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진 다양한 학문적 백그라운드를 통한 한의학과 융합을 시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2019년도 시작과 더불어 하버드 대학에서 1년간 연구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버드와 MIT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대학이 밀집된 보스톤은 다양한 학문의 중심지라 불리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전 세계 의학의 흐름을 만들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의 본고장 보스톤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모습들을 보게 되었고, 많은 생각과 영감을 받게 되어 그 경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암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는 보건의료 계열의 학생을 포함하여 연구자 가운데 ‘The Biology of Cancer’이라는 제목의 책 (국내판 ‘암의 생물학’)을 모른다면 한의사로 황제내경을 모른다는 말과 동일할 정도로 종양학 분야에서 그 영향력이 지대합니다.
더욱이 2000년과 2011년에 Cell 저널에 출간된 ‘The Hallmark of Cancer’는 2000년도 표적치료제와 2010년도 면역치료제의 개발을 이끌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 때마다 인용하는 이 책과 논문을 말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저자인 와인버그 박사님은 인간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종양학의 신적인 존재라고 강의를 하였는데, 그 신적 존재를 보스톤의 Whitehead 연구소에서 만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면역치료제의 성과가 나오면서 마치 암이 정복될 것처럼 보이지만 와인버그 박사님이 보는 암은 인간보다 스마트하고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질환이므로 지난 수십 년간의 암 연구의 발전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빙산의 일각만을 알고 있을 뿐이라는 말에서 대학자이지만 학문을 대하는 겸손한 연구자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암에 대한 주제 가운데 그가 관심이 있는 토픽은 전이(Metastasis)인데, 대다수의 암환자를 사망시키는 이유가 바로 전이로 악화되기 때문입니다. 암세포가 전이되는 일련의 기작은 상피세포(Epithelial Cell)가 중간엽세포(Mesenchymal Cell)로의 변화로 이 과정에 2가지 미스터리가 있는데, 우선 첫 번째로 상피세포가 중간엽세포로 바뀌는 것이 과연 어떤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에 생기는가입니다. 이에 대한 와인버그 박사님은 일반세포의 암세포로 변화는 돌연변이로 인하여 발생되지만 전이의 과정에서는 유전자의 변형이 아닌 후생유전학적 변화로 설명합니다. 즉 새로운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아도 올챙이가 개구리로 바뀌는 변화와 같이 암세포가 전이를 위한 중간엽세포로의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원발 부위에 따라 전이 병소의 차이가 왜 발생하는 가인데, 흔히 전립선암은 뼈, 유방암은 뼈와 폐, 대장암과 췌장암은 간으로 전이가 많이 이루어집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유에서 그런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고 부분적 설명만이 가능할 뿐 여전히 충분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와인버그 박사님의 말씀이, 70대의 연세에도 묵묵히 학문에 정진하는 모습으로 필자에겐 큰 감동이었습니다. 와인버그박사님의 만남을 통해 얻은 지식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학문을 하는 자세를 배우게 된 하루였습니다.
이상헌 / 단국대학교 생명융합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