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保健省本 東武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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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保健省本 東武遺稿〉
  • 승인 2021.04.10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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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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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壽世保元〉 들춰 보기_17

(1) 遺稿

유고란 죽은 사람이 생전에 남긴 원고이다. 그러므로 사실 동무 공의 著作은 모두 遺稿였던 셈이다. 동무 공이 作故한 후에 東醫壽世保元栗洞契 門人1), 格致藁詳校懸吐 東醫壽世保元韓斗正 선생이 발간했고, 後人들에 의해 四象醫學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들이 출간되었다. 金九(1880-1969)1936년에 咸興에서 崔謙鏞을 만나 東醫壽世保元 四象草本卷筆寫한다. 이것을 나는, 동무 공이 壽世保元을 집필하기 위해서 오래도록 준비하던 草稿이고 일종의 메모(memo) 모음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메모들을 정리해두면서 찾아보기 쉽게 카테고리2)를 만들어 분류해 놓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오랜 시간 누적된 결과물일 것이다. 著述로서 어떤 일정한 체계를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辛丑版을 편집한 율동계 문인들은 이 원고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저술된 수세보원원고가 있었으므로, 辛丑版편집 당시에 四象草本卷은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되지는 않았으리라고 짐작한다.3) 그런 후에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지만) 書物은 최겸용에게로 옮겨졌다. 1936년에 소유자가 최겸용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구익의 필사를 거쳐서 孫永錫에게로 이어졌고, 198510월에 延邊에서 발간된 朝醫學에도 실렸다. 이렇게 유고란 다양한 형태로 筆寫되고 編輯되고 傳乘된다. 그러니 唯一本으로서 東武遺稿란 이름의 완성된 저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동무유고란 이름을 가진 필사본이 지금 세상에 두 종류가 드러나 있는데 혹시라도 앞으로, 다른 내용으로 편집되었으나 같은 이름을 가진 필사본이 또 나타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2) 保健省本

李能和는 어떤 동무유고를 보았던 것일까. 현재 사상의학계에서는, 한두정 선생이 19401월에 明選錄을 출간하고 19407월에 格致藁가 발간되던 사이에 藏書閣本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내 생각도 같다. 아래는 이렇게 추정하는 이유이다.

한두정 선생이 출간한 격치고濟衆新編4)附錄으로 실려 있다. 그리고 장서각본에도 제중신편東武遺藁5)와 함께 들어 있다. 그러니 장서각본은 한두정 선생과 연관된 필사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서각본필사에 쓰인 종이가 명선록의 이면지라는 사실이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는 격치고출간을 준비하면서 그 전에 편집해두었던 자료 중에서 제중신편을 함께 붙여서 간행하면 좋겠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19407월에 咸山 沙村에서 東醫壽世保元 甲午舊本抄錄했던 韓敏甲, 12월에는 大田府 石南村으로 가서 東醫壽世保元 舊本謄書한다. 그리고 여기에다가 덧붙여서 필사해 놓은 자료들이 있다. [藥性歌], [治癎], [治瘇核方文], [少陰人脾藥 少陽人腎藥 太陰人肺藥] 등이다. 이것들은 보건성본 동무유고에 고스란히 들어있는 자료들이다. 그러니까 한민갑은 보건성본과 같은 계열의 자료를 보았던 것이다. 나는 한민갑이 한두정 선생의 연속된 출판사업을 돕던 사람이라고 추정한다. 나의 추정이 맞는다면 당연히 한두정 선생도 보건성본의 존재와 내용을 알았다는 것이 된다.

나는 장서각본보다 보건성본이 훨씬 먼저 성립했다고 본다. 그래서 1918년에 朝鮮佛敎通史를 통해서 이능화가 언급한 동무유고보건성본일 가능성이 크다. 그가 보건성본을 보았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한두정 선생도 보건성본의 내용을 알았으므로 당연하게도 그것의 내용과 겹치지 않게 유고를 편집했다.6) 장서각본보건성본두 자료는 편집된 시기가 다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편집자의 관심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보건성본장서각본은 어떻게 다른가. 보건성본治病用藥에 관한 내용이 중심이다. 이와 다르게, 제중신편이외에 장서각본의 많은 부분은 동무 공과 日本人이 나눈 筆談이다. 필담에서 주로 다뤄진 동무 공의 관심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强國들의 정세와 軍事戰略에 관한 부분이었다. 특히 武器運用에 관한 내용이 있다. 나머지는 동무 공 死後에 세워진 追慕碑碑文 같이 後人들이 남긴 글이 들어 있다. 性命論 東武自註처럼 두 자료에 함께 들어간 것도 있다. 동무자주장서각본의 편집자 입장에서 본다면, 그때까지도 제대로 해석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3) 보건성본引用

보건성본의 구성은 크게, [藥性歌], [四象人藥材類], [四象人食物類], [四象要目], [金鳳舜癎病], [治瘇核方文], 기타 등이다. 보건성본과 같은 계열의 필사본은 일제강점기 당시에 사상의학에 관심을 둔 관계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다. 아래 표를 보자.

 

보건성본과 같은 계열의 자료를 李能和, 東醫四象新編의 편집자도, 동의사상신편을 기반으로 해서 편집체제를 바꾼 책을 준비하던 杏林書院李泰浩, 韓敏甲, 韓斗正 선생도, 李道耕, 朴奭彦도 보았을 것이다. 洪淳用 선생은 보건성본을 보았거나 아니면 앞에 나온 자료들을 참고하였을 것이다.

