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지수사 - 섣부른 싸움은 화만 부른다
상태바
[모두의 주역] 지수사 - 섣부른 싸움은 화만 부른다
  • 승인 2020.09.25 08: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안그래도 코로나로 어수선한 시기에 이 곳 저 곳에서 집단간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그 사이에서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양측 모두 격렬한 상황이라 쉽게 진정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다툼이 개인과 개인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끼리의 충돌이 될 경우에는 그 집단을 통솔하고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하는 사람의 역할이 매우 크다. 지수사괘의 師는 그런 집단을 통솔하는 우두머리다. 사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師 貞 丈人 吉 無咎

彖曰 師 衆也 貞 正也 能以衆正 可以王矣 剛中而應 行險而順 以此毒天下而民從之 吉 又何咎矣

전쟁은 힘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량공세를 이기는 건 없다지만, 지략이 없이 쪽수만 믿고 덤볐다가 참패를 당하는 사례는 역사책 어느 한 페이지를 뒤져도 반드시 등장하는 장면이다. 치기어린 젊은이나 남과 나를 가르고 상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소인배가 우두머리가 되면 그 집단의 전체가 그에 맞추어야 한다. 전쟁은 완승으로 끝나는 일이 별로 없다. 소모전으로 오래 끌다가 서로 합의점을 도출할 때, 양측의 피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때 전쟁은 그 끝을 맞는다. 전쟁을 이끄는 것도 끝맺는 것도 그래서 어른이라야 허물이 없다. 그 전쟁이 더 옳은 것을 위한 것이었어야 함은 물론이고, 그 전쟁이 끝났을 때에 남은 것이 쓰라린 상처와 죽음뿐이어서는 더욱 더 안된다. 그 어느 때보다 어른의 역할이 필요할 때인 것이다.

初六 師出以律 否 臧凶

착한 것은 도덕이다. 그러나 전쟁통에 도덕이 통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개개인의 자율에 맡겨 놓은 도덕은 평화로울 때에는 서로의 암묵적인 약속과 배려로 사회를 정돈하지만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거의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엄격한 군율이 있어야 구멍이 생기지 않고 조직이 와해되지 않는다. 징집된 병사가 밤에 몰래 막사를 빠져나가 가족들을 돌보고 온다고 하면 착한 일이지만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면 밤의 그 진영은 위험한 상태가 된다. 가족들을 돌보는 것은 착한 일이지만 결국엔 가족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평소 마음이 약한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면 누구의 딱한 사정, 누구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가슴아파한 나머지 규율이 느슨해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유약한 마음으로 임했다가는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전쟁 상황이다. 그러니 흉하다.

九二 在師中 吉 无咎 王三錫命

구이는 지수사괘의 유일한 양효다. 육오의 짝이며 음양응을 이룬다. 원래대로라면 다섯 번째 효가 왕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음효라 힘이 없다. 그래서 자기 짝인 구이에게 이 전쟁의 통솔을 맡겼다. 군사의 전권을 받았으니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상황에 구이가 마음을 잘못 먹는다면 전쟁을 벌이던 쪽과 결탁하여 왕을 없애고 본인이 왕위에 등극할 수도 있다. 역사상 이런 일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나 구이는 자기 자리를 지키며 이 전쟁을 최대한 잘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왕이 포상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하는 것은 대단한 신뢰와 총애의 표현이다. 그러니 우두머리인 구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구이는 자기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자기가 거점으로 삼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도 아는 군사다. 이런 우두머리 아래에 있으면 살아날 확률이 더 높다.

六三 師或輿尸 凶

육삼은 내괘에서 외괘로 넘어가는 자리에 있다. 그러나 자기 힘이 음효라 약한데도 섣부른 행동을 하여 크게 패한 상태다. 명령이라 그를 따랐던 군인들이 모두 시신이 되었고 자기만 살아남아 수레를 끌고 돌아온 상황이다. 자기 자리도 모르고 자기 힘의 크기도 모른채 막무가내로 덤빈 결과는 이렇게 참담하다.

六四 師左次 无咎

누군가의 심복을 두고 ‘오른팔’이란 말을 많이 한다. 사도신경에도 ‘전능하신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오른쪽은 파워가 센 쪽이다. 태풍에서도 우측 반원의 바람이 더욱 거세다. 그런데 좌측으로 간다는 것은 한 발 물러선다는 것이다. 육삼과는 달리 육사는 자기의 힘이 현재 상황을 승리로 이끌 만큼의 힘이 없다는 사실을 빠르게 파악한 것이다. 부딪쳐서 육삼처럼 와해되는 것보다는 후퇴를 하더라도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불필요한 사상자가 생기지 않았으니 비록 공이 없지만 허물도 없다.

六五 田有禽 利執言 无咎 長子帥師 弟子輿尸 貞 凶

밭의 새는 허수아비라도 세워 쫓아야 할 만큼 백성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전쟁을 시작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왕인 육오가 할 일이다. 자기 나라 백성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없애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길하지는 않지만 허물은 없다. 가만히 당하고 있는 것보다는 맞서 싸우는 편이 우리쪽도 피를 흘리더라도 더 낫다는 판단이 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장자는 당연히 왕위 계승 서열 1위이다. 이번 전쟁에 공을 세워 자기 세력도 돈독히 하고 왕위에 올랐을 때 사람들의 존경도 받고 싶을 터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법에 따르면 그의 명령이 최우선일테지만 그 판단이 항상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시체가 또 수레에 쌓여 돌아오게 된다. 법은 지켜 바르지만 결과는 흉한 것이다.

上六 大君有命 開國承家 小人勿用

전쟁 중의 죽음은 가문을 가리지 않는다. 귀족도 천민도 총과 칼 아래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제후가 사망한 나라에는 새로운 제후를, 가문의 계승자가 사망한 가문에는 새 계승자를 정해주어야 한다. 군사가 죽으면 새 군사를 세워야 한다. 인재가 없다고 아무나 썼다가는 어려운 와중에 더 어려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전쟁이 끝났으면 목숨을 걸고 싸운 군인들과 그들을 지휘한 군사는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목숨을 걸고 나가 싸울 것인가. 전쟁은 시작도 숙고해야 하고 하는 동안에도 고심해야 하지만 마무리도 중요하다. 전쟁 후 잘못된 논공행상에 앙심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킨 장수의 이야기 역시 역사책 어디를 펴도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요즘 전공의 파업과 의대생 국시 거부로 세상이 시끄럽다. 지방 기피, 기피과 인력 부족이 의사 인원의 문제가 아님을 간과한 정부의 정책 방향과 발표 시기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투쟁의 방식과 그들이 명분으로 삼은 것이 국민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점점 더 민심을 잃게 하는 상황인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지수사괘의 효사들이 모두 전쟁을 이끄는 우두머리를 나타내는데, 그 중 이 투쟁을 이끄는 우두머리는 아무래도 구이와 같은 지혜는 갖추지 못한듯 하다. 결국 온갖 조롱거리감으로 전락하며 그들이 외쳤던 것들 중 어떤 것도 얻지 못하게 될 공산이 크다. 지금이야 강 건너 불구경이나 다름없으나 이런 일이 언제 또 내 눈 앞에 닥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내 걱정은 그러한 혼란의 시대에 내가 따를 군사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변방의 아무개에게도 그 짊어진 이름이 있는 이상은 이 집단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박혜원 / 장기한의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