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1988년이 2016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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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1988년이 2016년에게…
  • 승인 2016.01.2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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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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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나 사회의 생명력은 연결과 상호작용 통해 강화
생명력 넘치는 사회일수록 사람들끼리의 교류가 활발


<응답하라 1988>을 즐겨보는 시청자로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라미란의 역할이다. 정봉, 정환이의 엄마이자 성균의 부인으로 최고의 연기를 펼치는 그녀를 통해 감독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듯하다. 1988년의 모습을 통해 2016년의 우리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 그것은 배우 라미란을 통해 가장 극대화되었다.

김 영 호
부산 공감한의원 원장
부산광역시 한의사회
홍보이사
‘T형 인재’가 필요하다는 말은 이미 여러 차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지식이 넓고 깊은 인재라는 뜻으로 알파벳 T를 통해 비유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지식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T’는 통하는 말이다. 인간관계의 폭이 넓으면서 깊이도 있는 인간관계를 T형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다. 2016년에도 넓은 인간관계는 여러 동호회나 모임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1988년의 인간관계와는 분명히 다르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T형 인간관계’는 사라진 지 오래다. 가장 보편적 주거형태인 아파트는 이웃 간의 교류가 차단된 주거 형태다. ‘응8’의 쌍문동 골목처럼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이웃집 빨래를 대신 걷어주고, 이웃집 자식들에게 밥을 대신 주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1988년의 이런 모습이야 말로 사회가 살아있는 듯 보인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 이 바로 드라마 속 쌍문동 골목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네 주민들이 모여 살면 때로는 원치 않아도 함께 식사하고 어울릴 때가 있다. 대학시절이 그랬다. 꼭 나가고 싶지는 않지만 불참하면 안 되는 분위기라 참석을 했는데 막상 가보면 ‘참석하길 잘했다’ 싶은 때가 있다. 그 시간에 혼자 있어봐야 특별히 발전적인 시간을 갖는 것도 아닌데 모임에 참석해서 이 사람 저 사람하고 얘기 나누다 보면 기분전환이 된다.

사람은 어울려 살면서 새로운 것을 느끼고 경험한다. 마치 어릴 때 내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어른에 의해 몸에 좋은 음식을 억지로 먹어서 건강해지듯이 때로는 억지로 하는 경험이 인생에 도움될 때가 있다.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생활만 하다보면 음식도 편식하게 되고 방송도 보고 싶은 프로그램만 보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편한 사람만 보게 된다.

그런데 편식을 하게 되면 건강이 나빠지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만 보면 사고와 식견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인간 관계 역시 내가 편한 사람만 보면 발전이 없다. 내가 원치 않아도 만나고 먹고, 같이 하는 경험들로 우리는 커나간다.

어른이 되었다고 성장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발전이 필요하다. 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에겐 1988년도의 쌍문동 골목길처럼 서로간의 ‘기분 좋은 간섭’과 ‘더불어 살기’가 필요하다.

특히 한의원 원장실은 자기만의 세계로 몰입되기 딱 좋은 환경이다. 내가 좋아하는 밥만 먹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해도 되는 곳이다. 환자들에게 스트레스 받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나의 일상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다는 원장님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 같은 의료인일수록 더욱 T자형 삶을 살 필요가 있다. 우리의 학문과 우리의 한의원은 깊이를 쌓기에 좋은 영역이다. 그런데 그 깊이에 상응하는 폭을 갖추지 못하면 원장실은 고립된 섬이 된다. 지역 한의사 사회에도 적극 참여하여 주변 원장님들과 교류하고 다른 직업을 가진 분들과도 다양하게 만나면서 사회 속에서의 한의사, 사회 속에서의 한의학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인터넷 공간에서 주변 사람들과 전혀 소통이 안 되는 꽉 막힌 글과 댓글을 반복적으로 쓰는 분들을 보면 ‘폭’을 넓히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나의 생각만이 옳고 타인이 얘기하는 말을 듣고 이해할 여유가 없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바로 스스로 만든 섬에 고립된 분들이다.

80년대 대한민국은 이웃들과 교류가 많던 시대였다. 그리고 그 교류에는 조건이 없었다. 지금처럼 사업을 위해, 자신의 인맥 형성을 위해 인위적인 만남을 갖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계였다. 인간이나 사회의 ‘생명력’은 연결과 상호작용을 통해 강화된다. 그리고 생명력이 넘치는 사회일수록 사람들끼리의 교류가 활발하다. 온라인에서의 교류만 활발한 지금 사회보다 이웃 간의 교류가 활발했던 80년대가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의도한 관계가 아닌 함께 살아가면서 맺는 구시대적 인간관계를 통해 우리는 지금의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88년의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나 사회, 정치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수준이 낮았지만 ‘사람들 간 관계의 수준’은 지금보다 나은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의도하지 않은 사회적 관계들로 인해 우리는 꽤 괜찮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것보다 ‘의도하지 않은 인간관계’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응답하라 1988>의 제작진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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