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읽기] 죽은 자가 남겨둔 흔적으로 삶의 희망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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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읽기] 죽은 자가 남겨둔 흔적으로 삶의 희망을 말하다
  • 승인 2021.01.08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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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드라마읽기┃언내추럴
감독: 츠카하라 아유코출연: 이시하라 사토미, 이우라 아라타, 쿠보타 마사타 등
감독: 츠카하라 아유코
출연: 이시하라 사토미, 이우라 아라타, 쿠보타 마사타 등

십여 년 전, 국내에서 일본드라마가 작은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로맨스 위주였던 한국드라마와 달리 추리, 의학, 사극, 코미디 등 장르가 다양한 일본드라마는 국내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작품으로는 ‘시효경찰’, ‘노다메 칸타빌레’, ‘꽃보다 남자’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일본 드라마는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특유의 만화를 연상케 하는 아기자기한 연출과 과장된 감정표현, 우리나라와는 다른 연기자들의 스타일(머리나 옷 등의 디자인)은 국내 시청자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일본 드라마가 마니아의 영역에 들어갈 무렵, 오랜만에 한국 대중의 관심을 끈 작품이 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드라마 ‘언내추럴’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유사하게 시신을 부검해 사인을 밝혀내고 수사를 위한 법의학적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한 민간 기관인 ‘UDI 라보’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법의학이라는 특색 있는 장르에 서사도 착실하고, 배우들도 감정을 최대한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일본드라마에 거부감이 있던 사람들에게도 권해볼 만 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부검의들이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이야기로 승화시키고 있다. 과장된 코믹연기나 주연들의 러브라인 없이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작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작은 희망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바로 4편 ‘누구를 위하여 일하나’다. 이 이야기는 극중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행복의 꿀 케이크’를 만드는 공장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도중 사망한 사건을 둘러싼 과로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곤란을 겪는 일가족의 상황과 그럼에도 주위사람들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과정이 다소 뻔하지만 희망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다. 특히,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은 드라마 주제가인 ‘Lemon’과 함께 아름답게 어우러져 오히려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는 바로 전편인 ‘예정에 없던 증인’에서도 느껴졌다. 사실 이 드라마가 기존의 일본 수사물과 뭔가 다르다는 점을 느끼게 해준 에피소드가 바로 3편이다. 이는 법정의 증인으로 출석하게 된 미스미 마코토가 ‘여성’ 법의학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소송이 불리하게 흘러가는 내용으로 일본사회의 성인지감수성 문제를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드라마인 만큼 작중 표현이 다소 유치한 구석은 있지만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이기에 그동안 언급을 기피해왔던 페미니즘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변화하는 일본 시대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비극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찾는 구도는 인물간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누명을 쓴 채 10년 동안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부검을 해온 나카도 케이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지난 세월동안 원하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절망할 시간에 맛있는 거 먹고 잘래”라고 말하는 미스미 마코토는 그에게 예기치 못하게 등장한 희망이자 구원이 되었다. 그리고 혼자서는 찾아낼 수 없었던 답은 미스미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끝을 맺을 수 있었다.

동료와의 협력으로 오랜 과거의 고통을 청산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구원서사는 창작물에서 특이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면 다소 예측되는 뻔하고 따뜻한 이야기 속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흡입력은 흔히 찾아보기 힘들다. ‘언내추럴’은 추운 겨울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소 멀게 느껴지는 희망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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