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61> - 『百治通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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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61> - 『百治通方』 
  • 승인 2021.05.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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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미나리 같은 전통의약의 생명력

  이번 호엔 1800년대 민간의약을 대표하는 경험단방서 1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표지의 書題와 책을 묶은 종이끈이 오랜 세월 손길에 닳아버린 형편이라 마모가 심해 취약한 상태이다. ‘백치통방’이라 적힌 표제는 희미해져 육안으로 겨우 판독할 수 있을 정도이다. 본문 첫 장에는 제목을 달리하여 ‘經驗單方’이란 권수제명이 붙여져 있다.

  작성자 성명은 보이지 않으며, 원형묵인이 날인되어 있으나 인문이 뭉개져 판독하기 어렵다. 뒤표지에 ‘單方’이라는 제목과 함께 ‘丙申六月日 加衣’라는 명문이 있으므로 작성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전반적인 마멸정도와 판심부를 접지하여 붙여 쓴 방식이라든지 기재내용을 감안해 볼 때, 대략 1836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 『백치통방』
 ◇ 『백치통방』

  경험방이라 할지라도 대개 『동의보감』단방조나 선대 문헌을 초록하여 베낀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작자가 직접 경험한 바에 의거하여 작성한 고본으로 보여 한층 더 연구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본문은 주로 한문으로 작성했으나 향약명이라든지 한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질병증상이나 제약방식, 치료법에 대해서 한글을 혼용하고 있으며, 민간의료와 토속적인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다.

  예컨대, 소아문에 보면 초생아 설사증상에 “역귀압을 烹之水 발뒤굼칙을 沉之”라고 적혀있다. ‘역귀압’은 여뀌잎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뀌는 『동의보감』탕액편 果部에 蓼實(엿귀)로 등재되어 있으며, 그것의 잎은 蓼葉으로 “歸舌. 除大小腸邪氣, 利中益志.”한다고 했다. 여기서는 내복이 아니고 아기의 발뒤꿈치를 여뀌 달인 물에 적신다고 했으니 젖먹이 어린애 배탈설사에 외치법으로 적용한 것이다.

  별도로 목차가 구비되어 있지는 않으나 전체 내용을 대략 부인문, 소아문, 잡방으로 구분하였으며, 잡방문에는 주로 외상이나 창양, 피부질환들에 대한 처방과 간단한 처치법들이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예컨대, 癮疹(두드러기)에는 “藍(쪽)을 부부여 문디르라. …… ○ 鹽(소금)을 닥가 문디르라.”고 하였고 또 白礬과 石灰를 초에 달여 바른다거나 가려우면서 아플 때, 赤土를 냉수에 타서 마시라고 하였다.

 상습질환에 대한 처치법도 다양하게 다뤄져 있다. 예를 들자면, 輪感咳嗽, 곧 유행성감모로 인한 기침증상에 메밀과 녹두로 묵을 쑤어 엉기지 않게 따듯할 때 많이 먹인다. 또 청주 2잔에 가루 장만한 메밀 3홉을 넣고 죽을 쑤어 3~4차례 먹이고 땀을 내게 하라고 하였다.

  두창으로 숨이 멈춘 아이[痘兒新死]를 되살리는 방법도 있다. 猪尾血과 용뇌 3푼, 주사와 석웅황 3푼을 젖에 타서 먹인 뒤에 따뜻한 온돌방에서 어미로 하여금 죽은 아이를 껴안아서 머리에 땀을 내게 하면, 한참 뒤에 간혹 기사회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소아두창에 저미혈을 써서 해열시키는 방법은 허준의『언해두창집요』에 등장한 이후로 조선에서 독자적인 두창처치법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더러 경험침혈도 나와 있다. ‘靑盲灸’란 항목에는 “商陽 3壯, 肝兪 7장, 지룡수를 바르거나 흰 개의 젖을 떨어트려 준다.”고 하였다. 또 轉筋腹痛에 4사람으로 하여금 수족을 붙들게 하고 배꼽에서 좌측으로 2치 되는 곳에 뜸 14장을 뜨고 생강 1냥, 술 5잔을 달여 먹인다.

  권미에는 時種豆通編이란 항목이 있는데, 아마 李鍾仁의 『時種通編』에서 골자만을 가려 뽑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외에도 唐痘役이라든지 太乙神明丹紅疫方, 觀脈法, 장생방, 養性方, 腫瘡別方, 陰脫妙方 등 특이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권미의 種子門에는 10달 동안 임부와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책이 적혀있는데,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경고 문구가 적혀있다. “醫有能驗, 以後用此藥, 不可輕用.” 평소 갈고닦은 지식과 수없이 많은 경험이 켜켜이 쌓여서 한 사람의 노련한 의원이 잉태되는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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