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二原者에 대하여(24)- 빛-에너지 수송시스템(carrier-system): 장기(臟氣)·부기(腑氣)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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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原者에 대하여(24)- 빛-에너지 수송시스템(carrier-system): 장기(臟氣)·부기(腑氣) ⑧
  • 승인 2020.12.11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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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모

김선모

mjmedi@mjmedi.com


1. 하도종환(何道從還), 환(還)의 의미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 하도종환(何道從還)을 통해 제가들이 인식하고 있는 맥기(脈氣)의 방향성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이는 2장 “氣之過於寸口也. 上十焉息 下八焉伏”의 상하(上下)가 의미하는 방향과 “上於魚以反衰”의 상(上)이 의미하는 방향을 잇고 있는 하도종환(何道從還)의 환(還)이 소위(所謂) 맥기(脈氣)의 방향성을 밝히는데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제가들은 폐(肺)로부터 상행(上行)한 맥기(脈氣)가 어제(魚際: 또는 手指)에서 방향을 전환(轉換)하여 하행(下行)으로의 역행(逆行)이 일어난다고 인식하였다.

 

2. 제가들의 환도(還道)

하지만 제가들의 방향성에 대한 인식을 일목요연하게 알아보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1) 마시(馬蒔) 선생의 경우 “氣之過於寸口也, 上十焉息? 下八焉伏?”에서는 “上之從息而行者는 可擬十分이요 下之伏於臟內者는 可擬八分”이라 해석하여 마치 촌구(寸口)로부터 폐(肺)로의 외경(外經)은 10이요. 폐경(肺經)에서 장부(臟腑)로의 내입(內入)은 8이라는 내외(內外)만 구분된 향심성(向心性) 방향으로 이해한 듯 보이지만, 기백의 답변 “上於魚以反衰”를 “但其上魚之際에 十焉在息하고 下魚之後에 八焉伏藏이라 故로 上魚旣已則氣似反衰하고 及其餘氣衰散旣已하얀 則又逆而上之於魚하니......《영추연구집성》”라고 해석한 것을 보면 촌구(寸口)를 기준으로 한 향심성(向心性) 방향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상어제(上魚際)의 전(前)과 후(後)의 세기차이를 10:8로 설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해석이 구체적이지 않아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上之從息而行者”와 “下魚之後 八焉伏藏”의 경로가 어디서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단언할 수는 없으나 “上魚之際 十焉在息/下魚之後 八焉伏藏”의 해석을 감안한다면 기본적으로 상행(上行)=향외성(向外性), 하행(下行)=향심성(向心性)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2) 그나마 장경악 선생은 “上十焉息은 言脈之進也에 其氣盛하니 何所來而生也오 下八焉伏은 言脈之退也에 其氣衰하니 何所去而伏也오 此其往還之道”라 하고 “凡脈氣之內發於藏 外達於經...... 故 脈由寸口 以上魚際 盛而反衰 其餘氣 以衰散之勢而逆上”이라 하여 상(上)=진(進)(폐로부터의)=왕(往), 하(下)=퇴(退)(어제(魚際)로부터의)=환(還)이라는 일관된 방향성으로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3) 지난 시간 알아본 양상선 선생은 “上焉息 下焉伏”은 “종수촌구 상입폐이식(從手寸口 上入肺而息)”, “從肺 下至手指而屈(종폐 하지수지이굴)” 촌구(寸口)를 중심으로 폐(肺)로의 상행(上行)과 폐(肺)로부터 수지(手指)로의 하행(下行)으로 구분한 반면 “상어어이반쇠(上於魚以反衰)”에서는 굳이 상행(上行)과 하행(下行)을 나누지 않고 “從少商反迴, 達上向肺”와 같이 소상(少商)에서의 방향전환(方向轉換)에만 초점(焦點)을 맞춰 설명하고 있다. 이는 지난 시간 설명하였듯이 십(十)과 팔(八)이 생략된 《태소》의 “上(十)焉息 下(八)焉伏”은 다른 제가들처럼 세기의 약화와 숫자 8의 연결을 통해 환도(還道)와 하도(下道)를 일치시킬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氣之過於寸口也”에서는 촌구(寸口)를 중심으로 폐(肺)로부터 수지(手指)로의 경로를 하도(下道)라 하고 “上於魚以反衰”에서는 정반대의 방향, 수지(手指)로부터 폐(肺)로의 경로를 환도(還道)라 하여 하도(下道)와 환도(還道)의 방향을 정반대로 기술한 것은 양상선 선생의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4) 장지총 선생의 의견은 지난 기고문 “十二原者에 대하여(18)- 빛-에너지 수송시스템(carrier-system): 장기(臟氣)·부기(腑氣) ③”으로 대체(代替)한다.

