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10> - 『靈素鍼灸經』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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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10> - 『靈素鍼灸經』③
  • 승인 2020.04.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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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하늘길에 비유한 開川導水 手法秘奧

鳳岡 田光玉(1871~1945)의 원작 서문 다음으로 동양의약대학 교수라는 직함을 표기한 金長憲(1897~1975)의 서문이 달려 있다. 여기에는 작성시기가 檀紀 4289년으로 돼있어 1956년 간행시 새로 들어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내용을 다 소개할 길이 없거니와 우선 우리가 궁금해 하는 실제 저자가 누구냐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실마리를 찾다보니 이런 말이 눈에 띤다.

◇ 『영소침구경』
◇ 『영소침구경』

“故 鳳岡 田光玉선생의 문인이며 나의 오래 전부터의 同志인 東隱 權君이 나를 찾아와서 선생의 原著 靈素鍼灸의 釋義를 뵈이며, 그 서를 청하매 나는 실로 感激한 바 있었다. …” 또 한편으로 전광옥에 대해 “선생은 한의학계의 巨星으로 京鄕에 그의 명성이 높았고 더욱이 침구에 있어서는 당대 제일인자로 造詣가 깊었으니, 世人이 活佛로 敬仰하였든 것이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또한 회고담 가운데 “선생은 능히 안즐뱅이를 걷게 하였고 꼽새를 허리 펴게 하였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며 당시 日人의 저명한 의사들을 경악케 했음은 우리들이 目睹한 바이며 유명한 이야기걸이였든 것이다.”라고 하여 일제시기 전광옥이 보여준 놀라운 침술 효험에서 민족자긍심마저 느끼게 하는 실화였음을 전해준다.

나아가 “권군이 선생을 師事한지 오래됐고 … 유고의 진본을 얻고 先生口授의 秘와 實習의 傳을 얻어 그를 상세하게 釋義하였음은 물론이요 특히 手法秘奧의 眞을 빠짐없이 실어 … 거기다 현대적인 도해와 해부학적인 면을 첨가하고 쉬운 현대어로 써서 현대인의 難解深秘의 장벽을 깨트려 …”라며 추천의 뜻을 밝혔다.

이로써 이 책의 원작자 전광옥과 제자 권모와의 사승관계 및 발행 과정을 대략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위의 서문 다음에는 또 序說이라고 제목을 붙인 글이 하나 더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계미년(1943)에 선생문하에 와서 手法의 學理를 구전심수하기 시작한지 겨우 3년 만에 선생은 遺蹟의 一篇을 남기시고 乙酉秋(1945)에 불행이 仙化하시었다. … 先師의 遺敎인 傳世使命을 履行키 위하여 擧筆한데 불과한 것이다.”라고 간행의 변을 밝혔다.

글의 말미에는 “단기4287년1월10일 舞童山人 東隱 權寧俊 識.”라고 썼으니 곧 1954년이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전광옥에게 침구법을 배운 권영준이 광복 이후 선생의 유고에 현대적인 풀이와 그림을 덧붙이고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여 퇴고를 거듭한 끝에 195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책을 발행하게 되었던 셈이다. 아울러 표지에 밝혀져 있는 東隱이란 호명은 이 책을 해설하고 도해를 덧붙여 펴낸 발행자 권영준을 지칭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본문의 초입에는 본편의 서막을 여는 ‘침과 경락과의 상대적 의의’라는 제목의 침구의론이 수재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시종일관 침 치료 작용을 西醫의 주사와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침은 무슨 작용으로 吾人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가? 서의에 注射와 대립적으로 말하고 싶다.”라며 말문을 연다.

여기서 서의의 주사는 주로 혈관과 근육을 응용하는데, 혈관은 유형체인 혈액순환의 도로이므로 마치 陸路와 같고 한의의 침은 단순이 경로를 응용하므로, 무형의 氣行道 즉, 경락을 이용하는 까닭에 비행기가 날아가는 空路(하늘길)와 같다고 비유하여 풀이한다. 또한 침구경락은 혈관도 아니요, 신경도 아닌, 무형의 도로이니, 전기적 자극에 의해서만 작용이 발현되는 까닭에 가시적으로 입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락의 응체로 장부에 병이 생긴 경우, 침의 보사수법으로 병증을 雲消시킴이 開川導水의 이치와 같으며, 서의주사보다 優勝한 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였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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