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41> - 『簡易辟瘟方』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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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41> - 『簡易辟瘟方』①
  • 승인 2020.12.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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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500년전 平安道를 휩쓸었던 역병

지난 10월 21일 코로나 감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서도 한의계에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물경 500년 전인 1525년(중종 20년) 평안도로부터 한양에 이르는 길목을 따라 번지며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던 무서운 역병이 있었다. 이듬해 봄까지 가실 줄 모르고 기승을 부리던 이 역병을 다스리기 위해 조정에서는 의관인 부호군 金順蒙, 예빈시주부 劉永貞, 전내의원정 朴世擧 등에게 이 참혹한 역병을 다스릴 묘방을 찾아내도록 왕명을 내리게 된다.

이때 꾸며진 온역치료방을 활자로 간행한 책이 바로 오늘 얘기할『간이벽온방』이다. 하지만 당시 간행한 초간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번에 새로 보물로 지정된 국립한글박물관 소장본은 50여년이 흐른 뒤인 1578년(선조11)에 을해활자로 다시 간행한 중간본이다. 그러니 필시 중종조에 맞이했던 역병과 비슷한 양상을 띤 돌림병이 선조 연간에 또 다시 침습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존한 이 책의 판본 가운데에는 이로부터 또 35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인 1613년 정월에 반사한 훈련도감 활자본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따라서 역병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 재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동의보감』이 처음 간행되었던 이 해 가을 9월에는 허준이 다시 『新纂辟溫方』을 편찬해 펴내게 되었으니 역병은 올 때 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415회 400년 전 疫病의 到來, 2009.5.4.일자 참조)

특별히 이번에 보물 제2079호로 지정된 언해본 ‘간이벽온방’에는 조정에서 하사했음을 입증해주는 內賜記와 ‘宣賜之記’라고 새겨진 관인이 찍혀 있어, 한층 더 사료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앞쪽 표지 뒷면에 적힌 내사기를 통해 당시 도승지를 지냈던 尹斗壽(1533∼1601)에 의해 성균관박사 金緝에게 頒賜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윤두수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하는 어영대장을 지냈으며, 이때의 공로로 사후인 1605년 호성공신에 책록되었다.

한편 기존에 알려져 있던 1613년 중간본(한국의학대계 36권 수록)은 아마도 이 을해자본을 저본으로 다시 간행한 판본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규장각 소장 중간본에는 ‘內賜辟瘟方一件, 五臺山上’이라 쓴 내사기와 함께 ‘右承旨 臣李[手決]’이 있어 五臺山史庫에 보내 비장했던 책임을 알 수 있다. 요즘 시각으로 풀어보자면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르는 환난에 대비하고자 국가기록원에 보내 영구보존 처리한 귀중 문건으로 여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러 가지 기록을 토대로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간이벽온방’은 현재까지 알려진 동종문화재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판본이며, 그 전래가 매우 희귀해 현전 유일본으로 여겨진다. 또한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금속활자 발전사 연구에 활용도가 높은 자료인 만큼 서지학적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되었다고 그 지정사유를 밝혔다.

특별히 관련 보도에서도 간이벽온방은 선조들이 오늘날 전세계에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보여주는 가치 있는 서적일 뿐 아니라 희귀본이어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음을 전했다.

한편 한의계에서도 보물지정 예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 책이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히 번진 역병(장티푸스로 추정)을 막기 위해 왕명을 받아 전염병 치료에 필요한 처방문을 모아 한글로 諺解하여 간행한 의학서적임을 밝히면서, 15세기 조선시대 전염병 치료를 위해 사용된 한의학 서적이 보물로 지정됨을 반긴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이 책은 한문으로 된 본문과 함께 한글로 번역한 언해가 있어 한글표기법과 국어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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