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유서’에서 발견한 가문의 독립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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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유서’에서 발견한 가문의 독립운동사
  • 승인 2020.03.2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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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식

신민식

mjmedi@mjmedi.com


신민식 병원장의 [한의사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①
신민식 잠실자생한방병원장
신민식
잠실자생한방병원장

지난 몇 년 동안 잊혀진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발굴하는 일에 몰두했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역사적 자료를 찾는 일은 캄캄한 터널을 걷는 것과 같았다. 멀리 보이는 작은 불빛은 실낱같은 희망이었고, 희망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원동력이 돼 주었다.

2017년 가을이었다. 평소처럼 역사 공부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중 대화 주제가 아버지의 유서에 담긴 작은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독립운동 활동으로 흘러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족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이해는 매우 단편적이었다. 나의 세대까지 7대째 한의사 가업을 이어왔으며, 일제강점기 시절 집안의 어르신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는 정도였다.

이 모임에서 만난 정상규 작가는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력이 특이했는데,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다 영주권 취득을 포기하고 공군장교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다. 군 복무 당시 독립운동가 후손을 만난 것을 계기로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알리는데 힘쓰기 시작한 청년이었다. 당시에도 정 작가는 이미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라는 저서를 발간하고,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진1. ‘독립운동가’ 애플리케이션 화면
◇사진1. ‘독립운동가’ 애플리케이션 화면

 

정 작가는 우리 집안의 이야기를 듣고 독립운동사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또 국가보훈처에 서훈 등록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안의 독립운동 활동을 대외에 알리는 일을 꺼려했다. 친형인 자생의료재단 신준식 명예이사장은 자생한방병원을 설립하고 국내 최대 한방병원으로 성장시켰다. 나 또한 잠실자생한방병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의 독립운동 활동을 알리는 것이 자칫 병원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오해할까봐 그동안 가슴 속에 담아왔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요즘, 잊혀진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는 일은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알리고 계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겐 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의 독립운동 활동을 찾아나서는 것이 바로 그 출발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기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난 역사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일에 뛰어들었다. 나와 형님은 이 일을 단순히 집안의 독립운동 활동을 발굴하는 게 아닌,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작성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 긴 여정의 첫 단추는 형님이 보관하고 있던 아버지의 유서인 ‘월남유서’에서 꿸 수 있었다. 월남유서는 선친이 이북에서 내려오면서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쓴 자신과 가족의 일대기다. 초본은 1959년에 작성됐고, 재간본은 1969년에 쓰여졌다. 그동안 보기 편했던 재간본을 주로 봤는데, 알고 보니 초간본이 더 정확하고 독립운동의 결정적 단서가 많이 담겨 있었다.

◇사진2. 신민식 병원장(왼쪽)과 정상규 작가가 신현표 선생의 묘비에 적힌 글을 읽고 있다
◇사진2. 신민식 병원장(왼쪽)과 정상규 작가가 신현표 선생의 묘비에 적힌 글을 읽고 있다

나와 신준식 명예이사장, 정 작가는 천천히 월남유서를 읽으면서 유서 속 내용을 입증해 나가기로 결심했다. 우리들은 본격적인 발굴 활동에 앞서 눈 쌓인 산을 올라 아버지의 묘소를 찾았다. 비석에 새겨진 아버지의 한시(漢詩)가 그날따라 남다르게 다가왔다. “역사가 내가 한 일을 알아주리라”로 해석되는 시의 마지막 문장은 앞으로 독립운동 가문의 후손으로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줬다.

◇사진3. 신민식 병원장(왼쪽)과 정상규 작가(가운데)가 신현표 선생의 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3. 신민식 병원장(왼쪽)과 정상규 작가(가운데)가 신현표 선생의 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한참 동안 묵념을 하면서 아버지께 “늦게라도 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역사를 밝혀 그 정신을 후대에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2017년 겨울, 아버지의 유서에 의지해 수십년 동안 묻혀져 있던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고자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을 누빈 과정을 독자들께 5회에 걸쳐 전한다. 오랜 노력 끝에 국민들에게 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과정을 전할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한의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나의 작은할아버지 신홍균 선생과 아버지 신현표 선생의 이야기다. <계속>

 

■ 신민식 잠실자생한방병원장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 석/박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現 잠실 자생한방병원 병원장

現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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