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99) 가을엔 이것을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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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99) 가을엔 이것을 하겠어요
  • 승인 2020.09.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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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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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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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스타벅스의 경영성과가 끝없이 추락할 때 하워드 슐츠 (現)스타벅스 의장은 CEO로 컴백했다. 그리고 복귀 2년 후인 2010년, 매출 4.1%증가, 순이익 3배 증가로 플러스 반등에 성공했다. 그의 컴백 성공 비결은 과감한 구조조정이었다. 미국과 전 세계에서 각각 1500명, 1700명의 직원을 해고해서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2020년 현재의 스타벅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과는 대단하다.

전 세계의 많은 소비재 회사들은 경기가 악화될 때 인원을 줄이고 불필요한 투자를 거두어들이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한다. 경기가 악화되면 동종업계가 함께 불황을 겪기 때문에 이 시기를 지나는 동안 많은 경쟁회사들은 낙오한다. 최악의 경기 상황을 지나고 나서도 살아남은 회사는 그 때부터 급격한 성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경쟁자는 대폭 줄어들고 내부적으로는 강력한 구조 조정 덕분에 다시 올라갈 때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급격하게 성장한다. 코로나를 지나는 지금 같은 시기가 바로 기업들에겐 구조조정의 기회가 된다. 이 시기가 끝나면 살아남은 자들의 축제가 시작된다.

황제 내경의 숙살(肅殺)과 수장(收藏)이 바로 이 상황이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어둠을 지나는 소소한 매뉴얼 그 2탄이다. 갑작스런 시련과 슬픔 앞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이 우선이지만 슬픔의 힘이 다 한 후에는 숙살(肅殺)이 필요하다. 숙살(肅殺)이란 국어사전에서 말하길 쌀쌀한 가을 기운(氣運)으로 풀이나 나무를 말려 죽임을 뜻한다. 이처럼 내 주변의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하고 냉정하게 정리해야 한다. 내면과 외부를 향한 동일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끊어내야 한다. 나를 소모시켰던 관계와 사람, 과거의 관성으로 그저 해오던 일들, 나의 마음에 어두운 감정을 일으키는 모든 것을 끊어내야 한다.

가을의 나무가 자신의 잎 살을 끊어내듯 그래야 한다. 가을보다 더 냉혹한 겨울을 대비하고 뿌리 깊이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해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살아남아 봄을 만난다. 봄이 계절의 시작이란 건 인간의 편견일 뿐이다. 생물은 그저 지금 살아남아 다음을 맞이하는 것 밖에 없다. 그렇게 버티면 봄이 오고 그 봄을 풍성한 따스함으로 누리다보면 만개하는 계절이 여름 일 뿐이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았던 여름은 스산한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코로나 후의 경제 상황에 대한 전문가들의 식견을 듣다보니 극심한 경기악화를 버틴 회사는 그 후에 엄청난 성장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귀에 쏙 박힌다. 경기가 좋을 때는 인력을 감축 할 계기가 없던 회사들이 경기가 나쁠 때, 불황을 핑계로 불필요한 사업도 정리하고 대규모 구조조정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회사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성장한다고 한다.

우리도 그렇다. 모든 것이 정상일 때는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다. 하는 일마다 안 되고 상황이 나쁠 때 주위를 둘러본다. ‘무엇이 원인인가?’ ‘지금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처럼 변화를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이상하게 일이 안 풀리고 전에 없던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듯 묘한 느낌이 든다면 쌀쌀한 가을바람의 시작일 수 있다. 이럴 때 나를 힘 빠지게 하던 모든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관계, 사람, 일 등 눈에 띄는 것부터 정리하면 된다. 엄두가 나지 않던 것들을 정리해서 버리고 나면 하루를 보낸 뒤 <저녁 마음>이 달라진다. 이유 없이 무겁던 마음의 무게가 줄어든다. 자기 전에 마음에 남는 잔상이 없어지고 내일에 대한 걱정이 줄어든다.

그렇게 내 주변을 정리하고 떠나보내면 좋은 일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걱정 대신 열정이 서서히 찾아온다. 새로운 계기와 기회,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가장 큰 변화는 이유 없이 웃는 일이 많아진다. 소소한 유머 동영상을 보고서도 훨씬 더 자지러지게 웃게 된다. 마음의 긴장과 짐이 줄었다는 결정적 증거다. 이렇게 가을 겨울은 가고 소리 없이 봄은 찾아온다.

어느 수학자는 하루를 적분하면 인생이 되고, 일생을 미분하면 하루가 된다고 한다. 다시 오지 않을 나만의 하루를 기쁘고 보람 있게 보내야 노년의 후회가 줄어든다. 내 소중한 하루를 무겁게 만드는 것들을 숙살(肅殺)의 마음으로 정리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가을맞이 신박한 정리>다. 어둠을 지나며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일은 바로 이런 일일 것이다. 자려고 누웠을 때 걱정할 것이 없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방송인 홍진경 씨의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저녁 마음>이 가벼워질 우리 모두를 위해 가을엔 숙살(肅殺)이 어떠세요?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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