전에 1주일간은 배가 몹시 아팠다고 했다. 또한 턱 주위로 피부발진이 심하여 한약을 처방 받기를 원하여서, 체질침을 놓고 미후숙산탕을 한 달분 처방하였다. 미후숙산탕은 미후도식장탕에 숙지황과 산수유를 더 넣은 것이다. 체질을 감별 받으러 왔을 때는 모친이 누구인지 몰랐는데 이날 누구신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오래도록 소화문제로 고생하던 분인데 내원초반에는 수음체질로 잘못 보다가 금양체질로 감별된 분이다.

 

방광염

환자가 오기 전에 모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 방광염이 심한 상태인데 항생제를 처방 받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환자가 금양체질이라 항생제 투여가 이롭지는 않을 텐데 현재의 정황을 모친의 전언만으로는 잘 알 수 없어서 ‘따님에게 한의원에 들르라 이르라’고 했다.

환자는 2021년 4월 6일(화)에 남편과 함께 왔다. 작년 12월에 빈뇨가 시작되었고 두 달 전부터 더 심해졌다고 한다. 야간에도 잠을 이루지 못해 계속 뒤척이게 된다고 했다. 12월에 소변을 오래 참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실수를 한 후부터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증은 거의 없고 혈뇨도 없다. 내원한 전날에도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30번 갔다고 하는데, 남편이 옆에서 ‘샤워를 하다가도 줄줄줄 나온다’고 보탠다.

증상이 생긴 뒤로 병원에서 방광염이라고 듣고 항생제를 계속 처방 받아서 복용하여 왔는데, 이 사실을 모친께서 뒤늦게 알고는 걱정이 되어 내게 전화했던 것이다. 나는, 항생제는 금지한다고 했다. 체질침은 [ⅩqⅧqⅣ",×2+ⅠqⅤc,×2]을 놓고 10월 22일과 동일한 한약을 처방했다. 그리고 한약을 먹더라도 계속 침을 맞으러 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남편의 동행

4월 10일 토요일에도 남편이 동행했다. 침을 맞은 화요일과 다음날 수요일은 좋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시 자주 소변보러 가고 밤에 1시간마다 깬다고 한다. 체질침은 [ⅩqⅧqⅣ",×2+ⅠqⅧc,×2]으로 주방(主方)은 그대로 쓰고 부방(副方)을 바꾸었다.

압박

지난 토요일에 침을 맞고 이틀간은 잘 버텼다. 어제 낮부터 다시 자주 가게 된다. 밤에는 3일 동안은 한 번씩만 갔고 지난밤에는 소변이 마려운 것을 참으며 일어나지 않고 잤다고 한다. 밤에 깨지 않게 된 것은 좋은 변화라고 해주었다.

이날은 남편이 함께 오지 않았으므로, ‘지금 누가 압박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며 그간 참았던 것을 물었다. 사실 두 사람은 처음 내원할 때부터 커플 헤어 룩(look)을 보여 주었고, 이후에도 같은 패션 스타일을 유지하기도 했으므로 둘의 사이가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이날 오랜 시간 이어진 대화를 통해서 남편과의 관계가 현재 병증의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3년간 연애를 하고 1년 전에 결혼했다. 이 가족은 교회에 다닌다. 남편은 결혼 전에 흡연을 했다. 결혼을 하면 금연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결혼한 후 6개월간 몰래 전자담배를 피우다가 10월에 그것이 발각되어 두 사람이 심하게 다투었다. 이후에 종종 크게 다툴 일이 생겼다. 그때마다 남편의 눈빛이 아주 무섭게 변하고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기도 한다. 결혼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부분이다.

환자는 회사에 다니고 있고 남편은 늦은 대학생이다. 악기를 전공하는 남편의 장래가 불투명하고 이제는 신뢰가 잘 가지 않아, 환자는 아기를 갖고 싶은데 두려워진다고 했다. 서로 헤어지게 될지도 모르니 그렇다고 했다. 이런 정도의 상황이라면 부모님에게라도 사실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지 그랬느냐고 했더니, 부모님은 조부모님을 보살피느라 힘드셔서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위

그렇다면 이 환자를 내가 맡을 수밖에는 없다. 질병이 발생한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핵심은 방광염이 아니라 울(鬱)이다. 울이란 글자는 막힐 울, 답답 울이다. 남편과 처한 상황이 환자에게 울을 만들었고 그것이 최종적으로 빈뇨라는 증상으로 표출된 것이다. 사실 이 증상에 환자 자신의 고의는 없다. 하지만 이 증상은 분명히 남편을 향한 일종의 시위(示威)이기도 하다. 물론 이 대목을 환자에게 말한 것은 아니다.

 

진행형

회사에서 사무실에 있다가 간혹 옆 건물에 있는 현장에 가야 하는데, 1시간 반 정도 머무르는 시간을 참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밤에는 한 번 깬다고 했다. 체질침 처방은 동일하다.

이후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개선되었지만, 환자는 언제라도 다시 동일하게 재발할 수가 있다. 혹여 전혀 다른 증상으로 표출될 가능성도 있다. 남편과의 관계는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남편과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상태이다.

 

V방

처음에 이 환자에게 쓴 체질침 처방의 주방은 염증을 목표로 한 처방이 아니다. 금양체질의 처방으로 2단에 온 대장방(Ⅷ)은, 금양체질에게는 활력방(V)이다. 환자에게 울이 생기면 막히고 답답해지므로, 순환부전이 되어 무력감 저림 시림 불안감 우울감 피로 수면장애 어지러움 두근거림 등의 순환장애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환자에게는 방광 괄약근의 무력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사건 이후 이 환자의 빈뇨는 일종의 불안장애(Anxiety disorder)이기도 하다. 불안장애의 하위 분류로 강박장애, 공황장애, 공포증(phobia) 등이 있다. 나는 이런 불안장애의 원인도 많은 부분 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불안장애 환자에게 적용하는 체질침 처방이 아주 훌륭한 치료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처방 형식이 바로 이 환자에게도 적용한 D'VP'set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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