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스마트폰을 쥔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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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스마트폰을 쥔 원숭이
  • 승인 2020.10.1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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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나는 왜 이렇게 산만해졌을까

1번 베드에 누워계신 환자분은 20분 후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 2번 베드에 누워계신 환자분은 오늘 무릎을 치료받으러 오셨는데 감기 기운이 있는지 찌뿌둥하시다(등에 부항과 찜질을 해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4번 베드에 계신 환자분은 10분 후 치료가 끝나지만, 치료 후 스트레칭 동작과 환부의 관리 안내를 해드리기로 했다. 현관 종이 딸랑거리는데 환자일까 점심배달일까 서류를 떼러 오신 분일까? 마치 따끈한 국과 생선구이를 풀이 죽지 않은 샐러드와 함께 동시에 내놓을 때처럼 머릿속이 분주하다. 잠시 후 점심시간에 순차적으로 빈 베드를 마주하면 뿌듯하다. 멀티태스킹이 성공했다.

알렉스 수정 김 방 지음, 이경남 옮김, 시공사 출판
알렉스 수정 김 방 지음,
이경남 옮김, 시공사 출판

주말에는 동영상 강의를 보기로 했다. 동영상을 보는데 하다가 만 뜨개질이 생각났다. 뜨개질은 머리 안 쓰니까 괜찮겠지 싶었는데 친구가 메신저로 말을 건다. 강좌 내용을 놓쳤다. 동영상 내용을 다시 앞으로 돌린다. 손을 뜨개질에서 떼다가 올이 풀렸다. 올이 풀린 뜨개질을 고치는 방법을 검색한다. 옆에 털실을 갖고 노는 고양이 동영상이 추천으로 올라온다. 친구들에게 동영상을 공유한다. 함께 귀여움을 나누다가 정신을 차리고 동영상 강좌로 돌아온다. 어디까지 들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 처음부터 다시 들어야겠다. 망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산만해졌을까, 하고 한탄한다.

<나는 왜 이렇게 산만해졌을까>에서 말하기로는 이건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스위치태스킹이라서 망한 것이다. 많은 일과 생각을 하되 몰입하여 하나의 목표로 꼬아내는 멀티태스킹과 달리 두 가지 이상의 독립적인 일을 번갈아 하는 스위치태스킹은 목표 방향을 전환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더 잦은 실수를 유발한다.

왜 이런 “원숭이 뇌” 같은 산만함이 유발되었을까. 우리는 각종 기기와 함께 상호작용하고 있다. 언제든 접속도 하고 검색도 할 수 있는 거대한 데이터, 언제든지 낮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과 동시에 교류가 가능한 장비들. 이런 기기들은 우리의 작동 방식을 바꾸게 된다. 적절히 훈련한 시각장애인은 지팡이를 통해 촉각과 청각을 시각으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다. 이때 지팡이는 몸의 확장된 부분이라 볼 수 있다. 나는 어릴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사진에 찍혀있지 않은 할머니의 목소리나 김밥의 맛을 함께 회상할 수 있다. 사진은 단순한 기억의 대체가 아니라 내 기억능력의 확장이다. 산만함은 이렇게 기기와 얽혀서 기능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난관이다.

산만함을 억누르기 위해서 각종 기기를 포기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손해가 크다. 컴퓨터나 인터넷,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다양한 기술은 어디까지나 우리 삶을 위한 도구이다. 사진 같은 다양한 데이터는 기억력의 방아쇠가 되어주고, 나의 건강한 미래를 보여주는 가상현실은 좋은 습관을 갖게 도와주는 강한 피드백이 되어준다. 카메라를 통해 보는 세상은 눈으로만 보고 지나갈 때와 다른 색과 질감과 빛과 입체감을 보여준다. 또 이 사진-눈으로 본 정보-과 GPS 기술을 연결하면 장소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기억이 된다.

우리는 기술과 얽힘을 통해 기능이 확장된 것이다. 그러나 이 확장된 기능에 잘못 휘둘리면 파편이 된 시간 쪼가리만 남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깨어있는 마음으로 무엇을 할지, 기기가 나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확장된 마음과 기능으로 몰입하는 “관조적 컴퓨팅”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마음챙김 명상과 이를 돕는 애플리케이션들, 연습에 사용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각성을 통한 스트레스 감소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마음챙김을 통한 스트레스 관리”라는 표현의 구글 검색 결과가 많다.) 명상이니 집중이니 하면 다소 구체적이지 않은 정신론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집중력은 근력과 같아서 꾸준한 연습으로 발전시킬 수 있지만 지나치면 고갈되거나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언제나 하고 싶은 것은 많고 만나고 싶은 이들도 많고 몸과 정신이 최선의 상태면 좋겠다. 시간부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 방법은 바쁘게 지내고 억지로 참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와 능력, 확장된 능력, 목표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김린애 / 상쾌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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