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702] 佛語로 번역된 조선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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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702] 佛語로 번역된 조선의서
  • 승인 2015.11.0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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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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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星行年便覽」③


이 책이 비록 통속의약서로 분류되고 조선 땅에서는 그리 큰 호응을 얻은 것 같지는 않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관심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1892년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책의 불어 번역판은 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으로 알려진 洪鍾宇(1850~1913)에 의해 이루어졌다. 번역자인 홍종우는 1893년 중국 상하이에서 급진 개화파의 거두이자 갑신정변을 일으킨 3일천하의 주인공 김옥균을 저격하여 암살한 것으로 훨씬 더 알려져 있다.

 

 

 

 

◇ 「직성행년편람」불어판
홍종우는 경기도 안산에서 잔반의 후예로 태어나 몹시 가난하게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다. 黃玹의 「梅泉野錄」에 따르면 ‘홍종우는 어린 시절에 고금도에서 불우하게 지내왔다’라고 기록돼 있다. 또 「대한제국 비서원일기」에도 한때 그가 ‘고금도에서 쑥물을 버리는 것도 아까워했을 만큼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왔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는 1886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사히신문사에서 식자공으로 일하면서 불어와 일본어를 익히고 국제신문을 접하면서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 2년여 간 일본에서 일하여 모은 돈으로 배 삯을 치르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1890년 마르세이유 항구에 도착하였다.

당시 40세였던 홍종우는 프랑스 유학기간 동안 기메박물관 등에서 일하면서 「춘향전」, 「심청전」과 함께 이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다. 또한 기메박물관에서 처음 설립하는 한국문화 전시실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그는 파리 체류시절에도 늘 한복을 입고 다녀 양복을 착용했던 김옥균과 대비되었으며, 서구 문명을 익히면서도 겉보기와 달리 이면에 숨겨진 열강 제국들의 야심을 경계했다.

홍종우는 프랑스로부터 귀국하는 길에 일본으로 갔으며, 갑신정변에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외딴 섬에 은신하고 있던 김옥균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꾸민다. 그는 급진 개화파의 일원으로 가장, 김옥균에게 접근하였는데, 당시 청의 실권자 위안스카이로 하여금 김옥균을 청으로 초청하게 한 다음 중국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그는 본디 개화파 성향에 외국 유학을 마쳤기에 김옥균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하였으며, 특히 프랑스 요리 솜씨가 뛰어나 김옥균과 일본 친구들 입맛까지 매료시켰다고 한다. 청국으로 건너간 이듬해 상하이 東和洋行이라는 호텔에서 리볼버 권총으로 김옥균을 저격, 암살하였다.

청나라 관원에게 체포된 그는 “나는 조선의 관원이고, 김옥균은 나라의 역적이다. 김옥균의 생존은 동양 삼국의 평화를 깨뜨릴 우려가 있다”고 하며 자신을 변론하였다. 조선정부의 ‘석방 교섭’으로 풀려나, 조선으로 귀국하였지만 수구파들의 환대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 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校理가 되었으며, 고종의 신임을 얻어 요직에 올랐다. 대한제국 관리로서 홍종우는 근왕파의 한사람으로 활동하며 1898년 독립협회가 萬民共同會를 개최하며 중추원 관제 개편과 입헌군주제 개혁을 주장하자, 황국협회를 조직, 보부상을 동원하여 독립협회의 활동을 방해하였다. 이때 역모죄로 체포된 개화 인사 가운데 이승만도 있었는데, 홍종우는 이 사건의 재판을 맡아 처음에는 사형을 구형하였으나 나중에는 태형을 선고하여 감형시켰다.

그는 이외에도 대한제국의 주요 법규들을 모아 「법규류편 속일(法規類編 續一)」을 편찬하여 발간하기도 했는데, 이는 대한제국 시기 주요 법규에 대한 안내와 법규 해설집으로 활용되었다. 그는 비록 수구파 인사로 평가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외세의존적인 개화파와는 달리 근황주의를 강조하는 자주적 개화파 인사였다. 수차례 ‘외국군대 철수’와 ‘방곡령 실시’, ‘상공업 육성책’, ‘외국공사의 내정간섭 반대’ 등을 주장하였고, 고종에게 이러한 주장이 담긴 상소를 11차례나 올렸다고 한다. 개화와 수구가 병존하지 못했던 시대정신의 충돌이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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