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화산려-인생은 나그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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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화산려-인생은 나그네길
  • 승인 2021.05.2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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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여행업계가 큰 타격을 입어 가장 큰 여행사도 존속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2년 전이었다면 인천공항의 대기줄이 한가득일 만큼 해외여행 가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을 5월인데, 요즘 공항은 일자리를 기어이 잃어버린 승무원들이나 공항 하청 업체 직원들의 한숨만이 가득하다. 취미가 여행일 수 있던 시절은 아스라이 멀고, 이제 다시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여행이 취미일 수 있던 시절은 아주 짧았다. 그 전에는 그저 고행이었고, 그 이후에는 사치였으며, 최근 이십년 안쪽에야 취미라고 부를 만한 대접을 받았다. 주역에 등장하는 여행은 고되고 고된 것이다. 요즘처럼 닦아 놓은 길도 아닌 울퉁불퉁한 길을 그저 맨몸으로 짐을 지고 가야 하는 이천여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이었을까? 여기 지금 그 여정을 시작하려는 나그네가 있다.

화산려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旅 小亨 旅貞 吉

彖曰 旅小亨 柔 得中乎外而順乎剛 止而麗乎明 是以小亨旅貞吉也 旅之時義 大矣哉

화산려괘는 외괘인 리괘의 가운데가 음효이고 위 아래의 효가 모두 양효이다. 부드러운 것이 밖에서 중정함을 얻었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자기 짝인 육이와는 서로 음양응이 되지 않으니 옆에 있는 양효들을 따르게 된다. 그게 보통은 올바른 일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게 하는 편이 좋다. 그러니 조금 형통하고, 정도를 알아야 한다.

初六 旅瑣瑣 斯其所取災

처음부터 자질구레하다는 뜻의 瑣 자가 두 번이나 나왔다. 쪼잔하고 쪼잔하다는 것이다. 여행 초반에 가진 돈을 거의 다 쓰고 남은 날 동안 돈을 아끼느라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중에 돈이 모자를까 무서워서 여행 초반에는 아끼고 아끼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초육은 여행길 초반부터 끼니도 제대로 안 챙기고 제대로 된 잠자리도 구하지 않으며 탈 것도 마다하는 나그네인 것 같다. 요즘처럼 먹고 싶다고 하여 음식을 사먹을 곳이 도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쉬고 싶다고 해서 저렴한 숙박 시설을 찾아갈 수 있는 때도 아닌데, 한때의 고집으로 음식을 먹고 쉴 수 있는 기회를 지나치면 또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걸어야 한다. 그러다가 탈진해서 쓰러지거나, 해가 진 다음 산 속에 들어서기라도 한다면 산짐승이나 도적떼를 만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여행길에 도착은 커녕 얼마 가 보지도 못하고 끝나 버릴 수도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안배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六二 旅則次 懷其資 得童僕貞

육이는 초육과는 달리 그래도 여관을 발견했을 때 쉬어가기로 마음 먹은 나그네인듯 하다. 아직 여행 초반이니 노자가 충분히 있고 그래서 돈을 내고 쉬는데도 거리낌이 없다. 여관도 나그네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가진 노잣돈을 긁어내려는 심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나그네를 대접하는 곳인 것 같다. 그러나 이 곳은 내 집이 아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떠나야할 곳이지만, 여행 중에 피곤한 몸을 편히 누일 수 있는 곳을 찾은 것은 행운이다. 육이는 이 찰나의 행운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중이다.

九三 旅焚其次 喪其童僕貞 厲

자기가 묵었던 여관을 불지를 정도라니 대체 어떤 나그네란 말인가. 여관의 대접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까지 지른다니 뭔가 단단히 꼬인 모양이다. 상전에는 旅焚其次 亦以傷矣 以旅與下 其義喪也라 했다. 나그네가 불을 지르면 그 또한 상하고, 나그네가 아래와 더불어 함으로써 또한 의를 상한다는 것이다. 어린 종이 치기어린 마음에 뭔가 실수를 했을 수도 있고, 나그네의 노잣돈을 훔치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종을 혼내고 노잣돈을 되찾거나 주인에게 손해 배상을 요구했으면 되는데, 여관을 불지르는 행위로 해결하려 한 것은 아무래도 옳은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 구삼은 내괘의 유일한 양효이며 자기 짝인 상구와 음양응이 되지 않는 효다. 성격은 불같이 강하고 그래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외로운 사람을 누구나 주위에서 한 명쯤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결국엔 그 성격과 외로움에 어떤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지도 아마 여러번 목격했을 것이다. 구삼의 나그네는 딱 그런 사람이고, 어른으로서 어른의 일을 하지 못하고 어린 종과 같은 수준에서 해결하려 들었으니 위태로움을 자초한 꼴이 되었다.

九四 旅于處 得其資斧 我心 不快

머무를 자리도 있고 도끼에 노자까지 얻었는데 구사는 왜 마음이 편치 않을까? 상전에는 旅于處 未得位也라 하였다. 머무르고 있긴 하지만 내 자리가 아닌 것이다. 구사는 화산려괘에서 유일하게 초육과 음양응을 이루고 있다. 보통 그러면 좋다고 해야 하는데, 구사는 좋은 일이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여행을 가는데 함께 여행을 가는 사람이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해서 식사도 제때 사먹지 않으려 하고, 제대로 된 숙소도 아닌 헛간 같은 곳에서 잠을 자며 돈을 아끼려고 한다면 어떨까? 구사는 초육의 짝인 것이 되려 불편한 상황이다. 구사에게는 노자가 넉넉히 있어도 함께 가는 초육이 저렇듯 쪼잔하게 구니 버리고 혼자만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마음이 편치 않을 수 밖에 없다.

