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96] 감염병을 막을 기막힌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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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96] 감염병을 막을 기막힌 처방
  • 승인 2015.09.1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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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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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疹神方」


올봄부터 중동에서 건너온 메르스에 한국인 수백 명이 감염되어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경제강국이 되었다고 은근히 으스댔던 체면에 그만 분칠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병원 내 감염이 확산되어 방역당국과 관계부처장은 국민들로부터 호된 질타를 맞았다.

 

 

 

 

◇ 「의진신방」

 

 

이젠 의료계와 정부가 함께 감염병 대책위원회를 강화하여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한의계는 이번 사태에 한걸음도 참여하지 못하고 봉쇄(?)된 터인지라 내내 답답한 심정이었는데, 유행이 수그러들자 피해보상 조사에 응하라는 공문만 받아들어 씁쓸한 소회만 남겼다.

울적한 심사에 조선시대 역병과 싸웠던 민초들의 전투보고서에 비견할 필사본 방역서 1종을 뒤적여 본다. 표지에는 자작 서명으로 ‘醫疹神方’이라 적혀 있으니 급성전염병인 마진을 치료하며 고군분투했던 기록이리라. 그 옆에는 부제로 ‘濟衆妙訣’이라 쓴 것으로 보아 역시 醫人의 제1 덕목은 무엇보다도 濟世救人에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본문의 첫 장에는 紅疹方이라는 편제가 별도로 붙어 있고 서문이라고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李獻吉의 마진방에서 비롯된 예의 麻疹始末이 실려 있어 대략 이 책이 전해 내려온 내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저자나 작성시기가 적혀 있지 않지만 기술한 내용을 미루어 짐작해 보았을 때 대략 1800년대 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어 홍진의 기본적인 증상과 대처법에 대해 조문별로 나누어 기술하였는데, 발생 초기 증상은 반드시 두통, 해수, 맑은 콧물과 재채기, 그리고 눈곱이 끼거나 한열왕래와 같은 증상이 수반된다고 밝혀 놓았다. 초기 증상에 아직 열꽃이 피지 않았을 때에는 인동과 갈근, 糯米(찹쌀)를 함께 끓여 따뜻하게 먹이고 풍한을 피하면서 열꽃이 밖으로 피어나올 때까지 몸에 땀이 배어나오게 보온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이미 통증이 진행되어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는 술을 따듯하게 덥혀 자주 먹여 얼굴에 취기가 오르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는데, 술에 파를 넣은 蔥酒를 홍진의 聖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편 홍진이 나타나기도 전에 심하게 설사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危症이 되는데, 술에다가 黑糖을 넣어 溫服하라고 하였다. 그래도 그치지 않으면 소주에 흑당을 넣어 진하게 달여 먹이면 즉효가 난다고 했는데, 그것은 소주가 청주에 비해 약력이 더욱 맹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홍진의 제반증상에 통증이 더해졌을 때는 어떤 증상이든지 술이 약이라고 하였는데, 그 옆줄에는 “그렇지만 위의 방법은 근래에 들어서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니 충분히 가량해서 써야 한다”고 적혀 있다. 아마도 전래 문헌을 참고하여 써보다가 유행하는 증상이 바뀌어 적합하지 않다고 여긴 나머지 이런 언급을 적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하 각 조문은 마진의 전변단계와 부수 증상별로 소제를 삼아 각 조문의 위에다 대두하여 적어놓았고 그 아래 개조식으로 조문을 기술하였기에 별도의 목차가 없어도 책장을 넘기면서 쉽게 원하는 증상과 치법을 찾아보기에 용이하다.

본문에 등장하는 치증 항목만 해도 160여조에 달해 누적된 치료경험이 집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본문은 소아문과 부인문, 痘疹竝發, 그리고 前後補遺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前後補遺편에는 壬申方, 乙未方 등 갖가지 마진방이 들어 있어 작성할 당시 전존했던 홍진방을 모두 수집하여 참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권미에는 또 紅疹諸藥炒製法에 들어 있어 홍진 치료에 쓰이는 주요 약재의 수치법과 반하 제독법 등 각종 약재의 약력을 높이기 위한 가공법이 적혀 있다. 끝으로 紅疹諸藥方에는 초기에 쓰이는 蔥酒飮으로부터 四物生脈散까지 79종 치방을 수록해 놓았다. 역병이 돌 때마다 그저 백신을 찾아 헤매는 것만이 의료인의 능사인가 하는 반문을 던져보아야 할 시점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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