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98) 어둠을 지나는 소소한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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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98) 어둠을 지나는 소소한 매뉴얼
  • 승인 2020.08.2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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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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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코로나로 시작해서 연중 코로나와 함께 할 것 같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폭우는 마치 눈물을 대신하는 듯하다. 우리는 모두 이런 시기를 지날 때가 있다. 인생의 어두운 시기, 그 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하고 혹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인생의 어둠은 피할 수 없다. 누구나 그런 시기를 만난다. 그 시기에 만나는(遭遇) 일들은 우연한 교통사고처럼 대부분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조금 더 현명했다면, 조금 더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 욕심을 내지 않았다면...’과 같은 후회가 생기지만 다시 돌아가더라도 선택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가장 ‘나’ 다운 혹은 ‘나’ 스러운 선택을 한다. 실패를 겪고 교훈을 가진 지금의 ‘나’는 그 당시의 ‘나’와 다르다. 그 당시의 ‘나’는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나간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는 쓸모가 없다. 우리가 후회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후회스러운 과거의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바라는 일은 잘 안 되고,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는 이어진다. 절친했던 인연이 끊어지기도 하고 가족이 와해되기도 한다. 이런 순간에 필요한 자세는 ‘Do nothing!’이다. 명심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 어떤 변화나 해석도 훗날로 미루어야 한다. 중요한 결정은 더더욱. 왜냐?

어린 아이가 길을 잃었을 때 가장 현명한 대응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래야 부모와 다시 만날 확률이 높다. 바다에서 큰 파도가 칠 때도 물 밖에서 허우적대면 안 된다. 물속이 오히려 안전하다. 물 밖으로 나오려다가 파도에 맞아 다시 물속으로 고꾸라지는 경우가 많다. 벗어나려고 허우적댈수록 더 큰 파도가 뒤통수를 후려갈기기 십상이다.

인생에도 흔히들 운(運)이라고 하는 흐름이 있다. 인생의 흐름이 나쁜 시기를 지날 때는 이유 없이 나쁜 일이 잦아진다. 급작스런 이별이나 관계 악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이럴 때 인연에 집착하다가 더 큰 화(禍)를 만나기도 한다. 피할 수 없는 이별은 운명이다. 아픈 이별이라 할지라도 그 연(緣)을 끊어내야 한다. 운명적 이별을 애써 이어갈 때 더 많은 슬픔이 찾아온다.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 시기를 빨리 종식시키는 방법은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거친 흐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내 옆을 지나는 큰 파도에 맞서지 말고 피해야 한다.

이 때 움직이면 다친다. 빨리 벗어나려다가 상황이 더 나빠지기도 한다. 인생이 꼬일 때는 평소와 다른 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 나쁜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평소보다 감정적일 수 있다. 상황이 좋을 때는 금방 결정할 일도 흐름이 나쁠 때는 오래 고민하다가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이런 시기에는 선택의 상황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직업을 바꾸거나, 직장을 옮기거나, 이사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선택은 미루어야 한다. 이 시기에 하는 중요한 선택은 후회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 운명이다. 그로 인한 손해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최대한 웅크리고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 순간 작은 변화를 느끼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작은 행운들은 어둠이 끝나가는 신호다. 하지만 아직, 조금 더 긍정적인 사건과 시그널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좋은 소식은 대부분 새로운 사람과 함께 오기에, 뜻밖의 사람이 전하는 기회에 귀를 기울일수록 좋다. 험난한 시기를 지내다보면 결국 헤어질 인연은 떠나보내고, 새로운 인연과 함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힘든 시기는 갑자기 찾아온다. 그래서 자기만의 소소한 매뉴얼이 필요하다. 이런 시기를 현명하게 지나는 방법은 빨리 벗어나려 애쓰지 말고 손실을 최소화하며 웅크리는 것이다. 그 시기엔 무엇을 해도 득보다 실이 크다. 하지만 이것 역시 영원하지 않다. 우리는 다시 화창한 날과 만나게 된다. 그 때 기지개를 펴고 재기하려면 힘든 시기에 손실이 적어야 한다. 손실이 적을수록 빨리 그리고 더 크게 일어선다.

인생에도 겨울잠이 필요한 시기가 있지 않을까?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의욕과 열정을 잠시 아끼자. 이길 것 같은 전투도 가급적 피하자. 지금 웅크려야 나중에 더 크게 피어오른다. 봄이 괜히 Spring일까. 다시 봄을 맞이할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믿는다. 소리 없이 찾아올 봄날을 위해.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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