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라는 마지막 문장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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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라는 마지막 문장을 기억하며
  • 승인 2020.01.0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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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떨림과 울림

나는 집에서 ‘문과엄마’라고 불린다. 아들만 둘인데 상당히 논리적, 이성적인 아이들이다. 내가 호들갑스럽게 감동하는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둘 중 하나가 ‘역시 문과엄마야’라고 중얼거린다. 얼마 전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SF 소설을 읽었다. 인간 배아를 조작해서 원하는 유형의 아이를 탄생시키는 일이라든지, 장례를 지내는 대신 메모리를 저장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고 신나서 얘기를 했더니 아들이 조용히 <떨림과 울림>을 권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문과엄마에게 수학을 좋아하는 아들이 권해준 떨림과 울림. 전혀 다른 별에 살고 있는 나와 아들은 이 책을 읽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 책 참 아름답다’

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출간

프롤로그부터 아름답다. <우주는 떨림이다, 빛은 떨림이다. 인간은 울림이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이 프롤로그를 쓴 사람이 시인이 아니고 물리학자라니 놀라왔다. 떨림과 울림, 누군가 존재하고 그 존재에 반응하는데 실제 사물의 이치에서도 그렇다는 것, 모든 사물은 진동이 있다는 것. 다만 내가 느끼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삶에서도 그렇지 않나? 누군가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떨리더라도 내게 전혀 울림이 없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문과엄마는 처음부터 문과스럽게 물리학 책에 감동하였다. 그 것이 이 책의 가장 멋진 점이다.

물리는 고1때 이후로 펼쳐보지도 않았는데, 이과에서 가고 싶은 과가 없어서 한의대에 입학했었는데, 그것도 벌써 30년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물리의 세계에 살아왔구나 깨달았다. 한의사로 이십여 년을 살면서, 아이를 키우고 나이 들어가면서, 삶에서 경험하고 통합했던 것들이 과학의 세계에서도 이론과 증명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비교하고 감탄하느라 한 페이지에서 오래 머무르곤 하였다.

파동인 빛이 입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물리학자들이, 입자인 전자가 파동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이중성, 상보성을 이해하게 된다. 상보성을 제안했던 보어가 중국을 방문하고 태극 문양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는 구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양과 오행으로 인체를 이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락과 기로써 사람을 치료하는 한의학의 세계에서 결과물을 내기 위해(실제 인체를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20년의 시간이 스쳐갔다. 힘든 길이었다. 마음과 몸, 기와 에너지, 생화학과 해부학들을 공부했던 시간들이 결국 이 물리학의 세계를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저자가 물리를 통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철학과 문학, 한의학에서도 각자의 언어로 말한다. 결국 진리는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글을 읽으며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그것이었다, 진리는 어떤 언어로 말하더라도, 불경에서도 물리에서도 한의학에서 인체를 치료할 때에도, 시장에서 생선을 팔면서도, 결국 같은 것을 깨닫는 것. 인생의 비밀을 어떤 방향에서 탐구해 가더라도 결국 진리는 하나라는 것. 그걸 이 물리학자가 쓴 책에서 느끼게 되었다. 마음이 참 좋았다.

그럼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책의 맨 말미에서 ‘과학적 태도’를 말한다. <과학은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태도다. 충분한 물질적 증거가 없을 때, 불확실한 전망을 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과학의 진정한 힘은 결과의 정확한 예측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 할 수 있는 데서 온다. 결국 과학이란 논리라기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 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이니까>

한의학도 그렇다. 한의학의 과학화는 한약재의 어떤 성분이 약리학적으로 어떤 효과를 내는 것을 증명해 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진료에서 불확실성을 안고 가며,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며, 그리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알아가는 것, 과학적 태도를 지니는 것이다. 한의사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젊은 한의사들에게 <떨림과 울림>을 권한다.

 

20191224

강솔 / 소나무 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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