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고정훈·성은미 부부의 濠洲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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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고정훈·성은미 부부의 濠洲일기(1)
  • 승인 2004.03.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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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야만 길은 개척할 수 있다"

다음 글은 지난해 호주로 떠난 고정훈 (34)·성은미(33) 부부의 해외 생활 체험기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한국을 떠나야했던 배경과 현지 생활, 교육 문제, 한의계 시장, 비전과 영주권 문제등 체험을 통한 살아있는 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에게 감사드리며 많은 애독을 바랍니다. <편집자 주>

글을 시작하며

호주에서 살면서 1년 훨씬 넘어서 겨우 ADSL을 깔았다. 덕분에 요즘 AKOM의 꼬마마당에 마음대로 들어 갈 수 있고 인터넷도 잘 된다. 며칠 들락거리며 글 쪼가리를 올렸더니 문득 메일함에 민족의학신문사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와 있다. 아직 가시화 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시기상조인 면이 많은 내 생활이라 망설여졌지만 굳이 수필형식으로 생활상을 써 달라고 하니 부담 없이 글을 쓰기로 했다.

2001년 6월 인천 공항

작년 6월의 어느날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에 나와 아내 그리고 만4살의 아들 락영은 인천 공항에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 당시를 기억하면 온통 뿌우연 풍경으로 추억되는걸 보니, 그 때 마음이 무척 편치 않았나 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많은 걱정이 앞섰던, 거의 무계획에 가까운 참으로 즉흥적, 모험적인 떠남이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뜻대로만 살아 지고 계획대로만 되던가. 우리 가족의 이러한 무모함은 이제 와서 생각하니 실속 있는 무모함이었던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먼 이곳의 생활이지만…. 이제 겨우 1년 조금 지나 지난 일을 생각해 보건대, 우리는 지난 1년간의 이곳 생활에서 참으로 많은 경험을 했고, 이런 경험을 밑천 삼아 앞으로의 생활도 될 수 있는 대로 낙관적으로 잘 해보고자 한다. 안되면 말고, 되는데 까지는 즐겁고 낙관적으로…. 참으로 남는 장사인 것 같다.

우리는 왜 떠났는가

우리 가족이 한국을 떠나 이곳 호주로 온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정말이지 간단하다. 나도 아내도 현실에 너무 지쳐 있었다. 우리는 그 즈음 이런저런 구질구질한 이유로 항상 현실을 얼마간이라도 떠나고 싶었고, 언제나 음모를 꾸미고는 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었다. ‘1천만원을 가지고 필리핀, 혹은 태국에 가서 아껴 살며 6개월 지내다 오기’하는 식의 계획을 제법 구체적으로 세우고 대화를 하곤 했었다. 언제나 아내가 떠남에는 나보다 적극적이었고 나는 양 다리를 적당히 걸치고 있었던 편이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일종의 갈등이었다. 아내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과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외국행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남편으로서 그다지 반갑지 않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작년 봄 나는 아내에게 마지막 통보(?)를 받았다. 아이를 데리고 나와 상관 없이 6월 중에 영어권 국가로 어학연수를 8개월 정도 떠나겠다는 통보였다.

더 이상 나의 내년 계획론은 먹히지 않았고 나도 선택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한가지 제안을 더 했었다. 우리가 계획한 시간인 8개월 가량을 휴가나 탈출이 아닌 이민의 전초 단계라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한번 살아 보면서 진지하게 이민을 고민해 보자고 말이다. 아내는 물론 찬성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민의 전초단계로 약 8개월간 살아 볼 곳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참으로 멋진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유럽여행도 좋았을 것이고 인도나 히말라야 혹은 중국여행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민을 전제로 영어권 국가에서의 생활적 여행(?)을 시도했다.

떠날 곳이 없었다

어디에 가서 살아볼까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이 부분에는 언제나 적극적이었던 아내가 뉴질랜드에서 캐나다로, 캐나다에서 다시 하와이로, 하와이에서 결국 이곳 호주로 계획을 잡았다. 이 과정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결국 우리의 8개월 시간은 이민의 전초 단계로서의 시도이니, 이민이 가능하거나 최소한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곳을 찾았어야 했다. 가장 만만한 곳이 뉴질랜드였지만 뉴질랜드도 당시의 우리로서는 이민의 방법이 없었다. 다음은 캐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인터넷 사이트를 다 뒤진 결과 당시 우리 형편으로 이민이 가능한 나라라고는 피지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정도가 있었다. 워낙 관심이 없었던 나라여서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하와이 쪽의 교환 교수(말이 좋아 교환 교수이지 급여는 거의 없고 우리 돈 넣어가며 살아야 하는 식의 사설 침구학원 정도) 시도가 있다가 그것도 신통치 않고 우리는 결국 만세를 불렀다. 이 넓은 지구에, 한국에서 소위 좋은 직업군에 속한다는 한의사로서 대학원 석·박사까지 마쳤어도 한화로 5∼10억원을 넣지 않으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없었다. 참으로 난감하고 공허했다. 불과 두 달 전에 미국에 가서 NCCAOM 시험을 볼 때의 막연한 기대감이 현실에서 냉정히 무너지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외국 생활에 실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어떠한 정보나 인맥도 없었고 아무런 능력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호주로 정하다

