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 (327) - 洪性初의 醫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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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 (327) - 洪性初의 醫案(1)
  • 승인 2018.11.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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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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急性肝臟炎案
◇홍성초선생의 의안이 기록되어 있는 대한한의학회지

해방 후 어떤 해에 있었던 일이다. 박씨 집안의 차남인 ㅂ군이 고열로 누워서 신음한지 몇 일이 지났다. 근방 의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내원하였다. 急性肝臟炎으로 肝葉이 팽창하여 中脘에서 臍部近傍을 뒤덥었고 脈象이 弦急搏指하여 증후가 가볍지 않았다. 응급조치로 淸熱和肝散의 처방을 적어주고 급히 서울로 옮겨 치료할 것을 권했다. 병원에 입원한지 수주일 후 다시 찾아왔을 때 간장의 팽창은 여전하였다. 치료한 의사는 내과적 방법은 할 만큼 했으니 외과의원에 가서 치료하라고 했으나 외과병원에서 절개수술을 권유하여 거부하였다고 한다. 의사의 양해를 얻어 병원을 방문하여 간엽이 심하게 팽창되어 중완을 지나 제중근방을 덮었다. 王孟英仁術志에서 乳巖(今에 癌字로 通한다)을 치험한 例가 있는 구절을 발견하였다. 그 처방에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貝母를 長期服用시켜 八斤이라는 엄청한 數量에 달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처방전에 옮겨서 ㅂ군 치료에 활용하였다. 처방은 “山査八錢, 貝母三錢, 右一日量牡蠣粉一兩煮湯代水煎藥一日三回分服”이다. ㅂ군이 이 약을 복용한 이후에 胸膈의 痞滿이 減退되었고 肝의 팽창한 범위가 減退되었다고 한다. 15일후 왕진을 가보니 ㅂ군의 面部가 喜悅에 가득차 있었고, 肝이 부은 것이 많이 가라앉았다고 하였다. 2개월 후에 完快한 몸으로 병원문을 나서게 되었다. 내 약의 효과와 의사의 공헌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의 처방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홍성초, 「나의 秘方아닌 困方」, 대한한의학회지, 제2권 제2호, 통권 9호, 1964. 2월을 필자 나름대로 요약함.)

 

按語) 洪性初敎授(1897-1972)는 1957년 「文獻上에 나타난 古代衛生學의 東洋醫學的 考察」라는 제목의 논문을 대학교수자격검정위원회 제출하여 이것이 통과되어 한의과대학 교수의 자격을 부여받은 한의사이다. 위의 醫案은 洪性初先生이 대한한의학회지에 「나의 秘方아닌 困方」이라는 제목으로 적은 하나의 案이다. 그는 처음에 처방을 썼다가 다시 처방을 바꿔서 치료된 것에 대해서 李梴 『醫學入門』의 “(病機稍有凝滯而藥不甚效者姑待五鼓靜坐潛心追究其源再易診察改方必無不愈)”라는 경구로 설명했다. 즉 그의 설명에 따르면 “병기가 응체하여 약효를 보지 못할 때에는 새벽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앉아 그 원리를 추구하고 진찰을 거듭한 후 고쳐 처방하면 반드시 낫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山査, 貝母 두 개의 약물로 구성된 처방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연구가 요망된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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