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普濟演說〉이란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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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濟演說〉이란 퍼즐
  • 승인 2021.02.06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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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壽世保元〉 들춰 보기_13

(1) 筆寫者

普濟演說筆寫本이다. 普濟演說을 검토해 보았을 때, 여러 정황1)으로 보아 이 필사본에 포함된 내용은 처음으로 著述되는 것은 아니다. 背景 자료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것은, 내용이 동일한 原本을 보고 필사한 것, 또는 필사한 당사자가 자신이 가진 다른 자료를 가지고 필사하면서 편집해서 만든 것, 두 가지 경우가 가능하다.

내용이 같은 원본이 있다면 원본 작성자는 원본 편집자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배경 자료가 있었다. 그리고 (가 누군지 헷갈리지 않는다면)2) 普濟演說序를 쓴 사람은 원본 작성자이다.

원본이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베낀 것이라면 筆寫者는 현재의 普濟演說에서 보이는 筆體主人이다. 그런데 이 필사자는 普濟演說의 편집자를 겸할 수 있다. 이 경우에 그는 자신이 관심을 둔 이곳저곳에서 자료를 골라내서 편집하고 필사하였다. 그런데 만일 그렇다면 가 애매해진다. 필사자 겸 편집자는 普濟演說에서 자신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를 그가 쓴 것 같지도 않다. 결정적으로는 附錄 뒤에 마지막에 붙은 東醫壽世保元補編完이다. 필사자 겸 편집자는 이 부분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본이 있는 필사라면 필사자는 단순 필사자일 수밖에는 없다.

원본이 존재하고 그것을 필사한 것이라면 필사자는 필사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분명해졌다. 현재 드러난 普濟演說이것이 자체로 원본이라면, 이것을 책으로 엮은 사람은 기획자이면서 편집자이면서 작성자(필사자)이면서 물론 도 썼다는 것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해야겠다. 普濟演說의 주된 내용이 무엇인가. 四象人論이다. 그리고 책 말미에 東醫壽世保元補編이라고 달려 있다. 원본과 필사본 두 가지가 존재한다면 원본은 동무 공이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자체로 원본이라면 普濟演說의 필사자는 동무 공 자신일 수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普濟演說寶物이다.

 

(2) 퍼즐

普濟演說東武 공이 남긴 퍼즐(puzzle)이다. 이미 맞춰진 퍼즐이다. 나는 이제 거꾸로 이 조각들이 어떤 의도로 선택되었는지를 궁리해야 한다. 普濟演說은 애초에 책으로 묶을(製冊) 것을 의도하고 쓰인 것이다. 그리고 에 나온 庚子1900년으로 본다면, 새로운 생각과 인식을 執筆하였다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자료들에서 골라낸 것이다. 庚子年보다 훨씬 오래 전 생각들도 많이 들어 있다. 보통 太陽人態度라면 이미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 묵은 것들은 버려진다. 그런데 普濟演說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왜인가? 이것을 풀어야만 한다.

 

(3) 東醫壽世保元補編

첫 번째 端緖東醫壽世保元補編이라는 이름이다. 첫 머리에는 普濟演說序라고 썼는데, 마지막에는 東醫壽世保元補編完이라고 넣었다. 일단은 東醫壽世保元補編完은 뒤에 합해진 麻疹神方3)과 구분하기 위한 表式일 것이다. 중간에 이런 표식이 들어간 것은 普濟演說의 처음과 끝이 計劃(편집의 기획)筆寫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東武 公의 공식적인 저술에서 東醫壽世保元이라고 쓴 것이 없었다. 다만 東醫壽世保元속에서, 醫源論에서 저술로서 壽世保元이라고 하고,4) 四象人辨證論後記로 쓴 문장에 抱負로써 壽世保元을 썼다.5) 그런데 1901년의 출판본을 東醫壽世保元이라고 명명한 것은 東醫寶鑑과 같은 의미로 東醫를 넣었다고 후세 연구자들이 짐작만 했을 뿐이다. 앞선 시대에 이미 壽世保元이란 同名의 저술6)이 있으므로 구별의 필요도 있었을 거란 점이다.

그런데 普濟演說에 분명하게 東醫壽世保元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普濟演說東醫壽世保元補編이라는 것이다. 補編이란 原編을 전제한 후에 성립하는 말이다. 즉 원편으로서의 東醫壽世保元東武 公이 직접 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1901(辛丑年)栗洞契 門人들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스승의 제목을 정했을 것이다.

補編이 된 것은, 庚子年 1900년이 되기 전에 1894년에 甲午本이 성립하였으므로, 그것을 原編으로 한 것이다. 東醫壽世保元補編이란 東醫壽世保元이란 原編이 있고, 그것을 補充하는 이란 의미다.

東武 公1900년에도 계속 太陰人 病證論을 고치고 있었겠지만, 辛丑年印刷되어 出刊된 것은 동무 공 자신은 모르는 死後의 일이다. 庚子年 閏秋에 동무 공은 아마도 (자신의 豫感하고) 이런 식으로 補編을 만들어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推測한다.

