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협회는 ‘한의학’의 재정의 시도를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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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협회는 ‘한의학’의 재정의 시도를 중단하라
  • 승인 2018.12.05 15:0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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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mjmedi@mjmedi.com


김 기 왕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최근 한의사협회 의뢰로 한의학회에서 ‘한의학’의 재정의 시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공문을 분과학회 전체에 전하였다. 공문에 제시된 한의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한의학’은 생명에 대한 전인적 접근(holistic approach)을 바탕으로, 당대(contemporary) 최선의 과학기술 성과를 활용하여 질병과 상해를 진단, 치료와 예방하며 건강을 유지, 증진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

과연 한의학을 이렇게 정의해도 되는 것일까? 필자는 이러한 학문의 재정의 시도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에 몇 가지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 어떤 학문의 정의는 그 분야의 학술 활동을 충실히 기술하는 것이어야 한다. 학계에서 생산하는 지식에 의해 학문의 범위가 정해지는 것이지 “여기까지가 우리 학문의 영역이다”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그러한 선언을 그 학문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어떠한 용어든 용어 자체를 구성하는 형태소(한자어의 경우에는 한자)가 가지는 의미에서 동떨어진 내용으로 그 용어가 정의될 수는 없다. “한의학” 또는 “Korean Medicine”이라고 하는 말의 정의에 한(韓), 의(醫), 학(學)이라는 문자, Korea, medic (medicus)이라는 어근이 갖는 의미와 전혀 무관한 내용이 들어가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만약 현재 한의학의 실제 내용과 “한의학”이라는 명칭이 갖는 문자적 의미가 잘 맞지 않는다면 기존 용어를 새롭게 정의할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용어를 도입해야 한다.

셋째, 한의학회에서 이번에 제안한 정의는 현재 한의학계에서 생산하고 있는 지식의 범위를 알려주지 못한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생명에 대한 전인적 접근을 바탕으로, 당대 최선의 과학기술 성과를 활용하여 질병과 상해를 진단, 치료하고 예방하며 건강을 유지, 증진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 무엇일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이러한 표현만으로는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영어권이라면 아마도 “이게 뭐지? ‘에너지의학’류의 사이비의학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대답이 적지 않게 돌아올 것이다.

넷째로 공문에 적힌 정의는 어법 오류조차 피하지 못한 매우 조악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질병과 상해를 진단, 치료와 예방하며”라 문장은 필시 “질병과 상해를 진단, 치료하고 예방하며”라는 의미일 텐데 이를 성급하게 적다가 어처구니 없는 오류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쉼표가 사용되었고(전인적 접근을 바탕으로, 당대 최선의 → 전인적 접근을 바탕으로 당대 최선의)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연결이 보이며(당대 최선의 과학기술 성과를 → 현재로서 최선인 과학기술 성과를. ※ ‘당대 + 최고’의 결합은 자연스럽지만 ‘당대 + 최선’의 결합은 어색하다) 용어 선택이 적절하지 않다(생명에 대한 전인적 접근 → 생명에 대한 전체론적 접근 / 생명에 대한 전일론적 접근 ※ 수식어는 “생명에 대한”으로 피수식어는 ‘全人的 접근’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생명체 전체를 말하고 뒤에서는 인간에 대해서만 언급한 셈이다. 또한 “holistic”의 번역어로서 “전인적”이란 말은 특정 문맥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는 정확한 의미를 말해 주지 못하는 말이다).

현 시점에서 한의학을 정의하려면 역사적 기원에 바탕을 둔 정의를 할 수밖에 없다. ‘한의학’이란 말 자체의 문자적 구성을 보아도 그렇고 현재 학계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지식의 범위를 생각해도 그러하다.

 

한의학과 몇 가지 유관 용어에 대한 기존의 표준적인 정의를 보면

① 한의약(韓醫藥) (한의약육성법):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韓醫學)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 및 한약사(韓藥事). ② 한의학(韓醫學)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구 표준전통의학술어, 2007): 고대 중국 의학에 기초를 두고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진 의학. 체질적 접근을 중시한다. (the medicine traditionally practiced in Korea, based on ancient Chinese medicine, which focuses principally on constitutional approaches) ③ 중의학(中醫學), 정의 사례1 (중국규범술어/百度百科): 중의약 이론과 실천경험을 주체로 하여 인류의 생명 활동 중 건강과 질병의 전화 규율과 그 예방, 진단, 치료, 재활 및 보건을 연구하는 종합적 과학. ④ 중의학, 정의 사례 2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구 표준전통의학술어, 2007): 중국에서 기원한, 정체관과 변증론치를 특징으로 하는 전통의학. ⑤ 한방의학(漢方醫學) (일본어 위키백과): 중국의학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발전한 전통 의학. ⑥ 전통의학(傳統醫學)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구 표준전통의학술어, 2007):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져 내려온 자생적 이론, 신념 및 경험에 바탕을 둔, 건강의 유지와 질병의 치료를 위한 전일적 접근의 지식, 기술과 행위의 총합.
 

