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한의계를 위해
상태바
10년 뒤 한의계를 위해
  • 승인 2019.12.27 0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12년의 부산 지부이사직을 그만 둔지 3개월이 되어간다. 회무 속에 오랫동안 있다가 밖으로 나와 보니 느끼게 되는 점들이 있어 짧은 글로 나누고자 한다. 어렵고 길면 소통이 안 되고 소통이 안 되면 홍보는 꽝이다. 12년 홍보이사로서 아주 쉬운 얘기로 시작해보겠다.

2005년 초, 한의사 면허를 받았다. 아직도 새내기 같은 기분인데 벌써 15년차가 되었다. 그 사이에 인턴, 부원장, 공보의를 거쳐 8년간의 개원가 원장을 경험했다. 그 후 2년간은 진료를 쉬고 올해 초부터 350병상의 비교적 큰 재활전문 요양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의사가 근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를 겪어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봉직의 환경>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솔직히 양방에 비해 한의사의 봉직 시장은 매우 열악하다. 대진 공고가 뜨면 ‘알림’설정을 해둔 수많은 휴직 선생님들의 댓글이 전투를 벌이고 광역시 급의 요양병원 자리는 구직란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지인끼리 알음알음 모두 구인이 끝난다. 게다가 공직 한의사 자리는 해가 갈수록 최악의 조건으로 내려가고 있다. 특히 부산은 더 심하다. 개원가에서는 피부로 못 느낄 수 있지만, 지금 한의계의 봉직 시장은 심각하다.

결론적으로 한의계 전체를 위해, 좁게는 개원가를 위해서 <봉직 시장>이 좋아져야 한다. 봉직 시장은 신규 한의사들만의 자리가 아니다. 개원을 할 수 없는 상황, 개인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 우리 모두의 보험과도 같은 자리다. 나 역시 요양병원에서 진료를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 우리 모두는 언젠가 갑자기 ‘봉직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예비 봉직의인 셈이다. 봉직의 급여와 병원 내에서의 대우, 공직 한의사 자리의 확대를 통해 <강제 개원>을 막아내야 개원가가 산다. 개원을 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봉직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어야 개원가가 장기적으로 안정된다. 물량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중앙회가 공직 한의사의 확충, 봉직 한의사가 근무하는 병원 급 한의 진료수가 개선에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개원가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봉직 시장의 질적 양적 개선이다. 하지만 중앙회나 지부에 봉직의를 대표할 임원이 거의 없고, 봉직의라 하더라도 대형 프랜차이즈 병원에 속한 분들이 대다수다 보니 가장 힘든 여건에 종사하고 있는 수많은 봉직의 선생님들이 느끼는 애환을 알기 어렵다.

한의계 정책을 <저항>이라는 기준으로 분류해 보면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내부 저항과 외부 저항이 모두 적은 정책, 내부 저항은 크지만 외부 저항은 크게 없는 정책, 내부 저항은 거의 없지만 외부 저항이 큰 정책, 내부와 외부의 저항이 모두 극렬한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중앙회는 지난 수십 년간 <저항>에 부딪혀 모두 좌초되고 말았다. 그것이 내부 저항인 경우도 있었고, 외부 저항인 경우도 있었다. 저항에서 소모되는 엄청난 에너지를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이런 저항에 봉착될 것을 뻔히 알면서 밀어붙이는 경우에 중앙회장은 항상 탄핵을 면치 못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정책 추진은 <저항>을 가장 염두에 두고 펼쳐갈 필요가 있다. 한의계에 필요한 모든 정책을 4가지로 분류하여 내부와 외부의 저항이 가장 적은 것부터 추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 내부의 저항이 적고 외부의 저항이 있는 정책을 추진하여 내부 결속을 다져야 한다. 내부의 저항이 큰 정책을 강력히 추진한다면, 그 정책은 내부분열로 인해 결국에는 좌초될 위험이 크다. 중앙회는 내부의 저항이 최소이면서 하나로 단합될 수 있는 정책부터 추진해서 내부의 단합과 신뢰를 받은 후에 점차 다음 단계의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회원들과 신뢰도 쌓이기 전에 집행부의 단독 행동이 반복된다면 결국 과거의 전철을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지부는 중앙회에 대해서, 때로는 강력한 브레이크를 때로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서 도와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역 행사에만 뛰어다니고 중앙회의 정책에 yes맨만 자처하는 지부들이 아직도 많은 듯하다. 지부는 중앙회의 의견에 동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지부만의 독자적 색깔을 가지고 지부 회원들의 권익과 의견을 대표해 적극적으로 정책에 관여해야 한다. 한의계에 가장 해로운 리더는 선비인척 하는 지부장이다. 싸울 때 싸우지 못하고 지역 유지들과 밥 먹고 사진 찍는 지부가 있다면 존재 자체가 슬픈 일이다. 무릇 한 지부를 대표하는 지부장이라면 한의계의 긴 투쟁의 역사를 완벽히 숙지하고, 각종 현안에 대해 근거를 갖춘 독자적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 지부장은 항상 중앙회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지부장은 회원들의 의견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임원과 회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와 당당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부가 지부다워진다.

한의사의 큰 꿈을 안고 입학하던 99년, 처음 한의사가 되었던 2005년과 비교하면 현재 한의계와 한의사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양방의 각 과들이 시대에 따라 인기 순위가 급변하듯, 우리 한의계도 다시 비상하는 시대가 오리라 확신한다. 한의계 내부의 반목과 분열을 예방하고, 봉직의 환경의 개선, 공직 한의사의 확대, 내부 저항이 없는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여 우리의 재도약을 꿈꾼다.

2007년 한의계 정책에 대한 제안을 민족의학신문에 올리며 지부 이사를 시작했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우리는 다시 하나의 뜻으로 합쳐질 저력이 있는 집단이다. 한의계의 영광이 ‘다시’ 빛나는 순간에, 함께이길 희망해본다.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