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53> - 『現代鍼灸按摩學講義』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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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53> - 『現代鍼灸按摩學講義』①
  • 승인 2021.03.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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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침탈과 戰火로 얼룩진 한의교육

일제식민통치로부터 광복 이후까지 한의학 교육을 위한 강습용 교재로 사용되었던 책 하나를 살펴보기로 한다. 표지를 들추니 ‘杏林書院編輯部 編’이라고 밝힌 이제면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중앙에는 ‘알기 쉬운’이라는 수식구가 덧붙여져 ‘現代針灸按摩學講義 全’이라 적은 서명이 적혀 있고 좌측에는 ‘서울 杏林書院 藏版’이라고 옛 방식으로 판권소유를 기재한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 『현대침구안마학강의』

이제면을 넘기자마자 서문도 없이 곧장 목차 페이지가 나타나서 잠시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9쪽에 달하는 상세한 목차가 끝나고 나서 등장하는 ‘讀者에게 알리는 말슴’을 훑어본다면 대략 이리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 그 사정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필자주: 띄어쓰기와 한자만 조금 풀어 썼다.)

“본서는 帝政 末期 발행되었든 것으로서 침구의술의 熱이 그다지 高潮되지 않고 있던 그 당시에도 斯界의 절대한 지지를 받게 되여 版을 거듭하기 무릇 세 번 합계 六千餘冊이 旋風的 賣盡되였든 관계로 解放直後 綴字法과 문체를 시대적 호흡에 맏도록 수정하야 二千冊을 내게 되었으나 불행이도 발매 직전에 實物, 稿本, 紙型 할 것 없이 모다 함께 六·二五 兵火중에 드러가 烏有(필자주: 사물이 아무 것도 없이 됨.)에 도라 가고 마랐습니다.”

위의 글을 통해 이 책이 일제강점기 말년 이미 3판을 거듭해 6000여 책을 발매한 바 있는 히트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1950년경 신판을 준비했다가 전쟁기간 중 포화로 인해 모두 소실됨으로써 그간 절판 서적인 채로 지내온 사정을 전해주고 있다.

뒤이어 책을 다시 찍게 된 사정을 짤막하게 전하고 있다. “그런데 近間 此事實을 알게 된 사계의 여러 학자들로부터 此書의 再刊을 요구하는 書函이 輻湊하기 日數十通에 달하여 독촉이 성화와 같으므로 부득이 倭政時의 原書 그대로 約千部可量 印布하고 不遠한 장래에 있으리라고 믿어지는 재간 당시에 전폭적 수정을 약속하는 바입니다. 海內僉尊은 관용하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서문을 대신해 편집부에서 증쇄사실을 전한 이 글은 庚子新春이라고 시점이 밝혀져 있으니, 1960년 봄일 것이요,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몇 해 시간이 흐른 시점이다. 또한 글쓴이를 ‘杏林書院編輯同人 白’이라고 적었으니 아마 구판을 다시 펴내는 일마저도 여러 사람의 손을 빌어 겨우 마련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이 책의 원판이라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 발행본에는 서명이『최신침구안마학강의』로 되어 있고 서명 앞에는 ‘學習受驗’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러니 서명인 ‘침구안마학강의’ 앞에 ‘최신’이란 말이 ‘현대’로 바뀌고 ‘학습수험’이란 말이 ‘알기쉬운’이란 우리말 표현으로 변경되었음을 대조해 볼 수 있다. 시대 상황이 바뀌게 되면서 이에 따라 변모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원작의 초판은 일제강점기인 소화9년 곧 1934년에 처음 발행되었고 이어 1936년에 재판이 나온 바 있다. 3판이 거듭된 시기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1940년 전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3번 발행하는 동안 6000책을 인쇄하였다 했으니 대략 판을 거듭할 때마다 2000책 가량을 인출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본문은 한자 위주로 되어 있고 한글로 된 토씨만 붙인 정도의 국한문 혼용 방식인데, 일본어로 된 원작을 다급하게 개편하는 과정에서 한글토씨로만 전환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단지 목차만 비교해 보아도 초판에는 해부학, 생리학, 위생학 등이 전편에 놓여있는데, 반해 이 책에는 곧장 鍼治學으로 시작하고 위생학(소독학)이 부편으로 배치되어 있어 적잖이 개편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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