이와 같이 되어 있어 모두 역사적 기원을 언급하고 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우리 의학이 다른 의학과 구분되는 특성을 말하자면 역사적 기원에 대한 언급이 불가피하다.

물론 우리 의학을 지역과 역사에 대해 중립적인 명칭으로 새롭게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변증의학(pattern identification based medicine)이나 천연물・침구 기반 자연의학(Herb, Acupuncture and moxibustion based Natural medicine)으로 우리 의학을 명명해 봄 직하고 아예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명칭의 도입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명칭이 정착되려면 학계에서 생산하는 지식과 제안된 명칭이 명실상부한 대응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시간을 요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에 한의사협회에서 한의학회에 용어 재정의를 의뢰한 배경에는 한의사의 직무가 갖가지 제약을 받고 있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용어의 재정의를 통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한의사의 직무 범위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 정면 돌파해야 할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법 2조는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에 종사함을 임무로 한다”, “한의사는 한방의료와 한방보건지도에 종사함을 임무로 한다”는 문장을 통해 의사와 한의사의 직역을 분리하였고 ‘한방의료’, ‘한방보건지도’를 수행하는 것만을 한의사의 임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인력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 한의사들이 1차의료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도록 제도와 교육을 바꾸어 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법령의 개정이 불가피하다. 법령을 정비하여 의사와 한의사의 공통 직무 영역을 명확하게 적시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른 방법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방’의 정의를 바꾼다는 것은 치졸한 편법에 지나지 않으며 진리를 왜곡하는 일이다. 종국에는 세계인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에 공문을 통해 전달된 한의학회의 한의학 재정의(再定義) 방안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안이다. 철회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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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2018-12-06 14:45:26
중국 일본 대만의 한방의술에는 의료장비 활용 이미 하고 있듯이. 그게 현대한의약의 모습인거죠. 스스로 진취적인 자세로 나아가면 우군이 생길겁니다. 한방산업화를 위한 현대한의약을 지향하는 현재 협회정책과 행보에 박수를 보냅니다.

소용돌이 2018-12-06 13:51:50
그런취지에 공감한다면,학계에서 생산하는 지식에 의해 학문의 범위가 정해지는 것이라는 의견은 지극히 소극적 자세고 산업화를 스스로 가로막는 태도 아닐까요. 그럴필요가 전혀 없어요. 양방의술도 스스로 개념정리를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아요. 우리에게 지금부터 필요한건 진취적 자세입니다. 인류의 의술에 다양한 경쟁옵션이 있는게 좋죠. 과학문명의 성과는 양방의술에만 활용허용한다는 금지조항이 없습니다.

소용돌이 2018-12-06 13:39:26
산업화를 위한 기본이 의료장비사용이고 보험진입이라고 봐요. 의료장비를 사용못하니 기초과학지식 활용도가 극히 낮을수밖에 없었고, 필요성도 못느꼈던거지요. 한방개념의 영역밖이라서 그렇게 흘러왔던건 아니라봐요. 양방의술에서 의료장비와 기초과학학문 성과 진입장벽을 쳐버렸다면, 의료산업화가 당연히 불가능했을겁니다. 한방도 과학문명의 성과를 적극활용하면 산업화 할수 있습니다.

소용돌이 2018-12-06 13:37:19
당대 한의약 + 당대과학문명성과(기초과학학문+ 과학검증치료장비 + 당대과학기술에 기반한 제형변화기법) + 적극 활용 결합하여 한방산업화. 이런 개념으로 정리하고 미래지향해야한다고봅니다. 양방의술에서 전세계의대교수들이 생산하는 지식이 기여한 부분이 10%될까요? 나머지는 전세계 기초과학자와 의료장비, 제약사라는 우군 덕분으로봅니다. 한방의술도 이제는 산업화를 지향해야할 때라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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