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 (307) - 虞摶의 醫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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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 (307) - 虞摶의 醫案(2)
  • 승인 2018.01.2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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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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濕鬱案

虞恒德(우단)이 어떤 사람을 치료했는데, 나이가 30세였다. 3개월 전에 房事를 한 후에 말을 타고 하천을 건넘에 연못에 빠져버렸는데 다행히도 말이 강건해서 무사하였지만 옷이 계속 축축한 상태에서 15里를 가서 집에 도착했다. 그 다음날에 찬 기운을 싫어하면서 심하게 열이 나고 사지의 관절을 답답하면서 우리하게 아파해서 학질과 비슷하지만 학질의 증상은 아니었다. 의사들이 허증으로 여기고는 氣血을 보충했지만 한 달 남짓 지나도 효과가 없어서 의사를 바꾸어서 勞瘵로 치료하였다. 四物湯에 知母, 黃栢, 地骨皮의 무리를 첨가하고 大補陰丸에 紫河車를 배로 가하여 복용하여 9개월이 지났는데 도리어 답답해하며 밥을 먹지 않고 乳嫗(유모)를 고용해서 매일 乳汁을 네다섯잔씩 먹였는데도 쌀알도 먹지 않았다. 虞摶이 진찰하여 보니 六脈이 모두 洪緩하였고 깊이 눌러 보니 牢한 듯하였는데 右手가 더욱 심했다. 虞摶이 濕鬱로 여기고 치료하였다. 平胃散에 蒼朮을 배로 가하고、白朮、茯苓、半夏、川芎、香附、木通、砂仁、羌活、防風을 가하고 여기에 生薑을 첨가해 끓여서 黃昏에 한 첩을 복용시켰다. 2시간 후에 또 한 첩을 복용시키니 한밤중이 되어서 온몸에 癮疹과 같은 紅丹이 돋아나서는 순식간에 없어지면서 크게 땀을 흘리고는 곧 옅은 죽을 두 사발 먹었다. 이윽고 모든 병들이 다 줄어들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앞의 처방을 3첩을 복용하고 나중에 茯苓滲濕湯에 白朮을 배로 가해서 二十帖을 복용하고 나서 편안해졌다. (虞恒德治一人, 年三十歲, 三月間, 房事後乘馬渡河, 遇深淵沈沒, 幸馬健無事, 連濕衣行十五里抵家。次日憎寒壯熱, 肢節煩疼, 似瘧非瘧之狀。醫作虛證而補氣血, 月餘不效, 更醫作瘵治。用四物加知、柏、地骨皮之類, 及大補陰丸倍加紫河車, 服至九月, 反加悶不食, 雇乳嫗日飮乳汁四五杯, 粒米不食。虞診視六脈皆洪緩, 重按若牢, 右手爲甚。虞作濕鬱治, 用平胃散倍加蒼朮、白朮、苓、半、川芎、香附、木通、砂仁、羌、防, 加薑煎服, 黃昏一帖。一更時又一帖, 至半夜, 遍身發紅丹如癮疹, 片時遂沒而大汗, 卽食稀粥二碗, 由是諸病皆減, 能食。仍與前方服三帖, 後以茯苓滲濕湯倍加白朮, 服二十帖而安。)(兪震, 『古今醫案按』, 1778년)

按語) 虞摶(1438〜1517)은 중국 명나라 때의 의학자로 자는 天民, 자호는 花溪恒德老人이며 浙江省 義烏 사람이다. 위의 醫案은 兪震의 『古今醫案按』卷四 虛損門에 나오는 기록이다. 저자 兪震은 이 醫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按語를 붙이고 있다. “물에 빠졌는데도 축축한 옷을 갈아입지 않고 또 먼 길을 다녀서 그 다음 날 어찌 마침내 허한 것으로 여기고 치료하는 것인가! 무릇 용의들이 방사 후라는 것에 착안한 것일 따름이다. 반년에까지 이르게 되어 병세가 더욱 위중해졌고 맥상도 허손의 맥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濕鬱로 치료해서 곧바로 나았다. (溺水不換濕衣, 又値遠途, 次日卽病, 何至遂以虛治。蓋庸醫着眼在房事後耳, 延至半年, 病勢益重, 而其脈仍非虛損脈, 故以濕鬱治卽愈。)” 아마도 房事를 한 후에 말을 달려 물에 빠져서 병이 된 것을 虛해진 것으로 보아 잘못 치료한 것을 虞摶이 濕鬱로 보아 치료해낸 것을 논평한 것이리라.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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