 

(4) 製冊

1940년에 咸山 沙村 李鎭胤의 집에서 韓敏甲東醫壽世保元 甲午本抄錄할 때, 그것들은 두루마리 형태(卷軸裝)였다고 전한다. 그런데 普濟演說은 생긴 것도 말끔한 제본된 책이다. 그럼 동무 공은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普濟演說은 먼저 성립한 다른 자료를 보고 筆寫했다. 즉 사전 기획된 편집 방향에 의해 기존 자료에서 골라서 썼다. 그런데 내용이 새 것이 아니고 묵은 것이다. , 모든 論說完成해가야 할 庚子年 가을에 일부러 옛 것을 꺼내어 묶었는가.

이것은 마치 사상의학 入門者에게 보여주려는 듯이, 동무 공 자신의 의학 초창기에 가졌던 생각을 담고 있다. 그리고 東醫寶鑑이나 相法書 등에서 발췌한 부분에 대한 소개가 있다. 또한 수많은 경험방도 수집되어 있다. ‘나는 이렇게 醫學을 공부했어.’라고 밝히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普濟演說東武自註와 같은 성격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동무 공은 庚子年 9월에 했다. 이 작업이 진정 庚子年 閏秋에 이루어졌다면 거의 돌아간 시점에 임박한 때다. 이때는 거의 庚子本작업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庚子本이 결과적으로 이 된다면 普濟演說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마무리하는 부분에 東醫壽世保元補編이라고 한 것이다.

筆寫本이 청계천 고서점에 갈 때까지 거쳐 간 소유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필사본의 최초 소유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東武 公이 그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이것을 엮었다고 짐작한다. 이것을 製冊하여, 동무 공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고, 자신이 쓴 글의 의미를 잘 깨달을 수 있으며, 왜 이렇게 편집되어 있는지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醫業에 종사할) 자신과 가장 가까운(親密) 사람에게 주었을 것이다. 둘째 아들 龍水가 나중에 保元局을 계승했다고 하니 아마도 普濟演說을 받은 이는 李龍水인 것 같다. 아들에게 주었다면 굳이 표지나 에 자신의 이름을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동무 공이 이것을 누군가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가 아주 소중하게 보관하였을 것이고 주변에 알리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을 것이므로)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추정한다.

 

(5) 習慣

나는 1898년에 東武 公에게서 崔麟이 받은 처방전에서 香付子에 주목했다. 香付子八物湯을 적은 부분이 동무 공이 친히 쓴 부분이라고 짐작했다.7) 그리고 향부자를 香付子로 적은 것이 동무 공의 습관이라고 推定했다.8) 習慣이란 의도하지 않으면서 저절로 나오게 되는 익은 행동이다. 그래서 유사한 상황이라면 동일한 행동이 반복될 것이다.

 

 

甲午舊本韓敏甲1940년에 沙村에서 抄錄한 것이다. 동무 공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던 甲午本에 있는 대로 베꼈을 것이다. 崔麟의 처방전은 동무 공이 히 써준 것으로 推定했다. 普濟演說의 글씨도 동무 공의 親筆(이거나 필사자가 원본을 그대로 필사한 것)이라고 推定하고 있다. 東武遺稿藥性歌石南村本9)에 갑오본 필사 자료 뒤에 이어지는 것이다. 필사본이던 친필이던 모두 동무 공과 관련한 자료이고, 이곳에서 부자와 향부자가 일관되게 付子香付子로 기록되어 있다.

옛날 처방기록을 보면 이렇게 付子香付子로 적은 경우가 많다는 意見이 있다.10) 물론이다. 동무 공 혼자만 그런 습관을 가지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동무 공과 관련한 기록에서 일관된 행동, 즉 습관으로써 동무 공에 관한 證據 하나를 제시하는 것이다.

 

 

각주 

1) 예를 들어, 普濟演說序를 보면 1) 易有太極에서 有자를 처음에 다르게 잘못 쓴 건지, 위에 굵은 붓으로 다시 덧씌웠다. 2) 兩儀兩儀가 되는 부분에서 兩儀∽∽라고 반복 표시를 넣었다. 3) 立地之道剛與柔 사이에 曰을 빼고 쓴 후에 나중에 옆에 曰을 끼워넣었다. 

2) 普濟演說에서 余가 나오는 부분은 세 곳이다. 1) 余於定平地 2) 余 公道世間有壽命 3) 以余所見

3) 나는 〈普濟演說〉로 製冊된 것에 함께 들어간 〈麻疹神方〉의 필사자도 동무 공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니까 함께 묶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실물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 〈麻疹神方〉에 대한 것은 차후로 미룬다. 

4) 余生於醫藥經驗五六千載後 因前人之述偶得四象人臟腑性理 著得一書 名曰壽世保元

5)  萬室之邑一人陶則器不足也 百家之村一人醫則活人不足也 必廣明醫學家家知醫人人知病 然後可以壽世保元

6)  중국 명나라 龔廷賢의 편찬으로 대략 17세기 초에 간행된 醫書로, 전 10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方藥과 치료법을 수집하여 選方과 醫案이 실려 있다.

7) 東武 公의 親筆, 『민족의학신문』 제1257호 2020. 10. 29.

8)  香付子가 端緖, 『민족의학신문』 제1259호 2020. 11. 12.

9)  1940년 12월에 大田府 石南村에서 〈東醫壽世保元 舊本〉의 내용을 謄寫한 후에, 이어서 〈保健省本 東武遺稿〉에 포함된 내용과 유사한 것을 이어서 필사했다. 

10)  2020년 대한의사학회지에 「20세기 조선 왕실 처방집 御用湯劑冊 연구」를 발표한 최성운의 의견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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