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양준일의 완벽한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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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양준일의 완벽한 30년
  • 승인 2020.01.10 07:08
  • 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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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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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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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를 얘기했는데 ‘어!’로 듣는 사람이 많다. 사실을 왜곡하는 내면의 목소리, 세상은 종종 이 소리 때문에 불편해진다. 한 개인을 좌절시키는 것도 타인이나 환경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다.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면 ‘나는 재능이 없어!’같은 목소리가 커지고, 오랜 시간 도전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는 운이 없어!’같은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성공의 기억은 쉽게 힘을 잃고, 실패의 기억은 날이 갈수록 강력해져서 우리를 좌절시킨다. 그런데 30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은 완벽했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심지어 그는 연예인이었다.

슈가맨 가수 양준일씨다. 1991년 당시 그의 노래와 공연은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매우 이질적이었다. 이질감은 곧 거부감으로 발전해 방송 기회도 점차 사라졌다. 잠깐의 인기를 뒤로하고 현재는 미국의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겨우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30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만 해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0대의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얘기했다.“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걸 알아. 하지만 걱정 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

가슴이 먹먹했다. 그의 말에는 진심어린 무게감이 담겨 있었다. 젊은 양준일은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인생 앞에서 수도 없이 좌절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를 어떻게든 이해하려 했을 것이다. ‘왜 하필 나만 이렇게 안 풀리지?’‘내가 노력이 부족한가? 아니면 재능이 부족한 걸까?’ ‘잘 되는 사람들과 나는 뭐가 다르지?’ 와 같은 질문들이 내면의 공간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재능이 없어, 어차피 나는 앞으로 뭘 해도 안 될 거야, 이번 생은 이미 늦었어!’처럼 내면의 어두운 목소리에 마음을 내어줄 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손석희씨의 뉴스 룸 인터뷰에서 그는 30년의 매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의 실패를 바탕으로 미래를 가늠하는 그 <쓰레기> 같은 생각들을 버려내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는 매일 찾아오는 절망의 구름을 밀어내고 희망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왔다.

누구나 머리로는 좌절을 극복하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지만, 힘든 현실 앞에서 긍정의 공간을 남겨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힘든 매일이 쌓여 30년의 시간이 지났고, 그 시간까지 <완벽했다>고 표현하는 50대의 아티스트는 아름다웠다.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의 모든 시간은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수많은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남의 성공은 커 보이고, 나의 실패는 훨씬 더 커 보인다. 이 시기를 버티게 해주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지극히 외롭지만 오직 스스로에 대한 믿음뿐이다. 양준일 씨의 2019년은 ‘나의 삶은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30년 믿음의 결과다.

양준일 씨는 연예계에서 성공하지 못한 30년을 원망하며 보내지 않았다. 재능과 운을 탓하지도 않았다. 그저 매일매일 완벽한 미래를 꿈꿨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계기로 2019년 갑작스러운 성공을 맞이했다. 유튜브를 통해 30년 전의 연예인이 다시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성공은 예상치 못한 시기에 뜻밖의 방법으로 그를 찾아왔다.

대부분의 큰 성공이 계획이나 예측과 상관없이 갑자기 찾아오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굳이 과거를 통해 미래의 한계를 만든다. 양준일씨는 이런 사고의 습관을 <내가 만든 나에 대한 편견: 쓰레기>라는 표현을 썼다. 미래의 한계를 상상하지 말고 근거 없는 희망의 공간을 남겨둘 수 있다면 평범한 우리에게도 양준일의 2019년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금의 고난은 완벽한 미래를 위한 준비과정이야.’ ‘어차피 나는 잘 되어 있을 거야.’ ‘미래에 지금을 돌이켜보면 스스로 대견하다 느낄 거야.’ ‘힘든 지금 익히고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지금 나만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이 나중에 꼭 필요한 시간이 올 거야.’‘지금의 모든 상황은 나를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과정일지도 몰라.’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야.’ 양준일 씨는 30년간 이런 믿음으로 버텼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2020년의 우리를 위해 아티스트 양준일 씨의 한 마디를 다시 읽어본다.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참 많을 걸 알아. 하지만 걱정 하지 마. 미래에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을 테니.” 그의 30년은 완벽했다.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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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하늬 2020-01-23 11:06:49
좋은 기사입니다.

박영희 2020-01-23 11:04:03
양준일님에 대한 기사 감사드려요

권난희 2020-01-23 10:05:02
정직하게 보셨네요~~~ 저희도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좋은글 올려주셔서요~~

박은영 2020-01-23 09:58:04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lcr 2020-01-23 09:57:55
너무나 정확하고 희망적인 글입니다. 또한번 배우고 명심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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