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핑거’로 이란 왕실에 한의학 전파한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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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핑거’로 이란 왕실에 한의학 전파한 한의사
  • 승인 2018.12.06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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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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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으로 만난 사람 (1) - 이영림(서초동 영림한의원 원장)
◇이영림 원장이 자신의 자서전 『골드 핑거 - 신이 내린 한의사』와 번역서 『백색혁명』을 보여주면서 설명하고 있다.

한달전 10월 31일 경희대 한의대에서 신축관 개관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경희대 한의대를 1974년 졸업하고 1976년부터 1994년까지 이란의 왕실 병원에서 왕실주치의로 근무하면서 한의학의 세계화의 방법론을 모색한 이영림 원장의 『골드 핑거 - 신이 내린 한의사』(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간행)라는 제목의 자서전 헌정식도 갖은 바가 있다. 영림한의원에 오랜 만에 찾아뵈오니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먼저 자서전의 제목에 붙은 ‘골드 핑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보니, 이 원장님께서 당시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에서 침만 맞으면 아픈 곳이 씻은 듯이 낫는다는 소문이 만들어낸 찬사라는 것이다. 갑자기 이란에 가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어떻게 가게 된 것인가 하니, 큰 우연이었다고 의외의 대답을 한다. 우연? 어떻게 우연으로 20년 가까이 이란에 머물면서 왕실주치의까지 하게 된 것일까?

당시 한국에 근무하고 있던 이란 대사의 견비통을 치료해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앓아왔던 견비통을 침으로 완쾌시켜주니, 나중에 이란 대사가 찾아와서 당시 국가 원수인 팔레비 궁왕이 쓴 저서 『백색혁명』이라는 책의 번역을 요청하여 이 책의 번역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 이 책의 한국어 출판이 이루어진 것에 감사하여 이란에 초청되게 되었고, 이것이 그녀에게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것이다.

한 달 일정으로 이란에 체류하는 동안 이란 보사부 차관이 병원장으로 있는 병원에 방문하여 병원장의 건강상담을 하게 되었다. 병원장은 자신의 지병을 “머리를 앞으로 숙이면 눈이 빠질 것처럼 아파요. 마치 난쟁이가 머릿 속에 들어가 송곳으로 쿡쿡 쑤셔대는 것 같은데, 한번씩 통증이 오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라고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담궐두통’의 증상으로서 이영림 원장은 침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임을 확신하고 침 시술 7회 만에 완쾌시켜 주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의학이 발달한 국가에 가서 치료받았음에도 전혀 차도가 없었던 의사인 병원장의 입장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병원장을 치료해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서 이영림 원장이 머물렀던 호텔에 전화가 계속 울렸다. 이란 사람들은 고단백 식단 위주로 치즈를 너무 많이 먹어서 담궐두통이 많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란 사람들은 담궐두통을 불치병으로 일종의 천형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된 환자 치료로 인하여 예정된 한달간의 체류기간은 두 달이나 늘어나고 말았다. 귀국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날, 이란 정부로부터 오래 머물면서 왕실 주치의가 되어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받게 된다. 국왕 폐하와 왕실 일가분들이 닥터 리(이영림 원장)가 이란에 오래 머무르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다. 근무 조건도 좋았다. 급여는 당시 한국에서 보다 배 이상 많았고, 70평 규모의 아파트와 승용차가 제공되었다. 게다가 근무시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였으며, 그 외의 시간은 다른 직업(Two job)을 갖는 것도 허용되었다.

그녀는 환자의 얼굴색을 관찰하고 脈診을 통해서 진단을 하고 침을 위주로 치료하였는데, 침대 12개로 구성된 鍼灸科는 항상 차서 1년전에 예약을 잡아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환자 중에 왕실과 대통령 집무실에서 왕진 요청이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라프산자니 前 이란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라프산자니 대통령이 괴한에게 저격을 당해 치료하면서 부인인 하쉐미 여사의 알레르기성 질환을 치료하면서 친해진 것이다.

오전에 근무가 끝나면 그녀는 현지에 그녀가 세운 건설회사인 동남건설에 출근하였다. 당시 한국의 대형 회사가 700만달러 공사를 수주하였을 때 동남건설에서 3000만달러의 공사를 수주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한의대에 입학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묻자 간디스토마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은 후 7년간의 고통 끝에 침술로 치료되어 한의학의 경이로운 효과에 매료되어 경희대 한의대를 지망하여 입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2년전에 충청남도 금산군 소재 토지 44만여평과 유럽계통의 중세 및 근현대 유물들을 포함해서 1300억여원에 달하는 재산을 경희대 한의대에 기증하였다. 그녀는 인생자체가 “空手來, 空手去”라고 하면서 남은 인생 조국의 한의학을 위해 기여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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