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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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다
  • 승인 2021.05.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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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26

지난 1255호 이후로, 「수세보원 들춰 보기」란 주제로 1281호까지 열세 편을 썼다. 이번 1283호부터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기에 쓰는 내용은 나 혼자만의 생각임을 밝힌다.  

미래의학
SF는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당대의 현실을 투영한다. 그래서 대중이 공감하게 된다. 반면에 권도원 선생이 주창한 현재의 8체질의학에는 미래가 미리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8체질의학은 미래의학’이라는 명제는 그런 의미라고 본다. 
지난 24년간 8체질의학은 미래의학이라는 믿음을 갖고 공부해 왔는데, 요 근래 나는 8체질의학의 장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증명
8체질론이 보편성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8체질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권도원 선생은 평생을 체질맥진의 기계화 연구에 매달렸다. 국내외 유수한 대학의 학자들에게 의뢰하여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그리고 유전자 분석 방법을 체질감별에 응용해 보려는 노력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에는 체질이 확정된 집단이 먼저 필요하다. 8체질로 나눈 각각의 표준을 먼저 설정한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된 표준에 대한 검증은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할 것인가. 문제와 과제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 동양의학자들은 서구를 향해서 아직 경락을 증명해보이지 못했다. 체질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 또한 실현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생명’을 들어서 보자. 서양이든 동양이든 생명을 정의했거나 증명한 학자는 없다. 생물이 살아서 숨 쉬는 것, 생장하는 것 자체가 생명의 증명인데, 생명을 우리의 감관 안에서 인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경락이나 체질은 증명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체질의 존재를 증명하겠다는 시도가 헛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성의 획득을 원한다면 체질의 증명보다는 다른 쪽으로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생명
생명이란 고개를 쳐드는 힘이다. 동물은 숨을 쉬기 위해서 고개를 가누게 되고, 식물은 태양을 향해서 떡잎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8체질론에서는 생명을 불이라고 했다. 불은 빛과 뜨거움과 힘의 3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고, 이것은 생명체가 나타내는 속성이기도 하다. 

생존 
선대로부터 생명을 이어 받은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면서 변화하는 것이 삶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다. 그리고 삶이 끝나는 날까지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생명체가 지닌 본능이다.
사람의 몸에 가해지는 모든 자극은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죽음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막내여동생은 기고 앉고 하던 무렵에 바둑알 열몇 개를 입으로 넣었다. 내가 네 살이었고 충북 음성의 무극리에 살 때 장마로 불어난 개울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중학교 1학년 가을에는 연탄가스에 중독되었다. 우리 할머니는 네 살의 나와 중1의 나, 그리고 막내여동생을 모두 살려내셨다. 
그런데 내가 대학생이 된 해에, 젊은 시절에 머리를 몽땅 빠지게 만들었던 장티푸스도 이겨냈고 곰방대에 잎담배를 즐기면서도 평생 건강하셨던 할머니는, 근처에 살던 친척누이가 갖다드린 찰떡을 드신 것이 장폐색이 되어 돌아가셨다.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때에 어느 학생은 고열 중에 자기 방 창문으로 뛰어 내렸다. 1988년에 경북 영천에서 5개월간 장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마친 내 동료는 임관식 바로 전날 샤워장에서 태권도 검은 띠를 목에 매고 발견되었다.

죽음
이 세상에서 단정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한 가지는 모든 생명체는 정해진 수명이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죽는다. 이것은 자연의 질서이다. 예수도 석가모니도 공자도 마호메드도 진시황도 나폴레옹도 징기즈칸도 소크라테스도 다빈치도 스티브 잡스도 모두 죽었다. 생명체는 죽음 앞에서 동등하다. 동무 공은 “세상에 공평한 이치는 목숨”이라고 했다.

