庚子年의 〈普濟演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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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子年의 〈普濟演說〉
  • 승인 2021.01.0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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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壽世保元〉 들춰 보기_

오늘은 陰曆 1121일이다. 庚子年은 아직 40일이 남았고, 그 후에 비로소 辛丑年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 근무하는 안상우 박사는 평소에 특별히 사상체질의학과 관련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던 터, 古書를 취급하는 서점에 체질 비슷한 말만 들어 있어도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을 해두곤 했던 것인데, 2001년 어느 날 청계천 고서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렇게 普濟演說이 학계에 알려졌다.1) 때마침 2001년은 東醫壽世保元이 처음 出刊(1901辛丑年)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래서 안 박사는 새로 발견된 자료들을 묶어서 7월에, 한국의학자료집성 Ⅱ』를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발간했다.

普濟演說은 전통적인 線裝本 형태로 製冊이 되어 있는데, 안쪽에는 얇은 신식 美濃紙毛筆로 적은 筆寫本이다. 내용은 관심이 있는 분야 별2)로 정리하여 편집한 형식인데, 편집자의 이름은 없고 序文3)은 있다. 이 필사본의 제목은 서문 중에서 萬世普濟之方謹演一二個說이란 구절에서 따서 普濟演說이라고 한 것 같다. 그러니까 서문을 요약하여 제목으로 삼은 셈이다. 가 편집자의 솜씨라면 이 필사본에 남은 편집자의 흔적(情報)筆體, 그리고 題目이다.

는 전체적으로 '四象'을 대상 主題로 삼고 있다. 그리고 아주 簡潔하게 꼭 필요한 것을 표현했다. 글은 차라리 길게 쓰는 게 쉽지, 쓰고자 하는 내용을 모두 담아 含蓄하여 쓰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서문은 平凡하지 않다. ‘夫醫者理也라고 연 導入이 아주 강렬하다. 이렇게 다섯 글자로 醫學定義한 배짱도 대단하다.

편집자는 자신의 신상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를 통해서 太少陰陽을 추정해 본다면 이렇다. 이 필사본이 성립한 전후 사정을 밝히지 않았으므로 太陰人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없으니 少陽人도 아니다. 글이 장황하지 않고 핵심만 간결하게 표현했으니 少陰人은 아니다. 緣由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簡潔美露出을 꺼리는 태도는 당연히 太陽人에게 어울린다. 물론 태양인도 과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려는 욕망4)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를 즐기는 쪽은 아니다.

안상우 박사는 를 쓴 시기인 庚子閏秋에 주목했다. 庚子年1900년이거나 1960년이다. 그런데, 뒷부분에 합쳐진 麻疹神方이 시작되기 전 끝에 東醫壽世保元補編이라고 쓰고 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壽世保元1901년에 간행되었으므로 1900년에 편집한 필사본에 동의수세보원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래서 1960년으로 하고 보니, 안 박사는 처음에 이 필사본이 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閏秋이다. 1960년에는 여름에 윤달이 들었고, 윤가을은 1900년의 일이었다. 1960년에는 大暑가 지난 후에 閏六月이 오고, 1900년에는 立秋, 處暑, 秋分이 지난 후에 閏八月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閏秋라면 1900년이 어울린다.

201012월에 나온 사상체질의학회 40년사에서는 普濟演說의 성립시기에 대해서, ‘1900년 가을에 처음 기록되었다가, 1943년에 부록으로 합쳐진 麻疹神方과 함께 기록된 것 같다고 애매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未詳의 저자는 사상체질의학에 깊은 조예가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되지만, 四象相貌及藥種四象應用藥方 같은 내용은 史料的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2001년부터 2010년 사이에 사상의학계에서는 普濟演說에 들어 있는, ‘四象人容貌5)關格 치료약물6)을 주제로 한 논문이 있었다. 또한 2016년에 한국철학회의 허훈은 사상의학의 철학적 배경으로서의 오행론7)에서 普濟演說을 언급했다. ! 빠뜨린 게 있다. 김달래 박사가 2002530일에 東醫壽世保元補編이란 제목으로 번역본을 출간했다.8) 普濟演說의 편집자는 과연 누구인가.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제마의 제자이거나 주변인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普濟演說을 본격적으로 探究한 논문은 20년 가까이 나오지 않았다.

 

(1)

첫 편인 普濟演說가 세 번 나온다.9) 김달래 박사는 그 중에 余於定平地내가 정평 땅에 있을 때로 번역하고 를 편집자라고 誤解했다. ‘曾見少陽人外感을 그의 경험이라고 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 동의수세보원의 골자를 요약 정리했다고 판단된, 12에서 편집자의 이야기는 단 한 곳도 없다. 나는 이 필사본 전체로 보더라도 편집자가 所見을 표현하거나 중간에 끼워 넣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초지일관 한 사람에 의해 적혀진 글이다. 만약에 원래 필사자 외에 나중에 이것을 다시 정리하고 편집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는 자신의 이름을 表紙에 넣을 수가 없다. 그가 한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余於定平地 曾見少陽人外感내가 정평 땅에서 일찍이 소양인 外感 환자를 보았는데, 小柴胡湯을 잘못 먹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죽었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 말하는 대목이다.

