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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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민주주의
  • 승인 2018.02.2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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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http://


도서비평 | 세상을 바꾸는 언어: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 소위 ‘Me too’ 운동이 국내외에서 뜨겁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들의 폭로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법조계·문학계 가리지 않으며 연일 고발·고백이 뒤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성평등의 사회적 인식이 급선무일 텐데…. 까짓 촛불혁명도 멋지게 이루어낸 만큼, 이참에 남녀불평등의 고질적 악폐 또한 말끔히 청산해서 배려·존중·공존·평등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할 수는 없을까요?

양정철 著
메디치미디어 刊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이라는 부제가 붙은 『세상을 바꾸는 언어』는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과 현 문재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양정철 님의 작품입니다. 참여정부 5년 내내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고, 작년의 장미대선 때까지 말과 글로써 민주주의 홍보에 앞장섰던 저자가, 생활 속의 언어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여러 가지 실천방법들을 모색하여 내놓은 역작이지요. “인간의 사고와 경험은 언어에 의존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과 글은 곧 우리들 의식의 반영물이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한 사회의 의식 수준은 통용되는 언어를 통해 낱낱이 드러나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지은이는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완성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언어부터 민주주의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기에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길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책은 5장으로 나뉩니다. 우리 언어에 담긴 문명성·양식·이성의 현주소를 평등·배려·공존·독립·존중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되짚어보는 방식으로 구분한 것이지요. 극단적인 이념 대결의 시대를 거쳐 무한경쟁·효율우선의 시대에 들어서느라 투쟁·자본·권력의 언어가 아직도 난무하고 있지만, 이제는 민주화의 마지막 여정으로서 ‘언어 민주주의’를 간절히 도모하자면서…. 읽노라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이 술술 넘어갈 텐데, 저자의 주장은 수미일관 “민주주의적 가치는 민주적 언어를 쓰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입니다. 누구처럼 막말·거짓말·아무 말 대잔치 일삼는 사람은 민주시민 자격이 없다는 말이지요.

병원에서 청소 아주머니를 고위관료의 부인을 뜻하는 여사님이라 부르는 걸 듣고서 호칭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하다고 여긴 탓이 컸을까요? 한동안 진료실에서 환자분을 어찌 불러야 하나 꽤 고민했습니다. 아버님·어머님·선생님·사모님 등의 호칭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더러 겸연쩍어 영 입에 붙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당당히 ‘∼씨’라고 불러야겠습니다. 씨(氏)는 성 또는 이름 뒤에 쓰여 그 사람을 대접하여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로 가장 보편적인 존칭이라는 사실을 이 책 덕분에 알았으니까요. 아울러 무상급식이 멀지 않은 전직 대통령은 곧 있을 대국민 사과 시 ‘유감’ 같은 헛소리는 절대 내뱉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유감이란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니, 내 비록 어쩔 수없이 사과는 하지만 내 속으로는 아주 불만스럽다는, 곧 사과가 아닌 우롱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금까지 언행으로 가늠할 때, 썩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안세영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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