질병
사소한 것이든 중대한 것이든 질병에 지면 사람은 죽는다. 또 사소하던 중대하던 모든 질병은 치료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질병은 사람의 몸을, 혹은 급박하게 혹은 완만하게 혹은 지긋하게 혹은 지루하게 지나간다. 그러면서 질병에 져서 죽지 않으면 사람의 몸은 질병을 겪어내는 것이다. 그런 후에 몸에는 질병의 흔적이 오롯이 남는다. 마치 컴퓨터에 로그기록이 남듯이 말이다.  
질병은 사람을 죽이려고 존재한다. 그것이 질병의 임무다. 그런데 인간은 질병을 정복할 수 없다. 알피니스트들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하였다고 떠들어대도 산은 여전히 거기에 존재하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산을 경험하고 나온 것일 뿐이다. 유명한 산악인이 산에 가서 죽기도 한다. 물론 암도 그러하다. 암은 인간을 죽이려는 최종의 수호자다. 그리고 암은 사람의 몸이 제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최고로 강력하다. 철저하게 죽음의 프로그램인 것이다. 
자 이제는 의학의 시대, 의료의 시대, 그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사람은 죽음을 향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하러 태어났는가. 모든 생명체에는 고유한 임무가 있다. 제대로 살아남아서 후대에 생명을 전하는 것이 생명체가 가진 제1의 임무이다. 
연어는 상류로 거슬러 올라와 알을 뿌리고 죽는다. 가시고기 수컷은 부화한 새끼를 위해 제 살점을 먹인다. 사마귀 수컷은 교미 후에 암컷에게 먹힌다. 숫벌은 여왕벌과의 결혼비행에서 생식기가 끊어져 죽는다. 매미는 땅속에서 오랜 애벌레 기간을 지나 나무 위로 올라와 몇 주간 짝짓기를 하고 죽는다.  
인류를 제외하고 생물은 본능에 따라 살아가고, 천적에 먹히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굶어 죽지 않는다면 본디 정해진 임무를 다하고 죽는다. 인류에게는 본능에 더하여 자유의지가 있는데, 식욕이나 색욕 등 본능과 연장된 쾌락에 몰두하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궁리할 여유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본능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에게만 또 다른 삶의 의미가 뚜렷하게 다가온다. 

체질
8체질론으로 본다면, 인류가 다른 생명체와 크게 다른 점은 인간에게는 체질의 구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체질이 중요한가. 체질 속에 삶의 의미에 대한 단서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권도원 선생은 그것을 “자신의 체질을 알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하늘이 내린 명령을 알게 된다(知體質而知天命)”고 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임무가 있다. 나는 무엇을 하러 태어났는가. 체질론을 통해서 이렇게 삶의 의미를 먼저 파악하고 규명할 수 있다면, 나는 왜 아프고 왜 질병에 걸리게 되는지도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체질침
체질침 처방은 우리가 사용하는 경락에 있는 오수혈을 조합하는 일인데 마치 코딩(coding)과 같다. 가장 효율적이고 적확한 순서와 회수를 조직하는 것이다. 즉 체질침 처방은 인체의 면역시스템을 조절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체질침은 근본적으로 자율신경을 조절한다. 자율신경은 인체의 면역계이다. 체질침이 면역치료법이라고 불리는 것은 면역계가 잘 기능하도록 돕는다는 의미이다. 
“체질침이 질병이 아니라 증상을 치료한다(The constitutional acupuncture is to cure not diseases but syndroms.)”는 문장이 품은 뜻은, 체질침은 생명력의 균형을 조절해서 결국 사람의 몸이 질병을 잘 겪어내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체질침은 겉으로 표현되는 증상을 없애는 방법이며, 또한 장기적으로는 내부적인 조직이나 구조의 변성도 회복시킨다. 밖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것들도 증상이므로 그렇다.
그런데 면역기능에 의해서 몸이 스스로 회복하여 질병이 발생하기 이전보다 나은 컨디션이나 신체적 활동 상태를 갖게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이 몸에 기록된 시간의 경과를 되돌린 것은 아니다. 모든 치료는 몸이 질병에 져서 죽지 않도록 생존을 연장시킨 것일 뿐, 그것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로의 완전한 복귀는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질병은 몸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 어떤 방법이나 기계장치에서나 경과한 시간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 늙은 사람의 몸을 젊게 한다거나 과거를 향한 시간여행은 사람이 지어낸 판타지일 뿐이다.   

의료체계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동안 질병의 고통이 없이 편하고 건강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의학과 의술의 목표이다. 그런데 현대 서양의학 중심의 의료시스템은 산업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헬스 케어 비즈니스이다. 대중은 이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환자로 규정되면서 시스템에 갇혀 버린다. 8체질의학이 과연 견고한 이 의료체계를 혁파하거나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죽지 않는 삶이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삶이 목표라면, 나는 질병과 의료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분명히 전혀 다른 질병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리리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이 내가 체질론과 체질의학을 공부하는 동력이다. 서두에서 8체질의학에 관한 비관적인 전망을 밝혔다. 8체질의학은 서양의학 용어에 친화적인데, 무작정 서양의학 지식과 개념 속으로 들어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오히려 8체질의학은 눈을 돌려서 동무 이제마의 생각 안으로 더 가까이 더 깊이 진입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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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5-15 22:53:55
@ 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http://blog.daum.net/macmaca/733

http://blog.daum.net/macmaca/2967

윤진한 2021-05-15 22:53:15
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왜곡.
http://blog.daum.net/macmaca/3131

윤진한 2021-05-15 22:51:57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제사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주권없는 패전국잔재 奴隸.賤民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일본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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