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832> - 『論症實驗醫訣』③
상태바
<고의서산책/ 832> - 『論症實驗醫訣』③
  • 승인 2018.08.11 07: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mjmedi@http://


능수능란한 臨床大家의 방제운용

   이 책 『논증실험의결』 역시 『방약합편』이후 조선의학서의 주류를 이루었던 임상경험방서 가운데 한 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이 책에서 가장 특징적인 면모는 당대에 손꼽히는 명의로 이름을 날렸던 여러 임상대가들이 한두 가지 애용처방만을 중점적으로 활용, 다양한 病狀의 변화에 時宜適切하게 수응하여 가감 운용하는 용약법을 저자 스스로 일일이 수집하여 공개한 것일 것이다.

 

◇ 『논증실험의결』

곧, 이른바 ‘金四物, 崔五積, 許六味, 金補益’ 등으로 알려진 이 들 당대 명의들이 각자 자신이 선호하는 익숙한 기본방, 예컨대, 널리 알려진 사물탕, 오적산, 육미지황탕, 보중익기탕과 같은 상용방을 토대로 몇 가지 약재를 빼거나 더하여 천변만화하고 다기다종한 질병증상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은 조선말 임상의약학에서 눈에 띄는 특점이다. 또한 이러한 노대가의 가감활용법은 임증방약에 있어서 능수능란한 처방 운용능력을 나타내는 가늠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본문을 보면, ‘金四物’ 활용방은 金昌浩선생방문이라 되어 있고, ‘崔五積’은 崔致文선생방문, ‘鄭平陳’은 鄭鳳祚선생방문, ‘許六味’는 許昌洙선생방문, ‘金補益’은 金光益선생방문이라고 되어 있다. 이들 개개인이 어떤 생애를 살았던 의인인지는 지금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다만 해당하는 기재사항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金昌浩는 전북 태인(현 정읍시)에서 활동하였으며 이미 고인이 되었다고 표시하였다. ‘崔五積’은 崔致文으로 주소가 全州府 大正町 6丁目으로 되어 있으나 역시 고인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니, 일제강점기에 활약했던 분으로 보인다. ‘鄭平陳’의 주인공, 鄭鳳祚선생은 원산부 대화정 保元局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이 책의 발간시점으로 보아 남북분단 이후로 생사확인이 되지 않았던 듯하다. ‘許六味’로 알려진 許昌洙선생은 전북 雲峰(남원군)으로, ‘金補益’이라 불린 金光益은 전북 남원군 덕과면 蓮洞으로 적혀 있는데, 두 사람 역시 고인이라고 표기했기에 아마도 저자 박의수가 이들의 만년에 찾아가 수집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950년대 이전, 책이 발간되기 전에 이들은 모두 전국에 이름난 명의들로서 대표방 몇 가지만을 변용하여 많은 질병에 맞섰던 인물들이었지만 대다수 광복~한국전쟁을 전후로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로보아 유형, 무형의 전통지식을 채록하여 보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이런 전통의학의 전승과 보전 대책이 과학화나 표준화에 앞서 선행되어야만 함을 명심해야 한다.

  이밖에도 곳곳에 자신의 경험방을 별도로 표시해 두고 있다. 이로 보아 저자 스스로 수많은 임상례를 쌓아왔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으며, 당대 명의들의 문견방을 채록하여 자신의 견해를 보정하는 한편, 실지 경험을 통해 치료효과를 확인하고 관련 지식을 확충해 나가는 방향으로 학문적인 자세를 굳건하게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로 권미에 별기된 補充方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强壯良劑로 소개된 借力丸에는 ‘三溪 吳昌煥方文’이란 주기가 달려 있다. 또 같은 용도의 養血壯筋丸에는 ‘金道淵方文’, 늑막염을 다스리는 만령단, 괴질과 곽란에 쓰는 만령환에는 ‘白雲谷方文’, 오적육취에 사용하는 현묘환에는 ‘白榮熙方文’이라고 적혀 있다.

  같은 방식으로 여러 가지 기묘한 처방마다 괄호 안에 처방 제공자의 성명이 적혀 있는데, ‘朴容性, 金致善, 崔珍文, 金應柱, 任實 李元玉, 丁明祚, 安夏永’ 등, 지금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 졌지만 당대 活人의 명성을 떨쳤던 대가들의 이름자가 분명하게 기재되어 있다.

  의약기술은 공익을 우선하여 독점적 권한을 보장받을 수 없기에 오로지 인인전수로만 비전할 수 있었다. 가전비방을 선뜻 내어놓은 그들에게 무척 초라한 보상일 터이지만 이렇게 책 한 켠에 살아남아  눈부신 활약상을 전해주고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