六五 射雉一矢亡 終以譽命

육오는 화산려괘에서 유일하게 旅 자가 들어가 있지 않은 효이다. 심지어 갑자기 내용도 뜬금없다. 꿩을 쏘아 한 화살에 없앤다니 갑자기 무슨 말인가? 꿩 사냥을 해본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나는 새를 쏘아 떨어뜨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새를 쏘아 잡는 사냥 방법은, 새가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새를 몰아 일제히 날아들면 총이나 활을 쏘아 그중 운이 나빠 맞아 떨어지는 새가 있기를 바라는 식이다. 그래서 보통은 올가미나 덫을 이용해 새를 잡는다. 그런데 꿩을 쏘아 한 화살에 떨어뜨렸다. 대단한 신궁이라는 말이다. 육오에 旅라는 말이 없는 이유를 나는 아무데도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효사들은 모종의 목적을 안고 집을 떠나 먼 길을 가기 시작했지만 육오는 그 자리에 있으면 다른 효사들이 알아서 찾아오게 되어 있다. 비록 음효로 다섯번째 자리에 있어 세력은 미약하지만 명예가 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힘은 있으나 명예가 없거나, 돈은 있으나 신분이 없거나, 지위가 있으나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육오에게로 모여든다. 이들은 모두 꿩이며, 육오는 자신의 명예와 복록이라는 화살로 이들을 모두 한번에 쏘아 맞춘 것이다.

上九 鳥焚其巢 旅人先笑後號咷 喪牛于易凶

사람에게도 집이 필요하지만 새에게도 둥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텃새와 달리 철새는 때가 되면 둥지를 버리고 이동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둥지가 이제 영영 쓸모가 없냐 하면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또 다른 철에는 결국 또 그 자리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나그네에게도 떠나온 집은 이제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을거라고 생각한 곳이었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 이제 새로운 세상으로 간다는 희망에 부풀어 나그네는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꿈꾸던 새로운 세상이 어디에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집을 불태워버리고 나온 나그네는 돌아갈 곳이 없다. 소는 유랑하는 사람이 키우는 동물이 아니다. 정착하고 밭을 일굴때 들이는 가축이며 큰 재산이다. 그런데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 소를 어디에 맡길까? 여관에 소와 함께 들어가 잘 수도 없고, 소와 함께 길거리에서 잘 수도 없다. 떠돌아 다닐때 소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동물일 뿐이다. 여행을 시작할 때에는 돌아옴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모든 것을 불태우고 시작한 여행은 이미 여행이 아니다. 그저 유랑이다. 상전에는 以旅在上 其義焚也 喪牛于易 終莫之聞也라 했다. 나그네로서 위에 있으니 의가 불사르는 것이요, 쉽게 소를 잃는다는 것은 결국 듣지 않음이라는 것이다. 결국엔 떠날 사람이 권력을 쥐고 흔드는 상황이 되면 그 권력을 뺏기기 전까지 마구 휘두르려는 경향이 생기지 않을까. 어차피 내가 관두고 나면 내 후임이 알아서 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쉽게 일을 처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중 일은 나는 모른다는 그 마음가짐은 걱정의 소리도 불만의 소리도 충고의 소리도 듣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저지른 일은 자리를 따지지 않는다. 항상 사람을 따지게 마련이다. 그 자리를 떠나도 그 사람이 저지른 일은 결국 그의 차지이다. 둥지를 불태우면 모든게 끝일줄 알았지만, 모든게 끝이려면 자기 몸까지 불살라야 한다는 것을 모른 딱한 나그네가 나중에 울부짖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화산려괘는 먼 여정에 관한 괘이지만 사람의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인생은 거의 누구에게나 형통함은 작고, 바르게 해야 길하다. 너무 쪼잔하고 자린고비처럼 굴어도 흉하고,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여 다 불태워버리면 망하며, 나 하나 넉넉하다고 해서 편안해지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그 와중에 마음에 맞는 파트너를 만나 편안하게 지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갖다 버리지도 못하고 속만 끙끙 앓게 만드는 반려를 만나 내내 불쾌한 삶을 이어갈 수도 있다. 나는 잘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를 했는데 그게 내 둥지에 내가 불을 지른 결과가 되어 돌아갈 곳조차 없게 되어버리는 인생도 있다. 여행도 삶도, 바삐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느긋하게 천천히 쉬며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가는 곳이 명확해야 불안하지 않은 사람도 지금 헤매는 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풍경이 볼만하고 내 마음이 즐거우면 괜찮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여행에 임하는 자세가 어떻든 그건 오롯이 그 여행자의 몫이다. 다만 이 여행에 함께 가는 사람들이 눈쌀을 찌푸릴만한 일을 하거나, 너무 나만 생각하여 같이 여행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있진 않나는 반성은 수시로 해볼 일이다.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오른 나그네의 바름은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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