한달 정도를 뉴질랜드, 캐나다, 하와이 등을 대상으로 이민 혹은 현지 취업 가능 여부를 알아보다가 우리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호주의 브리즈번 지역이 기후가 아주 좋다는 정보를 얻었다. 기후로 치자면 하와이도 좋겠고 LA 쪽이나 플로리다 쪽도 아주 좋겠지만…. 미국과 호주의 물가는 천지 차이이다. 캐나다, 뉴질랜드에는 호주 보다 좋은 기후대가 없다. 단지 이 이유만으로 우리는 호주행을 결정했다. 막연한 이민이나 현지 취업에 대한 기대가 철저히 무너진 이후 우리는 아주 현실적으로 그렇다면 기후 좋고 물가 싼 곳을 찾았다. 가서 최소한 좋은 날씨에 실컷 놀다가라도 오겠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이다. 내심 가서 부딪히면서 길을 찾아 보리라는 생각도 물론 있었다. 호주 브리즈번 지역은 여행광인 나도 언제든 가보고 싶었던 곳이므로 나는 선선히 아내의 결정을 따랐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 빨리 마음 바뀌기 전에 비행기 표를 끊었다.

세 개의 영주권 신청하다

우리는 현재 호주에서 아주 만족하며 살고 있다.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결국 이곳에서 아직까지 직장이 없는 관계로 경제적으로 슬슬 한계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독자들게 먼저 보고하고 싶은 1년 3개월 동안의 우리의 성취(?)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호주 영주권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수립해 놓고 진행하는 중이다. 몇 가지 방법이 우리에게 맞는 것들이 있었고 현재 진행 중이다.
둘째. 캐나다의 영주권을 신청해 두었다.
셋째. 뉴질랜드의 영주권을 신청해 두었다.
물론 이상의 세가지 영주권이 동시에 진행이 되는 관계로 일이 잘 됐을 경우에는 몸이 두개가 아닌 관계로 결국 선택을 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복한 상황이 오기를 우리 가족은 간절히 바란다. 굳이 동시에 쓰지도 못할 세개의 영주권을 한꺼번에 신청해 놓은 이유는 나름대로의 몇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먼저 비즈니스 적인 마인드이다. 한의사라는 직업인으로서, 현재 내가 가는 길은 아무에게도 안내 받은 적 없는 새로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리 고백컨대 협회나 동업자에 대한 애협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새로운 시장을 먼저 개척해서 이 부분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시장을 가지고 남들이 가지 않았던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 보고 싶다. 이러한 각자 구성원의 도전이 성공적으로 되었을 때 우리의 시장은 넓어지고 풍요로워 진다.

한의사에 꿈을 나누고 싶어

둘째 이민이나 해외 생활을 꿈꾸는 많은 한의사들에게 꿈을 나누어 주고 싶다. 이 부분의 꿈이란 곧 정보이고, 정보란 곧 경험일 것이다. 1년 3개월 전에 피지나 남아공 이민만이 가능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내가, 지금에는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의 영주권을 같이 바라보고 있다. 이 부분은 결국 몸으로 뛰면서 부딪힌 현실과 진료실에서 마우스 클릭하며 인터넷 써핑을 하는 관념이 얼마나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좀 우스운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큰 돈 안드는 것이니 어찌 되나 무지하게 궁금해서 호기심에 한번 해 봤다는 점도 고백해야겠다. 나와 아주 친한 선배님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영주권에 들인 돈이 내가 알기로 억대가 넘었다. 만약 내게 캐나다 영주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2백만원 정도로 얻는 셈이 된다. 뉴질랜드도 마찬가지이다. 1억 얼마의 자금 증명을 하고, 송금을 하고 어쩌고 하는 사업비자(영주권도 아님)로 대다수가 출국하는 현실에서 나는 단돈 2백만원 정도에 신청을 했다. 안되면 그 중 접수비는 반환 받고 법무사 수수료만 날리면 그만인 것이다. 안되면 말고, 되면 큰 정보가 되리라는 생각에서 싸니까 일단 해 봤다는게 마지막 이유이다. <계속>

<필자 약력>
◇고정훈:대전대 한의대(87학번), 한의학 석사. 세명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강사, 강원도 한의사회 이사 역임. 강원도 원주에서 개원(93∼01).
◇성은미:대전대 한의대(88학번), 한의학 박사. 대전대 한의대 경혈학교실 강사 역임. 강원도 원주에서 개원(9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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