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04) 투덜거리면 행복해진다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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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04) 투덜거리면 행복해진다꼬?!
  • 승인 2021.03.05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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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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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남부 유럽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다양한 얼굴 표정과 큰 몸짓, 햇살처럼 뜨거운 축구에 대한 열정 정도? 그런데 남부 유럽에 속하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 사람들의 유니크 한 특징 중 하나가 투덜거림이라고 한다. 낯설고 새롭다. 우리에게 ‘투덜거리다’는 뭔가 부정적 뉘앙스인데 남부 유럽인들에게 투덜거림은 일상 속 행복의 비결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투덜거리는 건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행동으로 치부된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며 과묵한 모습이 어른스러운 거라고 교육 아닌 교육을 받으니까. 그래서 어른이 되면 투덜거림이 줄어든다. 소소하지만 짜증스런 일들을 털어내지 못한 채 하루가 저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일들이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 이유 없이 기분이 다운되고 나빠진다. 반면 남부 유럽 사람들의 일상 속 투덜거림은 옷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털어주는 스타일러(의류관리기)처럼 하루의 감정적 먼지를 털어주는 행복 유지 비결이 아닐까.

프랑스는 국가 차원에서 식사 도중 많은 대화를 나누도록 권고한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코스 요리로 오랜 시간 식사를 즐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중해 사람들의 장수 비결도 식사를 오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과 각자 그날의 소소한 걱정들을 풀어내다보면 하루의 끝은 웃음으로 마무리 된다. 이렇게 하루의 투덜거림으로 감정은 풍요로워지고 우울감은 줄어든다.

우리는 과묵하다. 그리고 감정 표현이 적다. 반면 사회가 요구하는 교양과 서비스의 수준은 과도하게 높다. 이 간극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다. 행복 지수가 높다고 알려진 덴마크는 비싼 서비스 물가에도 불구하고 종업원들이 무뚝뚝하기로 유명하다. 덴마크 뿐 아니라 행복지수가 높은 북유럽 사람들은 대부분 웃음이 많지 않다. 사회적 얼굴과 내 마음의 진짜 얼굴, 그 간격이 작은 것이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다.

높은 교양이 요구되는 우리 사회에서 마음의 짜증을 달래고 풀어내는 좋은 방법이 투덜거림이다. 스타일러가 옷을 마구 흔들어서 먼지를 털어내듯 소소한 짜증들은 털어낼수록 좋다. 그날 있었던 별일 아닌 일도 꺼내어 얘기하고 다른 사람의 짜증도 들어주면서 서로 위로하는 것, 나는 그것이 일상적 우울함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 대부분의 어른들이 외롭다. 투덜거리며 하소연 할 사람도 흔치 않다. 말을 꺼내는 것도 어색하고 약한 내 마음을 드러내기도 꺼려진다. 그런 환자들을 치료하는 한의원 원장도 외로움에서 예외가 아니다. 작은 원장실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쌓여간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의 반복이다. 수년, 수십 년 고독과의 싸움이 지나면 거울에서 늙어있는 중년 한의사를 발견하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신입생 새터, 개강총회 참석하고, 히히덕거리며 선후배들과 놀던 대학생 같았는데 말이다.

이제 우리도 좀 투덜거리며 살자. 어른스러움 그건 과연 누구를 위한 덕목인가. 끙끙 참는 어른보다 밝고 철없는 어른이 낫다. ‘나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정말 짜증났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지? 화가 난다. 진짜 화가 난다. 아! 그 사람 싫어. 정말 싫다.’ 이렇게 투덜거리자.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다이어리에 기록이라도 하자. 오늘 하루 정말정말 짜증나는 일이 많았다고. 그 원인이 되는 인간들이 꼴 보기 싫어 죽겠다고.

어른스럽게 참아낸 마음 그 뒤에는 성질난 어린이가 숨어 있다. 그 어린이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폭발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타인을 향할지, 자신을 괴롭힐 지, 마음의 병으로 찾아올지 신체의 병으로 찾아올지 예측이 불가하다. 마음 속 어린 아이가 어른의 삶을 심각하게 방해하기 전에 유치한 짓이 좀 필요하다. 하루가 끝나기 전 가까운 사람들과 투덜거리고 한바탕 웃고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 그보다 좋은 행복의 비결이 있을까.

베네딕트 수도승들은 같은 생각이나 행동이 하루에 7번 이상 반복되면 모든 일을 멈추고 다시 성당으로 들어가 침묵한 뒤 세상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우리도 같은 기분이 반복되면 어딘가로 가서 그 기분을 털어 내야 한다. 신과 만날 수 없다면 주변 사람들이라도 만나야 한다.

힌두 경전의 좋은 말씀들을 적어둔 우파니샤드(Upanisad)에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한다. “멈추어 쉼으로써 우리는, 달리는 자들을 따라 잡는다.” 지중해를 바라보며 왁자지껄 식사하는 남유럽 사람들이 보이는 듯하다. 포도주와 함께 석양에 물드는 그들의 익살스런 얼굴도 함께.

그리스 식 건배사를 외쳐본다. Koinonia!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이다)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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