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학자와 어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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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학자와 어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
  • 승인 2021.04.09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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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mjmedi@mjmedi.com


영화읽기┃자산어보
감독 : 이준익출연 :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
감독 : 이준익
출연 :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

 

학창시절 한국사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자산어보>라는 책 이름을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퀴즈를 낸다면 그 책의 저자는 누구일까?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필자의 경우 정약용이 저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정답은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다. 바로 그의 책 제목을 그대로 적용한 영화 <자산어보>는 동생인 정약용에 비해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난 후 '자산어보'를 작성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이다.

순조 1년, 정약전은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다. 호기심 많은 정약전(설경구)은 그 곳에서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책을 쓰기로 한다. 이에 바다를 훤히 알고 있는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창대는 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한다. 이에 정약전은 창대가 혼자 글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서로의 지식을 거래하자고 제안한다. 거래라는 말에 창대는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며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차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되어 간다. 그러던 중 창대가 출세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약전은 크게 실망하고, 창대 역시 정약전과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정약전의 곁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결심하게 된다.

실제 '자산어보'의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라는 인물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하여 만들어진 영화 <자산어보>는 최근에 보기 힘든 흑백영화에 사극이라는 장르로 인해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선입견을 생길 수도 있지만 흑산도 사람들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오고 가는 장면 속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관객들로 하여금 묘한 매력을 전하고 있다. 특히 긴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빠른 전개로 압축하여 보여주면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배우들의 최상급 연기로 극에 완전 몰입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변요한이라는 배우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어부에서 양반까지 변화무쌍한 신분 계급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으며, 서울 출신인 이정은의 능숙한 전라도 사투리 연기와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해 내는 꾸밈없는 연기는 진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며 이 영화의 극적인 재미를 드높이고 있다. 또한 사극이 처음이라는 설경구 역시 이전 영화 속 모습과 달리 힘을 뺀 연기로 정약전이라는 인물을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자산어보>는 그동안 사극들이 왕위 쟁탈전 등 왕을 중심으로 한 자극적인 이야기들로 점철되었던 것과 달리 섬으로 유배된 양반과 어부의 티격태격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 시대 민초들의 생활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담고 있다. 이 외에도 류승룡과 방은진, 조우진, 동방우 등의 유명 배우들이 우정출연하며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더욱 더 높이고 있다.

<왕의 남자>, <사도>, <동주> 등 시대극을 많이 연출한 이준익 감독의 작품 답게 <자산어보> 역시 탄탄한 연기력과 뛰어난 미장센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우수한 작품성 및 전하고자 하는 주제까지 탄탄한 한국영화의 저력이 무엇인지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개봉일이 2월에서 3월말로 늦춰지기도 했지만 요즘 같이 보궐선거를 비롯한 갖가지 정치적인 뉴스에 신물 난 관객들에게 잔잔한 웃음과 감동, 힐링이 있는 <자산어보>를 강력추천하고 싶다. 흑백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기에 이번에 꼭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상영 중>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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