 

3. 제가들의 공통된 의견=환도(還道)

거의 모든 제가(장지총 선생은 제외)들은 “氣之離臟也”부터 “上於魚以反衰”의 경로를 폐(肺)로부터 어제(魚際)까지의 향외성(向外性) 경로로, “何道從還?”의 환(還)은 어제(魚際)이후 폐(肺)까지의 향심성(向心性) 경로로 이해하고 있다. 이 경로와 각 제가들의 “上(十)焉息 下(八)焉伏”의 상행(上行)/하행(下行)의 경로가 일치하는가에 대한 의견을 종합하면 다음 표와 같다.

 

마시 선생의 해석이 장황하기도 하고 구체적이지도 않아 그 경로를 구체적으로 단정하기 쉽지 않지만 제가들 모두 하도종환(何道從還)의 환(還)을 수지단(手指端)을 터닝-포인트(turning-point)로 하는 어제(魚際)로부터 폐(肺)로의 환도(還道)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4. 하도종환(何道從還)의 반환점(返還點), 폐장(肺臟)

02章 黃帝曰, 氣之過於寸口也, 上十焉息? 下八焉伏? 何道從還? 不知其極。

岐伯曰, 氣之離臟也, 卒然如弓弩之發, 如水之下岸, 上於魚以反衰, 其餘氣衰散以逆上, 故其行微。

다시 한번 상기시키지만 기백의 대답에는 모든 제가들이 동의하고 있는 환도(還道)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하지만 기록의 부재(不在)만으로 기(氣)의 반쇠(反衰)와 숫자 8의 매력적인 개연성(蓋然性)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어제(魚際)를 지나 이미 쇠(衰)해진 맥기(脈氣)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 리도 없으며 폐(肺)로 돌아올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니 그 돌아오는 길을 하도종환(何道從還)의 환도(還道)라 해석하는 것이 그리 큰 잘못일까?

그러나 하도종환(何道從還)의 환(還)을 어제(魚際)에서 폐(肺)로의 하도(下道)로 단정하는 것은 대단히 성급하고 잘못된 결정이다. 어제(魚際)로 갔던 기(氣)가 돌아오는 것과 하도종환(何道從還)의 환(還)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답은 간단하다. 황제의 질문 ‘하도종환(何道從還)’의 환(還), 즉 반환점은 기백의 대답에서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황제의 질문 “폐기(肺氣)는 어떤 방식으로 다시 되돌아 나오는가”에 대한 대답은 “氣之離臟也: 폐장으로부터 떠나오는 맥기는......”이다. 따라서 황제와 기백이 문답(問答)하는 하도종환(何道從還)의 반환점(返還點) 즉, 터닝-포인트(turning-point)는 바로 폐장(肺臟)인 것이다. 이는 온전히 질문과 답변의 ‘주제’에 집중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답이다.

아무리 10과 8의 세기변화와 ‘上於魚以反衰’의 반쇠(反衰)지점 어제(魚際)가 심어주는 강한 개연성의 유혹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질문자의 질의에 대한 답변자의 구체적인 기술(記述)이 버젓이 기록되어 있음에도 구체적인 표현조차 없는 부분을 상상하여 하도종환(何道從還)의 반환점을 수지단(手指端)이라 자신있게 단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쓰리고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 이면에서 느껴지는 ‘오만(傲慢)’ 때문이다.

