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破邪顯正] ‘양방’ 소리 했다고 청와대 고소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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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邪顯正] ‘양방’ 소리 했다고 청와대 고소한다는데
  • 승인 2019.06.2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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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

손현

mjmedi@mjmedi.com


파사현정(破邪顯正)은 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름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국민의 건강을 위해 한의학의 바른 길을 드러내자는 시평을 담는 코너입니다.

지난 6월 3일에 청와대에서 ‘양방’ 주치의로 강대환 부산대 의대 교수를 임명하자 의협에서는 “의료는 과학적 검증을 거친 근거중심의 현대의학이다.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표준화된 주류의학을 뜻하는 것”이라며 “일부 집단에서 의료를 폄훼하기 위해 만들어낸 ‘양방’이 아니다”, “청와대의 ‘양방’ 표현은 의료의 가치와 중대성을 격하시키고 잘못된 개념을 통해 국민과 언론에 심대한 혼란을 끼칠 수 있다”라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뭐 이 정도 발언이야 하실 수 있죠. 그런데 소청과의사회에서는 한발짝 더 나가셨네요. 임현택 소청과의사회 회장님께서는 “의료법 제2조는 의사는 ‘의료’, 한의사는 ‘한방의료’를 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양방’이라는 용어는 법적으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며 “‘양방’이라는 표현은 일부 한의사들이 현대의학과 의사를 폄훼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낸 멸칭(蔑稱)”이라고 준렬히 꾸짖으시며,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해야 하는 총무비서관이 밤낮없이 피 튀겨 가며 사람 목숨 살리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폄하하는 표현을 썼다는 것은 고위 공무원으로서 기본적인 자질이 의심”되니 “고위 공직자로서 매우 부적절한 범죄행위에 대해 검찰은 구속 기소해야 한다”며 이정도 비서관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해버렸습니다.

먼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 두 분 ‘큰형님’들의 기개에 존경을 표합니다. 어디 고작 청와대 나부랭이들이 생명을 다스리는 우리 존엄한 의사들을 능멸한단 말이냐! 청와대 비서관이고 나발이고 너 고소! 시전해주시는 큰형님들의 패기에 리스펙!

헌데 이를 어쩝니까요. 큰형님들 말씀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려버렸네요?

‘한방’과 ‘양방’의 용어는 ‘한의사’라는 말보다도 먼저 생긴 것인데 어찌 고작 ‘한의사’들이 폄훼하기 위해 만든 멸칭일 리가 있겠습니까? ‘한방’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보면, 에도 시대 일본에 소개된 네델란드 중심의 서양 의학, 즉 ‘람포(蘭方)’에 대응하는 용어로 ‘캄포(漢方)’가 만들어졌고, 이 용어가 일제시대 식민지 조선에도 그대로 수입되었습니다. 이후 1985년부터는 한방, 한의학 등이 '韓方', '韓醫學' 등으로 한자만 바뀌어 계속 쓰이고 있는거죠.

다시 말해, 한방-양방은 마치 한식-양식, 한옥-양옥, 한복-양복처럼 서양 문물이 처음 들어온 개화기와 일제시대 이후로 우리 언중이 전통 문화와 서구에서 수입된 문화를 구분하기 위해 주욱 써오던 말일 뿐, 결코 폄훼의 목적으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멸칭이 아닙니다. 청와대 이정도 비서관께서 한식 조리장과 양식 조리장을 각각 임명했다고 발표하면 그게 양식 요리를 폄훼하는 언사가 되나요?

역사적으로나, 어문 습관상으로나 아무 문제없이 잘 써오던 단어들인데, 우리 큰형님들께서 폄훼니 뭐니 하며 고소까지 운운하시는 연유를 도통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평소에 (물론 우리 큰형님들은 다들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분들이지만, 어느 무리에나 끼어 있는) 저열한 몇몇 인사가 ‘한의사’ 대신 ‘한방X’니 ‘한방X당’이니 하는, 여기서 차마 언급하기도 꺼려지는 천박한 ‘멸칭’을 써대는 바람에 덩달아 ‘양방’도 멸칭인 줄 착각하셨나 싶기도 하구요.

유독 그 말만 들으면 나를 하찮게 여기고 비웃는 것 같다면, 혹시 내 속에서 상대방을 혐오하고 멸시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남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혼자만 바득바득 우기는 거 같은 분위기라면, 일단 숨을 고르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런지요.

이왕 말 나온 김에, 호칭 문제 이거 깔끔하게 정리하고 지나가는 건 어떻습니까. 사실 의사라고 할 때의 ‘의(醫)’라는 글자 자체가 잘 뜯어보면 화살처럼 뾰족한 도구(矢)나 약물(酉) 같은 것을 써서 환자를 다스린다는 뜻이잖습니까? 21세기 과학의 시대, 이 개명천지에 미개한 침이니 시커먼 풀 달인 물 따위를 쓰는 놈들을 가리키는 그런 격 떨어지는 글자를 쓰셔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큰형님들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지.

이게 다 ‘의사’라는 단어를 같이 쓰다보니 구질구질하게스리 한방-양방을 나누게 되고, 이 얼마나 추잡스럽습니까? 이왕 이리 된 일, 수천년 동안 우리가 써오던 ‘의(醫)’, ‘의사(醫師)’ 요런 단어들은 깔끔하게 다시 돌려주시고, 나랏님이랑 당당히 한판 싸움도 벌이면서 큰 일 하셔야 되는 큰형님들은 딴 거 알아서 만들어 쓰십시다. 정 안되면 국제화 시대에 뭔가 있어보이게 영어로 ‘닥터’니 ‘메디슨’이니 뭐 그리 부르던가요. 그러면 형님들이 그렇게도 멸칭이라고 싫어라 하는 ‘양방’ 소리 안 들어도 되고, 세계 공용의 ‘메디컬 닥터’ 소리도 들어보고, 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

손 현 / 교정의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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