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共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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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共感
  • 승인 2020.03.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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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11

(1) Alcoholic

아버지는 2007년에 추석을 이틀 앞두고 돌아가셨다. 그렇게 내 기억에 남은 아버지의 생애는 알콜중독이었다. 그래서 라디오에서 Starsailor의 「Alcoholic」을 처음 들었을 때, “your daddy was an alcoholic”이라고 울려 온 리드 보컬 James Walsh의 목소리가 더욱 구슬프게 가슴을 찔렀다.

제11회 버드락 콘서트(Budrock concert)1)를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Starsailor는 2007년 11월 16일에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하였다. 나는 퇴근길에 차 안에서 이 방송을 들었다. James Walsh는 이 날 「Good souls」, 「Four to the floor」, 「Bring my love」2) 이렇게 세 곡을 불렀다. 이 중에 「Bring my love」 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예고편에 삽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찬욱 감독이 이 그룹을 특별히 좋아한다3)는 것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1990년 3월 19일에 첫 방송을 했고, 2020년이 방송 30년이 되는 해이다. 30주년 기획으로 'Live at the BBC'를, 2020년 2월 17일부터 21일까지 5일간 영국 BBC 라디오의 마이다 베일 스튜디오(Maida Vale Studio)4)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하였다. 2월 18일의 초대 손님은 제임스 월시였다. 그는 이 날도 「Bring my love」를 라이브로 들려주었다.5) 이 날은 내가 30년 전에 결혼한 날이기도 했다.

 

(2) 共感

나와 같은 체질을 만나게 되면 체질 탐색이 상대적으로 쉽다. 체질이 같으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들을 잘 추려내면 되기 때문이다. 영화계의 박찬욱 감독은 목음체질(Cho.)이라고 판단한다. 체질과 관련은 없지만 그는 나와 동갑이고 같은 해에 결혼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외에도 동시대를 함께 살아오면서 갖게 된 공통점도 많은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은 그의 서재에서 첫째로 꼽고 싶은 책은 『관촌수필』이라고 했다. “대학시절에 보면서 감탄도 하고 울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의 손으로 쓰여진 문장 중에 으뜸으로 꼽혀야 되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관촌수필』은 작가 이문구(李文求)6) 선생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1972년에 「일락서산」을 시작으로 1977년의 「월곡후야」까지 여덟 편의 연작소설7)을 묶은 소설집이다.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가슴 시리고 아픈 작가의 가족사가 집필 배경이다.

이문구 선생의 아버지는 남로당 활동을 하다가 살해당했고 형들은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하거나 징용에 끌려갔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항상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문학가가 되는 것이 죽지 않는 것’이라고 깨닫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몸을 보전할 목적으로 우익 문학계의 기둥인 김동리 선생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1970년대 초반에 문학인에 대한 사상검열이 휩쓸던 시절에, 자신의 집안 내력을 감추기보다는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하고, 자기의 고향과 가족사를 바탕으로 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관촌수필 연작이다.

나는 『관촌수필』에 이어진 ‘우리동네’ 연작8)도 좋아한다. 이것은 ‘농촌을 침식하고 있는 도시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풍자’적 성격을 지닌 연작소설이다. 이문구 선생은 한국어로 글을 쓴 작가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이다. 이문구 선생의 작품에 대하여 박찬욱 감독과 내가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또 박찬욱 감독이 동서추리문고를 열심히 사서 모았다는 대목에서는 혼자서 쓱 웃었다. 나도 추리소설을 좋아하기도 했고 문고판이라 책값이 싸니 크게 부담이 없어 많이 모았기 때문이다. 

 

(3) 체질 내의 다양성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박찬욱 감독을 ‘자유로운 예술가와 성실한 직업인’이라고 정의했다. 자유와 성실은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도 같은데, (체질을 배경에 두고서 판단한다면) 이것은 아주 놀라운 통찰이다. 여기에서 자유는 자유로운 감수성을 성실은 직업인으로서 성의(誠意)라고 나는 풀었다. 즉 생각(자유)과 삶(성실)의 태도라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아버지9)는 자상하시고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건조한 성격”이라고 간단하게 말한 적이 있다. 유투브(YouTube)에서 부친의 영상10)을 보았다. 예상한 대로 박찬욱 감독은 아버지의 체질을 받았다. 어머니는 아마도 금체질이 아닐까 짐작한다.