 

5. 기준점 촌구(寸口)

문답(問答)의 형식을 무시했던 ‘도(道)’의 해석이 단어 하나의 수정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반환점의 오류도 그저 방향의 수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파장은 어디까지일까?

앞서 말했듯이 환(還)이란 ‘기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반환점’에서 되돌아온다는 의미이다. 명심해야할 것은 ‘반환점’이 내포하고 있는 ‘기준점’이다. 황제내경이 말하고 있는 반환점 ‘폐(肺)’가 내포하고 있는 대측(對側) 기준점은 어디인가?

“黃帝曰, 氣之過於寸口也, 上十焉息? 下八焉伏? 何道從還? 不知其極。” 바로 기지과어촌구야(氣之過於寸口也)의 촌구(寸口)이다. 황제가 기지과어촌구야(氣之過於寸口也)로 질문을 시작하는 이유는 지금부터 드리는 질문은 “‘촌구(寸口)’를 기준으로 하겠다”는 말이다. 황제의 질문 “上十焉息 下八焉伏”과 “何道從還” 모두 기준점은 ‘촌구(寸口)’인 것이다.

기백의 답변 또한 기본전제를 벗어날 수 없다. 기백의 답변 “氣之離臟也”는 촌구(寸口)를 기준으로 반환점인 폐(肺)를 설명한 것이다. 이렇듯 《황제내경》의 저자는 폐기운행의 기준점과 반환점을 모두 명백히 기술해 놓았다.

 

6. 오만(傲慢) 속의 신중(愼重)

馬: 脈之過於寸口也 景岳:寸口는 手太陰脈也.

그럼에도 불구하고 “氣之過於寸口也”에 대한 제가들의 해석은 겨우 저 한 줄이 끝이다. 마치 이렇게 당연한 것은 설명할 것도 없다는 듯 이외의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기본적인 개념같은건 알아서 공부하라는 듯 권위적이다. 황제와 기백의 문답(問答)에 철저하게 무관심했던 바로 그 ‘오만’과 결을 같이한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앞서 살펴보았던 양상선 선생의 해석이다. 양상선 선생은 다른 제가들과 전혀 반대의 상도(上道) 하도(下道)를 설명하고 있다. 모든 제가들이 폐기(肺氣)가 약해지는 어제(魚際)로부터 폐(肺)로의 환도(還道)를 하도(下道)로 정의한 것과는 달리 촌구(寸口)를 기준으로 상도(上道) 하도(下道)를 정의한 것이다. 분명 “氣之過於寸口也”의 ‘촌구’에 마음을 두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양상선 선생의 해석도 거기까지일 뿐이다. 촌구(寸口)를 기준으로 상도(上道) 하도(下道)를 구분하였지만 바로 뒤 해석에서 “還肺之時 爲從本脈而還 爲別有脈道還也”라고 기술하고 있다. 하도종환(何道從還)의 환(還)은 양상선 선생에게도 종수지폐(從手至肺)의 환도(還道)일 뿐인 것이다.

 

7. 가관(可觀)

갈수록 가관(可觀)이다. 제가들은 설명되지 않은 하도(下道)에 대해서는 온갖 자신들의 상상(想像)을 쏟아내면서도 기본적인 문답의 형식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으며, 기록되지도 않은 수지단(手指端)의 터닝-포인트(turning-point)에 대해서는 일말(一抹)의 개연성에 들떠 답변자의 직접적인 설명조차 무시하였다. 이처럼 저자의 서술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도 없이 자신만의 논리적 유추능력으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한 것인냥 뽐내는 모습에는 배우는 자의 겸양(謙讓)을 찾을 수 없다. 《황제내경》의 해석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권위주의적 오만’은 《황제내경》을 허황되고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음 시간에 알아볼 기준점, 촌구(寸口)를 무시함으로써 야기된 결과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김선모 / 반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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