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비오는 날의 아련한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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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비오는 날의 아련한 향수
  • 승인 2021.05.07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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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호

김춘호

mjmedi@mjmedi.com


영화읽기┃비와 당신의 이야기
감독 : 조진모출연 : 강하늘, 천우희, 강소라
감독 : 조진모
출연 : 강하늘, 천우희, 강소라

작년에 휴대폰을 교체하면서 5G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내심 비싼 요금만큼 속도가 빠를 것이라는 기대를 한껏 가지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빨리빨리’ 문화가 몸에 배어 있는 이 시기에 2G도 아닌 손편지라는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소재를 중심으로 한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뚜렷한 꿈도 목표도 없이 지루한 삼수 생활을 이어가던 영호(강하늘)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기억 속 친구를 떠올리고 무작정 편지를 보낸다. 자신의 꿈은 찾지 못한 채 엄마와 함께 오래된 책방을 운영하는 소희(천우희)는 언니 소연에게 도착한 영호의 편지를 받게 된다. 이에 소희는 아픈 언니를 대신해 답장을 보내고 두 사람은 편지를 계속 이어나가게 되고, 영호는 12월 31일 비가 오면 만나자는 가능성이 낮은 제안을 하게 된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스마트폰과 SNS가 없던 2003년과 2011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며 2021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 중 그 때를 기억하는 세대들에게는 향수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들에게는 신기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기다림이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전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서로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고 편지로 대화를 이어간다는 설정이 최근에는 채팅과 다름없지만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는 채팅과 달리 편지는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아련한 기다림의 연속일 수밖에 없기에 묘한 매력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와 당신의 이야기> 속 두 주연배우인 강하늘과 천우희는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으며, 영화 속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매우 특이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밀레니엄 시대를 열었던 2000년대 초반이 이젠 노스탤지어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웃프지만 가로본능 휴대폰을 보고 열광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롯하여 빨간 우체통, 헌 책 방 등 영화 곳곳에 지금은 잊혀진 그 시대의 느낌이 최대한 표현되며 모든 사람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며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거기다가 12월 31일에 비가 내리면 만나자라며 매년 끊임없이 기다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비현실적이지만 잔잔한 감성 멜로 영화에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렇게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서로 만나지 않고 편지로만 대화를 나누는 비대면 소통의 주인공들이라는 설정은 여타의 영화에서도 많이 봐왔지만 주인공 주변에서 대면 소통을 하는 캐릭터들과의 이야기를 소홀히 하며 전반적으로 흐름이 뚝뚝 끊기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어 영화라기보다는 짧은 감성 영상들을 이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로인해 관객들에 따라 극단적인 호불호가 나타날 수 있으니 감상하기 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비가 잦은 올 봄,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관객들의 메마른 감성에 단비와 같이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것이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주 중요한 쿠키 영상이 있으니 놓치지 말고 보길 바란다.

<상영 중>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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