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산지박 괘 – 비판과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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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산지박 괘 – 비판과 비난
  • 승인 2019.10.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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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장기한의원

요즘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용을 두고 세상이 시끄럽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 사람이 언제나 겪어야 하는 관문이기는 하지만, 언론에서 쏟아내는 수많은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의 지나친 것들도 없지 않다. 덩달아 다른 정치인들도 비슷한 사례의 유탄을 맞게 되는 일도 있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 하나를 여러 소인배가 앞다투어 끌어내리려고 하는 모습의 괘가 있다. 바로 산지박괘다. 산지박괘의 괘사는 이렇다.

 

剝 不利有攸往 박은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

 

산지박괘는 가장 위에 있는 양효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음효로 이루어진 괘이다. 수지비괘나, 뇌지예괘나, 지산겸괘 등 양효 하나에 음효 다섯이 있는 괘는 박괘 말고도 다섯 개가 더 있지만 유독 산지박괘에 흉하다는 효사가 많은 것은 양효의 위치 때문이다. 양효인 상구의 자리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넓은 시각과 깊은 안목을 가져야 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아래에서 온통 뒤흔들어대니 그 자리를 보존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初六. 剝牀以足 蔑貞 凶 초육은 상을 다리부터 깎으니 바른 것을 멸함이라, 흉하다.

 

산지박괘는 그야말로 상처럼 생긴 모양새이다. 벽돌이 다섯 개 양쪽으로 쌓여 있고 위에 판 하나가 놓인 모양새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벽돌의 맨 아래쪽 한 장이 절반쯤만 있다고 생각하면 상이 어느 정도 불안정할지 짐작이 갈 것이다.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트집을 잡는 것이다. 발목을 잡는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처럼, 티끌만한 것이라도 발견하면 좋다. 하다못해 장점도 단점처럼 만들면 된다. 자기가 예쁜 줄 알고 행동한다, 자기 학벌을 과시한다, 인맥을 통해 뭐든지 쉽게 해결한다, 다른 사람 환심 사려고 돈을 물쓰듯 쓴다. 어떠한 사실에 삐딱한 시각 하나만 넣어주면 모든 것이 쉽게 단점으로 돌변한다. 그러니 바른 것을 멸하는 것이고, 그래서 흉하다.

 

六二 剝牀以辨 蔑貞 凶 육이는 상을 언저리부터 깎으니 바른 것을 멸함이라, 흉하다.

 

육이는 원래 육오의 짝으로 서로 합하여 좋은 쪽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둘다 음효라 음양응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기껏 내괘의 중앙을 차지하고도 흉한 일에 골몰하게 된다. 일단 초효에서처럼 단점을 찾아 트집을 잡았다면, 이젠 그 말을 믿어주고 동조하여 행동할 사람들을 찾으면 된다. 진실을 약간 버무려 누구나 경악할만한 가짜 뉴스를 퍼트려주면 그것을 진심으로 믿고 분노하며 지지를 철회하거나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생긴다. 가짜 뉴스는 자극적일수록 잘 퍼지고 효과가 좋다. 그것도 안 먹히면 주변의 친한 사람 중 뭔가 트집잡을 게 있는 사람이 없나 열심히 찾아보면 된다. 사업가 친구가 돈을 잘 벌면 뇌물 수수 의혹, 행정이나 법률가 친구가 영전을 하면 특혜 의혹, 사돈의 팔촌에 동네 사람까지 털어서 음주운전이나 국세체납 한 건이라도 있으면 된다. 이렇게 상을 언저리부터 깎는 것이고, 바른 것은 하나도 없으니 흉할 수 밖에 없다.

 

六三 剝之无咎 육삼은 깎음에 허물이 없다.

 

육삼은 상구의 짝이다. 그러니 아래의 두 효와 위의 한 효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일단 상구를 믿는다. 물론 상구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을 수는 없다. 잘못은 만들기에 따라 있고도 없는 것이니까. 육삼은 상구의 잘못은 잘못이라고 지적하지만 또한 그가 그 잘못을 개선하고 사과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허물이 없다.

 

六四 剝牀以膚 凶 육사는 상을 피부부터 깎으니 흉하다.

 

일단 트집을 잡고 주변 사람들을 탈탈 털었으면 이제 그 사람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혈육을 까내리면 된다. 아무리 주변인들을 흔들고 비방해도 꿈쩍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제 살 같은 식구들을 천하에 죽일 놈 만드는데는 견뎌낼 재간이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 중요한 것이 대체 무엇인지 허무한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가장 악랄하고 또한 흉한 일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걸까? 그 대답은 상전에 있다. 象曰 剝牀以膚 切近災也 상에 이르기를 상을 피부부터 깎는다는 것은 재앙이 절박하게 가까움이다.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심정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악랄하게 할 이유가 없다.

 

六五 貫魚以宮人寵 无不利 육오는 물고기를 꿰어서 궁인의 총애로써 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

 

육오는 원래 왕의 자리이지만 음효라 힘이 없다. 그러나 지금 상구를 받쳐주고 아래의 네 음효를 정리하는 것은 육오의 일이다. 궁인의 총애로써 한다는 말을 상구가 나머지 다섯 음효에게 베풀어야 하는 덕목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나는 육오가 상구를 보는 시각으로 생각하고 싶다. 육오에게 상구는 내 사람이다. 내가 꼭 등용해야 하는 인재이며, 나의 오른팔이다. 그러니 그를 총애함이 마땅하며, 그것이 다소 치우친다 해도 허물할 수 없다. 정적에게 너그러울 수는 있으나 내 사람처럼 총애할 수는 없다. 나의 뜻을 대신 관철해줄 내 사람이면 내가 보호하고 아끼며 믿어주고 밀어줘야 한다. 그런 나의 뜻을 그가 알아주고 굳건히 일을 행한다면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上九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상구는 큰 열매는 먹지 아니함이니, 군자는 수레를 얻고 소인은 집을 깎는다.

 

큰 열매는 먹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크고 좋은 열매는 누가 봐도 먹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열매를 먹지 않고 놔두는 것은 따로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상구는 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재물이나 권력을 탐하지 않는 이유는 그 지위가 재물이나 권력을 갖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자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있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알고 있는 군자는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믿음을 싣는 수레를 얻을 것이며, 그렇지 못한 소인은 자기의 설 곳마저 잃고 쓸쓸히 퇴장할 것이다.

나라의 큰 일을 하는 사람을 고를 때에 다방면으로 검증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엽적인 문제에 치우쳐 결국은 감정 싸움이나 비난,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공격으로 치닫는 것은 여야 모두 지양해야 할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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