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07) 발버둥을 멈추니 살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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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07) 발버둥을 멈추니 살길이 열렸다
  • 승인 2021.06.04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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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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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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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세요!’ 운동을 배우는 대부분 레슨장에서 자주 들리는 소리다. ‘힘 빼세요!’라고 수없이 듣지만 그 힘은 대체로 빠지지 않는다. 빼고 싶은데 빠지지 않는 힘, 그 힘의 실체는 뭘까.

15년 전 즈음 골프를 잠시 배운 적 있다. 골프 연습장에 가면 <타이거 우즈>의 스윙 연속사진이 벽면 중앙에 붙어 있었다. 강사 분은 그 포스터 속 우즈의 스윙을 가리키며 여러 사람들을 가르쳤다. 처음부터 최정상을 기준삼아 배우고 가르치는 방식, 우리는 그 과정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영국의 유명한 테니스 코치 한 분은 이와 정 반대로 가르친다고 한다. 그에게 배우러 가면 평소 하던 대로 쳐보라며 아무 말 없이 지켜본단다. 심지어 테니스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도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쳐다만 본다고 한다. 잘 하려고 애쓰는 순간 힘이 들어가서 코치가 정확하게 관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코칭은 모든 힘이 배제된 상태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바로 그곳에서 시작됐다. 힘을 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가 최고의 결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된다.

도달하고 싶은 목표는 높고 현재 실력은 부족해서 의욕만 앞서는 상황, 바로 그 때 힘이 들어간다. 빼고 싶어도 빠지지 않는 힘의 실체다. 태권도 흰 띠는 노란 띠를 목표로 연습해야 하는데 1단이 되려고 용을 쓰면 힘이 들어간다. 처음 배울 때의 열정과 재미는 사라지고 무거운 의무감만 남는다.

불필요한 힘이 빠져야 내 몸의 특성이 드러나고 자연스런 자세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처음부터 프로 선수나 천재의 폼을 따라한들, 정확하고 지속적으로 해내기 어렵다. 힘을 빼고 편안한 폼을 찾아야 부상 없이 오랫동안 해낼 수 있다.

그래서 힘을 빼고 싶은데 힘은 도통 빠지질 않는다. 야구 선수들은 입스(yips)라고 해서 야구공을 원하는 곳에 던지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잘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 상황에서의 압박감이 온 몸의 근육을 경직시켜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무리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려 해도 쉽게 탈출하지 못한다. 남녀 관계에서도 입스(yips)는 흔하다. 연인이 되고 싶은 이성한테는 부자연스럽고 경직된 모습만 보여주다가 안타깝게 끝이 나고, 사심 없이 편하게 지내던 이성과는 어느 새 연인이 되어 있다.

해결책은 하나다.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의 생각들, ‘꼭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등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거의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 생각대로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될 때는 내 생각을 버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어느 기도문에서 본 ‘제 뜻대로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라는 구절에 적극 동의한다. 나의 생각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뜻에 나를 맡기는 거다.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대로 하지 않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를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괜찮다. 주변에서 미덥지 않은 사람이 해주는 조언을 그냥 따라보는 것도 좋다.

반대로 우려하는 일은 미리 피하지 말고 끝까지 가본다. 우려했던 일이 생각만큼 심각한 지 지켜보는 거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100m전에 불안해서 미리 도망쳤다면 이제는 10m 앞까지 가보고 결정해본다. 이렇게 평소의 나와 반대로 행동 해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힘이 빠지고 해결책이 나타난다. 신의 뜻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까.

신의 뜻을 종교적으로 국한할 필요도 없다. 신의 뜻이란 나의 생각을 제외한 모든 곳에 있다. 우연한 기회, 주변 사람들의 제안, 뜻밖에 처하게 된 환경 등 내 뜻을 버리고 만나는 모든 계기가 ‘신의 뜻’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난관과 고통은 내 생각으로 똘똘 뭉친 몸과 마음의 힘을 빼주고, ‘신의 뜻’과 만나게 해주는 기회가 된다. 가고자 하는 길에 장애물이 나타나도 더 좋은 기회를 만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화도 덜 나고 빨리 잊게 된다. 모든 좌절의 순간에서 할 일은 딱 하나다. 힘을 빼고 내 생각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비록 당시엔 확신할 수 없겠지만 분명 ‘신의 뜻’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영국 테니스 코치의 방식처럼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편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을 찾아보자. 불편함이 없는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을 찾는 순간, 새로운 기회와 인연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2020년 중국 후난성에서 물에 빠진 87세 할머니가 구조된 적이 있었다. 그 할머니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물위에 등을 대고 누워 가슴에 손을 가지런히 모았어요. 그랬더니 물에 뜨더군요. 발버둥을 멈추니 살길이 열렸답니다.”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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