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수지비- 더불어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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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수지비- 더불어 사는 삶
  • 승인 2020.04.17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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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수도를 공급해주는 곳이 있고 음식이나 식재료를 배달해주는 곳이 있으며 전기나 가스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 일을 하고 있으면서 서로 유무형의 재화를 나누는 것, 그것이 인간 사회다.

오늘 이야기할 수지비괘의 比 는 사람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양을 나타낸 상형문자다. 비교하다, 견주다라는 뜻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나란히 하다, 친하다, 이웃하다 등의 뜻도 가지고 있는 글자다.

비괘의 괘사를 보자.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 方來 後 夫 凶

괘사가 알쏭달쏭하니 상전을 보자.

彖曰 比吉也 比輔也 下順從也 原筮元永貞無咎 以剛中也 不寧方來 上下應也 後夫凶 其道窮也

돕는다는 행위에는 최소 두 사람이 필요하다. 돕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돕는 것이 보통의 이치인데, 만약 도움을 제안하는 사람이 잘못된 도움을 주려고 한다거나, 필요 없는 도움을 주려고 한다면 도움 받는 사람은 이를 거절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비괘의 상황에서는 이 도움의 상황이 서로 맞아떨어진다. 마침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딱 만난 것이다. 그러니 길하다. 그런데 문제를 인식하고 도움을 주려고 마음을 먹은 다음에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않고 자꾸 망설이게 된다면 때를 놓치게 된다. 그러니 처음 점을 쳐보아서 길하다고 하면 허물이 없는데, 두 번 세 번 점을 치며 할까 말까 고민하면 상황이 바뀌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 또한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는 더 이상 그 도움이 필요없어진다. 넘어진 사람에게 손을 내민 것은 적절한 도움이지만, 멀쩡히 잘 걸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내민 손은 많은 경우 오해를 살 뿐이다. 그러니 힘이 센 사람의 도움이라 하더라도 그 때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대장부라도 뒤에 오면 흉하다고 한 것이다.

初六 有孚比之 无咎 有孚 盈缶 終來有它吉

수지비괘는 음효 다섯개와 양효 한개로 이루어진 괘이다. 짝이 되는 효사끼리 서로 음양응이 되어야 길하다고 보는데, 수지비괘에서는 음양응을 이루는 것은 육이와 구오 뿐이다. 초육은 기댈 곳이라고는 자기와 같은 음효인 육사 뿐이다. 그러나 초육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다. 다섯개나 되는 음효 가운데 가장 힘이 없는 초육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육이에게 기대어 도움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도움이 올거라고 믿고 기다리면,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길한 소식이 온다. 그러니 자포자기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기다리라는 것이다.

六二 比之自內 貞 吉

돕는 것을 안으로부터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상전에는 比之自內 不自失也라고 한다.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어떻게 돕는 것이 될까.

육이는 구오의 짝이며 내괘의 중심이다. 앞서 말한 초육이 비빌 유일한 언덕이며, 이 다음에 말할 육삼과 같은 사람들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올바른 것을 추구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남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서다가 자신의 건강을 해치게 되거나 목숨이 위험하게 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게 된다. 코비드 19를 가장 가까이에서 치료하는 의료진의 건강과 보호가 매우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나 스스로를 돕는 것이, 곧 남을 돕는 행위의 첫걸음인 경우에는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六三 比之匪人

세상에는 정말 순수한 호의로 남을 돕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사기를 치기 위한 밑작업으로 아주 잘해주다가, 상대방이 자기를 믿게 되면 전 재산을 털어 들고 달아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육삼의 상황은 그렇게 도움이 필요할 때 하필이면 손을 내민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을 나타낸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코제트의 보호자 테르나디에 부부와 같은 사람이다. 작은 도움으로 큰 생색을 내며 두고두고 그 신세를 갚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니 조심해야 하는것이다.

六四 外比之 貞 吉

상전에는 外比於賢 以從上也라고 했다. 밖에서 어진 이를 도움으로써 위를 좇는다는 것이다. 육사의 위에는 구오가 있고 육사는 구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누군가를 돕는다. 그 누군가는 조금 전에 보았던 초육일 것이다. 아직은 미약하고 힘이 없으나 초육은 어질고 가능성이 있으며 신의가 있는 사람이다. 육사의 적절한 도움으로 어려움을 넘긴다면 초육은 구오의 지지자가 되어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구오를 위해서 육사는 초육을 돕고, 초육은 생각지도 못했던 외부로부터의 도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九五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

사냥은 짐승을 잡으려고 하는 일이다. 확실하게 잡으려면 사방을 다 막고 짐승몰이를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저렇게 왕이 하는 사냥은 삼구법을 사용하곤 했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도 인덕을 베푼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왕의 사냥은 의식이다. 짐승을 잡아 먹고자 하는 생계가 달린 행위가 아니라, 신하들을 모이게 하고 제후들에게 자기 세력을 과시하며 저렇게 잡은 짐승을 요리하여 백성들에게 나눠먹이는 등의 커다란 행사였던 것이다. 또한 점을 치는 수단이기도 했다. 잡힌 짐승의 모양이나 종류를 보고 앞으로의 국운을 점치기도 했던 것이다. 요새에도 의전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그 지역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행사에 걸맞게 현지 상황을 조율하는 것이 필요한데, 왕이 사냥을 나온다고 하면 과연 모두가 손을 놓고 있었을까? 사냥으로 잡힌 짐승이 국운을 나타내는 거라면, 좋은 뜻의 짐승이 잡히도록 미리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여기서의 사냥은 그냥 새도 날아가게 놔두고, 마을 사람들마저 아무도 이 왕의 사냥 행사에 경계를 하지 않는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은 그만큼의 권력과 위세가 있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잡을 수 있는 새도 그냥 놓쳐버린다.

마을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뜻이다. 왕의 권력이 자신들을 해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해 있다는 것을. 낚시하러 왔는데 물고기가 안 잡히면 기분 나쁘다. 사냥하러 왔는데 참새 한 마리 잡지 못하고 가면 수치스럽다. 왕이라면 짜증나는 김에 동네 아무데서나 돼지며 소를 끌고 와 쏘고 그걸로 잔치를 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구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기 뜻을 따르는 사람들은 품고, 그에 반하여 달아나는 사람들에게도 뒤에서 활을 쏘지 않는다. 그러니 길하다.

上六 比之无首 凶

상전에는 比之无首 无所終也라고 했다. 상육은 육삼의 짝이다. 나쁜 사람에게는 기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육삼의 가르침이라면, 상육은 아예 처음부터 도울 생각도 없는 상대에게는 기대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시작이 없는데 끝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초육처럼 힘이 없어서도 아니고, 육삼처럼 사람이 나빠서도 아닌, 그저 자기 일이 아니라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자기 보신에만 급급한 사람이 상육이다. 그러나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에 자기 혼자만 영원히 제외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오만이다. 그 언젠가 같은 문제가 닥쳐와 시달리게 될 때에, 상육같은 사람이 도움을 청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돕지 않을 것이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는 것처럼, 도운 적이 없다면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지금은 누구나 어려움에 허덕이는 시대다. 영원히 아무렇지도 않게 잔잔히 흘러갈 것 같았던 일상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스러져 언제 회복될지 알 수 없다. 서로에게 거리를 두는 것만이 최선의 방도인 요즘과 같은 시대에 사람들은 더욱 다른 사람들의 온기를 그리워한다. 서로의 마음에 기대어 이 시절을 보내고 나면 또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지금을 회상할 날이 올까. 창 밖에는 꽃이 피지만 여전히 봄은 아득히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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