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불교와 함께 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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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불교와 함께 하는 삶
  • 승인 2018.05.1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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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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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 연기, 공, 유식, 선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부처님 오신 날’이 들어있는 달에는 되도록 불교서적을 읽으려 합니다. ‘불자(佛者)’는 아니지만 불교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거든요. 나름 불교대학 1년 치 커리큘럼은 마쳤다고 자신할 만큼은 공부한 덕택에, 연기(緣起)·공(空) 등의 핵심사상은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인데…. 하지만, 유식(唯識)은 여전히 아리송했습니다. 용어도 쉽지 않을뿐더러, 말나식·아뢰야식을 의식(意識)한다는 건, 깊은 선 수행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잖아요?

김사업 著
불광출판사 刊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은 유식·선(禪)을 이해하기 쉽게 연기·공과의 연장선상에서 풀이한 책입니다. 저자는 현재 오곡도 명상수련원 부원장인 김사업 님인데. 그는 확실히 연기·공·유식을 단지 머릿속 지식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분이라 여겨집니다. 그의 스승 같은 도반 장휘옥 원장님과 함께 박사학위·대학교수직을 박차고 경남 통영 인근의 작은 섬에 간화선 수행 전문도량을 만들어 선 수행을 일삼은 지 어언 18년이 되었으니 말이에요. 아! 두 분이 함께 펴낸 『무문관(無門關) 참구』도 무척 매력적인 책입니다. 7년 동안 900여 회의 독참(獨參; 스승이 정기적으로 제자와 일대일로 만나 화두에 대해 치열한 선문답을 나눔으로써 제자의 경지를 점검하고 수행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제도)으로 다져진 실천적 선 수행의 고갱이들을 엮어내셨다는데, 이보다는 아무래도 선을 위시한 불교의 핵심이론에 대한 숙지가 먼저 필요하겠죠?

문학·역사·철학, 곧 문사철(文史哲)의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란 조건을 붙인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불교입문서가 아닙니다. 따라서 불교의 역사나 교리 등은 대강 알면서도,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연기와 공, 유식과 선 등의 이동(異同)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과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 신·구·의업(身·口·意業)이 우리들 마음인 아뢰야식에 미치는 영향, 용수(龍樹) 존자의 희론(戱論; 말로 대상을 개념화하고 그에 대해 집착하는 것) 등을 비로소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책은 모두 6장으로 나뉘며 각각의 소제목을 달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읽을 때의 호흡조절을 위한 방편이란 느낌이 강했거든요. 해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독파해야 합니다. 「연기·공·유식·선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라는 부제처럼, 주된 내용은 불교교리의 핵심인 연기·공·유식을 일상생활과 관련된 예와 함께 설명한 다음, 실제로 이들 교리대로 살았던 조주·임제·덕산·운문 등 옛 선사(禪師)들의 삶을 찾아보고, 우리 같은 범부중생들도 선사들처럼 지행합일의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것인데…. 저자의 주장과 제안에 120% 공감하면서도, 저자처럼 하루하루를 100% 제대로 살아낼 자신은 별로 없는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하는 즉신설법(卽身說法)의 경지는 늘 꿈꾸고 싶습니다. “월천담저수무흔(月穿潭底水無痕; 달빛이 연못의 깊은 바닥까지 비추고 있으나 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네)”이라는 게송(偈頌)을 따라 읊어보며….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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