량병무는 해동의학사에서 19993월에 출간한 국역 한의학대계에 포함된 동의사상신편번역본의 解題에서, 1941년에 행림서원에서 나온 동의사상진료의전은 거의 모든 내용이 동의사상신편을 그대로 답습하였다고 지적하면서 다만 便誦訣만 특징적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평가는 다소 박한 구석이 있다. 이태호는 자신의 책 속에 東武遺稿라고 분명하게 출처를 명시했으므로 같은 제목이 붙은 자료를 직접 보았던 것이다.

 

(4) 少陰人 戒文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정용재 원장이 이제마, 인간을 말하다金洲 선생 챕터에 썼던,7) 선생의 은사인 成雲 할아버지가 혹시 韓氏가 아닐까. 그래서 淸州韓氏 禮賓尹公派 族譜 사이트를 검색했더니 세 명의 成雲이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陳氏와 결혼한 戊子生 成雲이다. 부친인 O는 함주군 덕산면에 있다. O이란 아들이 하나 더 있는데 둘의 生年이 같은 걸로 봐서 아마도 O成雲은 쌍둥이인 것 같다.

김주 선생은 門下에 드나드는 정 원장의 후배에게 成雲 할아버지가 소음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주 선생께 더 물어서 만약에, 成雲 할아버지가 韓氏이며 쌍둥이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내가 찾은 이 분이 김주 선생 과 인연을 맺은 그 분이라는 것이 검증될 것이다.

그런데 보건성본成雲이 있다. 戒少陰人챕터에 對診成雲病而言 然少陰人皆然이라고 나와 있다. 보건성본의 번역자는 실지로 成雲病이라는 病症이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그건 엉뚱한 인식이다. 번역을 하면 戒少陰人成雲의 병을 진찰한 것에 대하여 말한 것인데, 소음인이라면 모두 그러하다.’가 된다. 成雲이 받은 이 戒文9) 1898년에 동무 공에게 소음인으로 감별 받고 처방전과 訓話를 받았던 崔麟의 것10)과 비슷하다. 만약에 나의 가정대로 成雲1888(戊子年)이라고 하고, (동무 공이 作故하기 전에) 열한두 살 무렵에 만났다면, 스물한 살이던 최린에게 준 것보다는 공개된 내용처럼 계문을 좀 간단하게 써주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韓敏甲 筆寫, 石南村本194012월 추정

2) 自敍傳/崔麟, 韓國思想4집 한국사상강좌편집위원회 1962. 8.

3) 량병무.차광석, 東武遺稿해동의학사 1999. 3.

4) 량병무, 東武四象新編해동의학사 1999. 3.

5) 이창일, 東武遺稿청계 1999. 11.

6) 朴性植, 東武遺稿 藥性歌硏究」 『사상체질의학회지2001.

7) 정용재, 이제마, 인간을 말하다정신세계사 2013. 9. 13.

8) 淸州韓氏 인터넷族譜 http://www.yesjokbo.biz/jokboroot/new_default.asp

 

각주 

1)金永寬, 韓稷淵, 宋賢秀, 韓昌淵, 崔謙鏞, 魏俊赫, 李燮恒


2)原人, 病變, 藥方 等

3) 다만 동무 공 後世에 사상의학을 연구하게 된 연구자에게는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4) 이것은 본디 동무 공이 1897년에 水東社 莊粮里 童蒙契의 勸學文으로 쓴 것으로, 조선 후기의 醫官 강명길이 正祖의 命으로 1799년에 편술한 醫書인 『濟衆新編』과 이름만 같다. 

5) 이 필사본의 묶음 제목은 〈東武遺稿〉이고 그 안에 〈東武遺藁〉가 들어 있다. ‘고’자의 漢字가 다르다.

6) 〈藏書閣本〉을 譯註한 이창일도 ‘〈장서각본〉은 1940년대에 韓斗正이 編輯한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이창일, 『동무유고』 청계 1999. 11. p.23~26 
   이창일은 이 책에서 〈保健省本〉을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 〈保健省本〉의 존재 자체를 몰랐거나, 번역본이 출판된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7)정용재, 『이제마, 인간을 말하다』 정신세계사 2013. 9. 13. p.376
   “이 책을 草하게 하여주신 은사 成雲 할아버지와 아버님의 영전에 감사를 드리면서.”
   金洲, 『性理臨床論』 大星文化社 1997.

8)량병무.차광석, 『東武遺稿』 해동의학사 1999. 3. p.140
   “成雲病(뜬구름 같은 꿈을 이루려는 욕심으로 생긴 병) 진찰에 대하여 말한 것이지만 少陰人이라면 모두 해당된다.”

9)成事雖則可喜 天下不如意者十常八九 人間何事能使 此心每日喜 欲使此心每日喜 故此心恒窮愁而不樂 雖目前十分必成之事 恒若不成 則其事無害於成脾陽不耗也

10)世間可喜者 心中所欲之事也 順理而所欲則其事美也 不得順理 則其事不美 無論順理 與不順理 過欲則成病也 成事雖則可喜 敗事終 或不喜 屢喜而屢不喜 陽氣爲喜心之所耗也 申言之曰 天下事 不如意者十常八九 世間何事 能使此人 每日喜 欲使此心 每日喜 故不得 其喜 自然窮愁而不樂成病也 是故雖目前 十全必成之事 視之恒若不成則 五臟不傷而事亦易成 事有成不成而每每欲成 所以浪喜也 爲喜心所傷 必戒喜心 
   自敍傳/崔麟, 『韓國思想』 4집 한국사상강좌편집위원회 1962. 8. p.149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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