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863> - 『兒學編』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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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863> - 『兒學編』②
  • 승인 2019.04.0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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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새 세상을 준비하는 신지식인의 꿈

전 회에 이 책 『아학편』이 오랫동안 조선에서 서당교재로 사용해왔던 『천자문』을 대신하기 위해 펴냈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진즉부터 여러 가지 字學 교재를 펴내 사용해 온 사실 또한 상기해야 한다. 조선 전기 徐居正이 펴낸『類合』과 崔世珍이 엮은 『訓蒙字會』, 그리고 柳希春도 『新增類合』을 새로 엮었다.

◇『아학편』

이 뿐만 아니라 조선 왕조가 다 저물도록 『新千字』,『二千字』,『歷史千字文』,『새千字文』등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새로운 천자문이 등장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周興嗣가 지은『천자문』이 외래 지식 혹은 전시대 낡은 지식의 표상처럼 여겨진 반면, 새로운 문자학 지식과 보급을 통해 새 시대를 펼치고자 했던 선구적 지식인들의 갈망이 새로운 천자문을 엮어 펴내는 것으로 표출되었다고 평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산 정약용이 펴낸 이 『아학편』이나 한말의 의학자 石谷 李圭晙(1855~1923)이 지었다는『後天字』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새 시대의 흐름을 이끌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고뇌가 담겨져 있다 하겠다. 또 일제강점기에 아동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곁들여 펴낸 『圖形千字文』이나 최근 아동들에게 절찬 호평을 받은 『마법천자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변화된 세태에 맞춰 필수 한자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고충이 담겨져 있는 기초한자 교재로 선보인 것이다.

근래 이 『아학편』이 조선시대 영어교재라는 광고문구로 치장한 책자가 널리 소개되었다. 글자마다 한글로 풀이한 뜻과 음을 비롯해 일본어 가타가나로 적고 한글로 일본어 발음을 기재했을 뿐만 아니라 알파벳으로 적은 영어 단어와 그 발음을 역시 한글로 기재해 놓았다. 또 중국어 발음을 별도로 기재하진 않았지만 해서체 정자로 적은 한자를 기본글자로 전서체 자획과 원문자로 표시한 음운을 동시 기재하였기에 한중일영 4개 언어가 공통으로 표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민병석의 서문 다음에 실질적인 편집자인 松村 池錫永(1855~1935) 서문이 곁들여져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지금 바다로 향한 海門이 활짝 열려 구라파와 아세아가 서로 교역하게 되었으니 우리의 모자라고 고루함으로써 저들의 넉넉하고 뛰어난 점을 취하여 列强과 다투어 겨루고자 한다면 어학이 요체가 된다.”고 하였다.

아울러 이 새로운 언어지식이 종합된 자학서를 펴내는데, 田龍圭라는 사람이 동서의 言文에 두루 능통하여 함께 서로 교정하고 검열한 지 몇 달 만에 겨우 완성했으니, 한 글자마다 古今과 東西가 마치 손바닥에 글을 놓고 보는 것처럼 환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 등장한 전용규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진 바 없다. 다만 글속에서 지석영이 “僚友 田君龍圭, 才學之士也.”라고 밝혀져 있고 서문의 말미에 醫學校의 三選堂에서 지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전용규는 바로 이 의학교에 재직하고 있었던 인물임이 분명해 보인다.

지석영은 일찍이 일본에서 우두를 도입하여 보급에 힘쓰다가 1894년 갑오개혁과 함께 위생국에서 종두를 관장하였으며, 의학교 설립을 제의하여, 1899년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일본인 교사들을 초빙하여 일본 의학서를 번역하여 가르치게 하였다. 1903년 의학교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나 1907년에 폐지되었다. 따라서 광무9년(1905)에 쓴 이 서문에서 의학교란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설립한 이른바 官立醫學校이고 전용규는 의학교 교직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관립의학교가 서양의학을 전문으로 교육한 반면, 한의학은 소외되었기에 고종의 侍從兼典醫 張容駿, 전의 洪哲普, 전의보 金炳觀 등이 한의를 전문으로 하는 학교 신설을 청원하여 1904년 4월 同濟醫學校가 설립되었다. 이 역시 1907년 폐지되었으나 최초의 근대식 한의학 교육기관으로 훗날 한의학 부흥 운동에 불씨가 되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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