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97) 쓸데없는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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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97) 쓸데없는 걱정
  • 승인 2020.07.10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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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램프증후군(Lamp Syndrome)이란 것이 있나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나 싶기도 했지만 진짜 처음 들어본 용어다. 검색창에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치니 연관 검색어로 램프증후군이 나왔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에 대해 램프의 요정 <지니>를 불러내듯 수시로 꺼내서 걱정하는 현상을 지칭한다고 한다. ‘머리 위 천정이 내려앉으면 어쩌지?’ ‘TV 뉴스에 나오는 무서운 일이 나에게 일어나면 어쩌지?’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쩌지?’처럼 막연한 불안감에서부터 ‘노후에 대한 걱정’ ‘질병에 대한 걱정’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 까지 램프에서 불러올 걱정거리는 ∞(무한대)에 가깝다.

나 역시 램프 증후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큰 병에 걸리면 어쩌지?’ ‘한의원에 골치 아픈 환자들이 소란을 부리면 어쩌지?’ 등 일어나지 않은 일을 수 없이 상상하고 대비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다.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걱정하지 않았던 일들이 찾아왔다. 몸은 이곳저곳 이유 없이 불편했고, 마음의 색은 무채색으로 바래져갔다.

걱정은 ‘잘 해야 된다.’는 마음 위에서 잘 자란다. 마음속에는 스스로 혹은 부모가 만들어준 높은 기준치가 설정되어 있고 그 기준은 걱정을 잘 만드는 환경이 된다. 잘 해야 하는 일이 점점 늘고, 최소한이라는 기준은 점점 높아진다. 모든 일을 평균 이상으로 잘 하려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기준이 높아서 어느 정도로는 만족이 안 되고, 늘 부족한 듯 공허해진다. 가만히 있는 것이 불편해서 무엇이든 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갈증이 계속 나서 콜라를 마시는 격이다.

부끄럽게도 올해 들어 처음으로 경제를 공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쉬지 않고 예측하지만 그들의 적중률은 높지 않았다. 이번 흐름을 맞춘 사람이 다음에는 틀리고 이번에 틀렸던 사람이 다음에 맞기도 했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것처럼 한국 최고,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도 예측은 틀리는 경우가 많았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어쩌면 의미 없는 일이 아닐까. 미래를 볼 수 없는 인간이 무리하게 미래를 보려다가 생기는 부작용이 ‘걱정’ 아닐까

매일 아침 보려고 써둔 문장이 있다. ‘예측하지 마라. 그저 대처할 뿐이다.’ 는 글귀다. 과거의 내가 미래를 걱정하고 대비하는데 필요이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음을 깨닫고 만든 문장이다. 걱정을 통해 작은 이득이 있었다 해도 그보다 훨씬 더 큰 손해가 있었다는 내 마음의 결론을 이 문장에 담았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도 장담 할 수 없는 미래라면 대비하고 걱정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없다. 적당한 걱정이라는 것은 없다. 걱정은 한번 습관이 되면 끝이 없는 소모로 이어진다. 미래는 내 영역이 아니라고 제쳐두는 것이 마음 편하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처럼 과한 걱정에 사로잡히면 원래의 마음을 망각하고 흐름을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예측은 큰 의미가 없다. 그저 대처해야 할 상황이 왔을 때 잘 대처하겠다는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대응했던 일들이 성공했던 경우, 초심자가 오히려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묵혀둔 생각이 없어서다.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예측하다가 오히려 독이 되는 일이 많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순간적인 판단으로 결정한 일이 더 현명하고 정확한 판단 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다짐하고 있다. ‘예측하지 않겠다고, 미리 걱정하지 않겠다고, 오늘 만나는 지금의 상황에 집중하겠다고.’ 이렇게 매일 다짐하고 있다는 건 걱정의 버릇을 아직 다 버리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걱정 대신, 과거에 잡지 못했던 기회가 또 내 옆을 지나가고 있진 않은지, 미래에 지금을 돌이켜보면 가장 그리운 순간이 지나가고 있진 않은지, 미래를 바꿀만한 엄청난 경험이 내 옆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자주 둘러본다. 알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며 소모했던 에너지를 오롯이 현재에 써보려고 노력중이다. 과거가 아무리 그리운들 현재로 잡아올 수 없고, 미래를 아무리 대비한 들 완벽히 대비할 수 없다. 철두철미한 준비로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지금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살다보면 미래도 그럭저럭 괜찮게 살고 있지 않을까?

31주년을 맞은 민족의학신문 특집호에 이 글을 실을 수 있다는 것, 먼 훗날 가장 귀여운 시절이었을 9살 6살 두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먹고 살 수 있는 월급을 받는다는 것, 몇 년 전의 나 보다 건강한 지금이라는 것, 아침마다 바닷바람을 느끼며 긴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 글을 쓰는 지금 진료실 바깥의 비오는 소리가 참 좋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 오늘이다. 쓸데없는 걱정은 작은 메모로 뱉어버리고, 미래는 예측하지 말고, 순간순간 대처하며 살고자 한다. 이렇게 아낀 에너지를 지금 깨어있기 위해(aware) 쓰다보면 쨍~하고♬♪ 볕들 날이 오겠지.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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