余 公道世間有壽命은 시인 杜牧(803~852)의 시를 인용하면서, ‘唐人, 세상에 공평한 이치는 白髮이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이 부분을 模倣하여 적어 보면 세상에 공평한 이치는 목숨이다.’라고 쓴 것이다.

以余所見은10) 내가 보건대, 고을을 지나다가 큰 길에 보이는 천 마리의 소는 대개는 백정의 손에서 죽는다. 을 쓰는 천 명의 사람 중에 4,5백 명은 반드시 의사의 손에서 죽는다. 病者에게 먼저 을 주었는데 많은 사람을 죽였다면 어찌 두려워할 일이 아니겠는가. 삼가고 조심해야만 한다.’고 했다. 나는 이런 果敢하고 豪宕言說普濟演說의 편집자에게서 나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2) 과제

나는 위 (1)의 단계 끝에서 아래와 같은 생각에 이르렀다.

1) 普濟演說 2) 人生日用說 이 두 부분은 東武 公의 글이 확실하다. 문장의 배열도 일정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의 내용은 用語의 선택과 문장의 구성 면에서 四象草本卷의 내용보다도 앞선 시기의 글이다. 그러니까 동무 공의 의학 초창기의 생각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7) 四象六經歌에 나오는 病證論 篇名新本의 내용이 들어 있다. 앞뒤가 서로 잘 맞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과제가 생겼다.

1) 筆寫者가 누구인가? 2) 필사자와 자료의 編輯者가 동일한 인물인가? 3) 필사자 혹은 편집자는 이 자료를 어떻게 얻게 되었나? 4) 는 누가 썼나? 5) 庚子閏秋는 필사자 혹은 편집자와 어떤 관계가 있나? (여기까지 쓰고, 비로소 普濟演說筆寫本을 볼 수 있었다.)

 

(3) 筆體

여기까지 읽은 분께 권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펜을 들고 漢字로 부자와 향부자를 써 보시라. 그런 후에 아래 사진을 보기를 바란다.

 

普濟演說筆寫者(글쓴이) 四象說에 대해 쓰면서 東武 公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도, 동무 공에 대해 설명하지도 稱頌하지도 않았다. 동무 공을 만났다거나 가르침을 받았다고 밝히지도 않았다. 는 세 번 나오고, 도 썼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지도 않았다.

그는 醫業에 종사한 사람이다. 앞 두 편에 정리한 자료는 四象草本卷, 保健省 東武遺稿, 庚子新本類似했다. 이 사람은 用藥의 두려움()을 강조했다. 이건 동무 공이 늘 강조하던 바이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를 해두었다. 新文物에도 개방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東醫壽世保元補編이라고 동의수세보원을 언급했다.

이제 나도 동무 공처럼 과감하게 말해야겠다. 普濟演說100년 후의 後學을 위해 庚子年(1900)에 동무 공이 히 써서 묶은 책이다. 寶物을 알아보는데 20년이 더 걸렸다.

 

참고문헌

1) 100년 만에 꽃피운 이제마의 사상의학, 주간동아3122001. 11. 30.

2) 김달래, 東醫壽世保元補編대성의학사 2002. 5. 30.

3) 사상체질의학회 40년사사상체질의학회 2010. 12. 31.

 

각주 

1) 안상우, 새로 공개된 四象醫學 자료 5종의 史料 가치」 『한국한의학연구원논문집2001.

2) 1) 普濟演說, 2) 人生日用說, 3) 天地運氣, 4) 臟腑總圖, 5) 觀形察色圖及其說, 6) 王叔和觀病生死候歌, 7) 四象六經歌, 8) 四象人相貌及藥種, 9) 四象應用藥方, 10) 經驗方, 附錄

3) 夫醫者理也 苟得其正則由是而爲醫國濟衆之方也 苟失其正則由是而爲赴湯蹈火之變矣 故繫辭曰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而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剛與柔 立人之道曰仁與義 大哉理也 是以先王重此四象之理 炎帝始嘗百草之溫涼甘苦 黃帝問答百病之風寒暑濕 周官設醫師之政 今以爲萬世普濟之方也 中間破爲諸儒所亂誤人甚多 實爲痛嘆也 今讀書偶感 而謹演一二個說 以備諸益之笑云爾 庚子閏秋序

4) 自誇癖이라고 한다.

5) 이의주, 四象人容貌에 관한 문헌적 연구」 『사상체질의학회지2005.

박은아, 사상체질별 안면부 전체적 형태의 특징에 관한 연구」 『사상체질의학회지2008.

6) 주종천, 사상체질별 關格 치료 약물인 巴豆, 甘遂, 瓜蒂의 문헌 고찰」 『사상체질의학회지2008.

7) 허훈, 사상의학의 철학적 배경으로서의 오행론」 『철학1282016. 8.

8) 마치 새로 발견된 자료에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 책을 먼저 내야한다는 躁急的使命을 가진 분 같다. 東醫壽世保元草藁(2001.5.)가 그렇고, 東醫壽世保元甲午舊本(2002.4.)도 그렇고, 東醫壽世保元補編(2002.5.)도 다르지 않다.

9) 1) 余於定平地, 2) 余 公道世間有壽命, 3) 以余所見

10) 以余所見 通邑大道千牛 皆死於屠夫之手 用藥者 千人中四五百人 必死於醫手也 先病者之藥 益多殺人 豈不懼哉 愼之愼之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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