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자신의 내면도서관에 충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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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자신의 내면도서관에 충실하기
  • 승인 2019.05.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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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나는 베네치아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베네치아에 간 꿈을 꾼 적은 있다. 하얀 돌로 차곡차곡 쌓인 운하와 다리를 둘러보며 물 냄새를 맡았다. 주위엔 안개가 끼고 물이 곤돌라로 찰랑찰랑 튀는 바람에 전경은 둘러보지 못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별로 보이는 게 없네 하며 아쉬워했다. 와중에 곤돌라에서 내렸는데 한국인 관광객 중에 섞여 있던 선배가 “시험 준비는 잘 되가니?”라고 묻기까지 하는 꿈. 베네치아에서는 어떤 강아지를 키우는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수영을 잘하는 종이나 집에서 키우기 좋은 작은 종이 적당하겠지) 어디선가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을 법한 꿈이다.

피에르 바야르 著, 김병욱 譯, 여름언덕 刊

베네치아에 대한 극히 단편적인 정보와 그 정보 사이를 메꾸지 못하는 부실한 상상력 등등이 결합한 엉성한 꿈에서 깨고 난 후 친구들과 ‘베네치아 이야기’ 를 했다. 거기 물이 그렇게 튈까? 물 냄새 많이 난다지? 거기 가라앉는다지? 그러고 보니 너는 다녀오지 않았어? 등등 가보지 않은 베네치아 여행 이야기는 한참 계속되었다. (그러고 보니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연작에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이다.)

우리는 가보지 않은 곳에 관해 이야기하고 먹지 않은 음식에 대해 말한다. 만나보지 않은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일어날 리가 없는 가상의 사건에 대해서도 즐겁게 이야기한다(외계인이 보석 다섯 개가 꽂힌 장갑을 끼고 전 우주의 절반을 파괴하는 일은 어지간해서 일어나지 않겠지만 관심 가는 화제이다). 그런데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대화에는 쑥스러움이 종종 묻어난다. 이 책은 그런 쑥스러움을 가지는 이들을 향해 “괜찮아”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뻔뻔함을 부추긴다거나 책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거짓으로 읽은 척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독서-비독서사이의 여러 단계, 다양한 대화의 상황에서 그 화젯거리가 되는 책의 가치가 어떻게 실현되는지, 나아가 수동적인 독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텍스트’를 만들어 내기까지에 대한 책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제목이 주는 인상은 약았다고 해야 할지 노골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무심히 넘기기는 어렵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지인으로부터 그런 책이 있더라는 소개를 들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전혀 접해보지 못한 책 Unknown Book’에서 ‘들어본 책 Heard Book’으로 전환되었다. 들어본 책이라는 지위를 얻고 시간이 지나 2017년에 이 책을 읽고 간단한 감상을 메모해 두었으며, 다시 2년 후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나는 이 책이 ‘읽었지만 내용을 잊어버린 책 Forgotten Book’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다급하게 ‘대충 뒤적거려 본 책 Skimmed Book’으로 다시 만든 상태이다. 읽은 책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내용에 충실하게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는 다른 책을 언급할 때마다 약호로 접해보지 못한 책, 들어본 책, 잊어버린 책, 뒤적거린 책을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읽은 책”이라는 약호는 없다.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 사이에는 벽이 아니라 일종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시간에 의한 망각은 이 책의 분류를 시시각각 잊어버린 책으로 되돌려 가고 있다.

읽었다고 해서 다 같은 걸 읽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내면의 책’이라는 개념을 정의한다. 독자 안의 필터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책의 어느 부분을 수용하고 해석할지 결정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서 자체를 가공한다. 예로 제시된 아프리카의 티브족에게 <햄릿>의 내용을 소개하는 상황은 황당하고 신선해 보이지만 지극히 일상 그 자체였다. 다른 문명권의 독자들은 <햄릿>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에게 햄릿의 아버지와 숙부가 이복형제인지 동복형제인지 정보를 요구한다. 또 죽은 이의 유령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어떻게 보면 햄릿이나 다른 이들이 본 게 집단환상이나 망상일지도 모른다는 현대의 작품 해석과도 닿아있다), 그리고 그 ‘유령의 의지’를 왜 새파랗게 젊은 아들에게 맡기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그런 중요한 일은 노인이나 대장이 맡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전달하는 미국인 인류학자와 티브족 사람들은 햄릿에 대해 아예 다른 곳에 주목하고 다른 주제를 전달받았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성의 있는 대화를 하며 서로의 가족, 실재와 표상, 가치관에 따라 많은 정보를 얻었다. <햄릿>은 매체였을 뿐 서로 다른 내용을 읽었으나 <햄릿> 작품과 대화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끼어들어도 즐거운 대화였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햄릿>과 그 서평을 여러 번 읽어서 티브족만큼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전설에서는 유령이 원님에게 나타나더라, 우리나라에는 수절 문화가 있었노라 같은 얘기를 했겠지.

언제나 우리는 책에 대해 대화를 할 때는 “당면 상황에 따라 다시 손질된 불명확한 기억들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 이다. 꼭 책에 대해서만 그런 것은 아니고 사건에 대해 사람에 대해 불명확한 기억들을 바탕으로, 받아온 교육의 수준과 내용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못하고 함께 대화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 텍스트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을 것이며, 다른 독자가 이 책을 읽었을 때 느낄 감상을 예측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나 자신의 내면도서관에 충실하고, 내가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느낀 점을 표현한 텍스트임이 확실하다. 그러니 글재주의 부족은 쑥스럽지만 내용이 쑥스럽지는 않다.

 

김린애 / 상쾌한의원(개원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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