이런 나의 추리가 맞다면 그에게 있지만 나는 잘 공감할 수 없는 성향들은 그의 모친으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다. 그는, 긴장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고, 웬만해서는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성격이며, 어려서부터 영화를 볼 때 폭력적인 장면들을 좋아했고, 가르치는 일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던 것이다.

같은 체질이라고 모두 똑같지는 않다. 그걸 ‘동일한 체질 내의 다양성’이라고 하는데 이런 다양성은 ‘부모의 체질조건 차이’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4) 박찬욱11)

사람은 그냥 던져지듯 태어난다.12) 어차피 인간은 다 고아(孤兒)이고,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아주 짧고 가끔씩만 있다고 생각하는, 박찬욱 감독은 무엇인가를 미리 정하거나 계획하거나 결심해서 영화를 만들어오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이리저리 떠밀려서 왔다고 했다.

쓸데없는 공상을 잘 하고, 어릴 때는 아버지를 따라 전시회를 많이 다녔고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창작하는 미술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미술실기에는 재능이 없었다. 친가에서 내려온 것 같은 미술적인 재능은 동생(박찬경)이 더 받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의대에 가라는 모친의 권고로 고2 때는 이과 공부를 했다. 3학년 때 문과로 바꾸고 미술사학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철학과에 지원했다.

대학생이 되어 선배들과 영화동아리를 하던 중에, 영화를 좋아하던 신부(神父) 교수님이 소장한 비디오로 열린 상영회에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을 보다가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영화를 본 날 라면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우연히도 같은 영화를 본 이대생을 소개받게 되었는데, 그 여학생이 아내(김은희)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는 무난하게 살 줄 알았는데, 진폭이 큰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제작환경이 열악하기는 했지만 1992년에 나온 그의 데뷔작 「달은,,,해가 꾸는 꿈」은, 단 한 건의 리뷰도 달리지 않고 참혹하게 실패했다. 그리고 1997년에 나온 「3인조」도 망했다. 흥행작을 내놓는 감독들에 대한 선망과 질투가 쌓였다. 2000년에 「공동경비구역 JSA」가 히트할 때까지 그는 영화평론을 쓰거나 TV에 나가 신작영화를 소개하는 일로 버텼다.

그는, 상처를 받으니까 댓글은 아예 안 본다. 한편으로 남의 험담하기를 좋아한다.13) 그런데 ‘나라면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만 남의 험담을 한다’는 원칙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영화 현장에서 자상하고 예의가 바른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 이유는 그렇게밖에 할 줄 몰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영화작업을 함께 하면서 오래 친해진 사람들에게, 정말 꼭 필요할 때 악담을 못 한다고 한다. 감독이라면 영화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질문을 받아도 적당히 말할 수 있는 기술과 배짱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은 성의껏 대답해야 한다는 모범생스러운 강박이 있어서 인터뷰가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일이고 그래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14)

그는 실제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남이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자신을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다. 또한 모호15)성은 좋은 예술의 조건이다. 그것을 영화로 표현한다. 관객이 영화라는 열차에 탔을 때 그 종착역이 어딘지 몰라야 좋다. 그에게는 ‘배운 변태’라는 별명이 있다. 「올드보이」의 원작만화에는 근친상간적인 코드가 없다고 한다. 해외 매체 리뷰에 crazy라는 표현이 나오는 걸 좋아한다면서, 영화가 여러 재미를 줄 수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건 충격과 자극이라는 것이다.

2009년에 나온 영화 「박쥐」가 자신의 역량이 가장 많이 투여되었던 작품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송강호가 맡았던 ‘현상현’이 자신이 만들었던 작품 속 인물 중에서 가장 박찬욱 자신과 닮은 캐릭터라고 했다.

 

※ 참고 문헌 & 자료

1) 이문구 『冠村隨筆』 문학과지성사 1977.

2) 히치콕이 내 인생 바꿨다 『한겨레』 2004. 5. 27.

3) 박찬욱 감독의 서재 2012. 7. 7. https://outofshell.tistory.com/37

4) 이동진 『이동진의 부메랑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 예담 2014. 1. 10.

5) His Story 『문화일보』 2017. 7. 12.

6) 박돈서 명예교수님, 아주대학교 구술사료 2019. 10. 17.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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